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페이스북 같은 것도 안 하는 주제에 고정 지면을 받았다고 하니, 대체 무엇을 쓸 것이냐 묻는다. 마지막으로 쓴 것이 ‘김변은 드라마작가 지망생’(<한겨레21> 연재)이었던 탓에, 다시 드라마 이야기를 쓰냐고도 한다. 친한 기자에게 처음 제안을 받고 냉큼 하겠다고 한 데에는, 일종의 생존 보고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하다. 고속철로 한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데도, 여전히 ‘머나먼 강원도’를 떠올리며 나의 강릉 이사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잘 지낸다,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경포생태습지’ 옆에 법무법인 분 사무소 간판을 내걸고, 집도 이사했다. 28년 만에 엄마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막연히 함께 지내면 좋기만 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철이 들고는 처음으로 엄마와 동거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거의 룰을 배워야 한다. 딴에는 약해진 엄마를 돌본다고 으스댔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엄마 집에 다 큰 딸이 쳐들어온 것, 평안한 일상에의 침입일 터이다. 둘이서만 사용하던 화장실을 넷이 쓰게 되면서 순서와 시간을 걱정하게 되고, 칼퇴근하는 다 큰 딸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도 바뀌었다. 좋은 구경, 맛난 음식도 한두 번이지, 생활 리듬은 깨지고 수면 패턴도 달라 신경 쓰일 수밖에. 그래서 나는 조금씩 엄마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조금 빠른 기차표를 예매하면 밤늦게 깰 일이 줄고, 골목 할머니들 계모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일정을 미리 물어 외식 계획을 잡자. 부지런히 집안일 하는 것이 느릿한 생활을 다그치는 일이 되지 않을지,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잔소리는 아닌지. 엄마는 어떻게 느낄까. 이 단순한 질문의 답이 너무 어렵다. 나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흔일곱 해, 한 사람의 딸로만 살았는데도 그 마음이 되어 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서로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생각은 어느새 요즘 마음을 괴롭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옮아간다. “도대체 경사노위 공익위원은 뭘 하고 있는 거냐.” 내가 맡고 있는 이 일이야말로 생존 보고가 필요하다. 알고 있다. 모든 경제적 어려움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초과근로 금지 탓이라는 몰매는 억울하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 비준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당정 협의를 끝냈다면서 탄력근로제를 경사노위의 첫 주요 안건으로 삼는 것도 탐탁지 않다. 그런데 이 대화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겠다. 파업? 의회에 대한 압박? 여론전?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만만치 않다면, 이 정부에서도 ‘노동’은 한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걸까.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국회에서만 논의하도록 두는 것이 더 나은가. 아이엘오 기본협약 비준은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거래의 대상은 아니지만, 양보와 협상의 대상도 아닐까. 좀처럼 확신할 수가 없다.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지만, 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겁나는 것이 사실이다. 위원회가 운영되어 가는 모습이나 절차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아직 동거의 규칙을 찾지 못한 나이 든 딸과 엄마처럼, 한 번도 대화의 룰을 배운 적이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노는 사가, 사는 노가, 그리고 정부나 공익은 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반대(엄마는 “내 속엔 나만으로도 복잡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들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아직은 포기할 수가 없다. 늪이나 수렁과 같은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일컫는 말 ‘습지’는 근래 들어 생명 다양성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호수 옆 쓸모없어 보이던 자투리땅에서 ‘경포생태저류지’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습지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안 될 것이라고 부정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경사노위에서, 이렇게 뒤죽박죽인 채로 첫 생존 보고를 한다. 로저 아웃!(Roger Out!)
칼럼 |
[공감세상] 습지, 생존보고 / 김진 |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페이스북 같은 것도 안 하는 주제에 고정 지면을 받았다고 하니, 대체 무엇을 쓸 것이냐 묻는다. 마지막으로 쓴 것이 ‘김변은 드라마작가 지망생’(<한겨레21> 연재)이었던 탓에, 다시 드라마 이야기를 쓰냐고도 한다. 친한 기자에게 처음 제안을 받고 냉큼 하겠다고 한 데에는, 일종의 생존 보고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하다. 고속철로 한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데도, 여전히 ‘머나먼 강원도’를 떠올리며 나의 강릉 이사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잘 지낸다,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경포생태습지’ 옆에 법무법인 분 사무소 간판을 내걸고, 집도 이사했다. 28년 만에 엄마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막연히 함께 지내면 좋기만 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철이 들고는 처음으로 엄마와 동거하는 것이다. 그러니 동거의 룰을 배워야 한다. 딴에는 약해진 엄마를 돌본다고 으스댔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엄마 집에 다 큰 딸이 쳐들어온 것, 평안한 일상에의 침입일 터이다. 둘이서만 사용하던 화장실을 넷이 쓰게 되면서 순서와 시간을 걱정하게 되고, 칼퇴근하는 다 큰 딸 때문에 저녁 식사 시간도 바뀌었다. 좋은 구경, 맛난 음식도 한두 번이지, 생활 리듬은 깨지고 수면 패턴도 달라 신경 쓰일 수밖에. 그래서 나는 조금씩 엄마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조금 빠른 기차표를 예매하면 밤늦게 깰 일이 줄고, 골목 할머니들 계모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일정을 미리 물어 외식 계획을 잡자. 부지런히 집안일 하는 것이 느릿한 생활을 다그치는 일이 되지 않을지, 건강에 대한 걱정이 잔소리는 아닌지. 엄마는 어떻게 느낄까. 이 단순한 질문의 답이 너무 어렵다. 나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흔일곱 해, 한 사람의 딸로만 살았는데도 그 마음이 되어 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데, 서로 반대편을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생각은 어느새 요즘 마음을 괴롭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옮아간다. “도대체 경사노위 공익위원은 뭘 하고 있는 거냐.” 내가 맡고 있는 이 일이야말로 생존 보고가 필요하다. 알고 있다. 모든 경제적 어려움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초과근로 금지 탓이라는 몰매는 억울하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 비준은 너무 당연한 것이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당정 협의를 끝냈다면서 탄력근로제를 경사노위의 첫 주요 안건으로 삼는 것도 탐탁지 않다. 그런데 이 대화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겠다. 파업? 의회에 대한 압박? 여론전?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만만치 않다면, 이 정부에서도 ‘노동’은 한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는 걸까.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국회에서만 논의하도록 두는 것이 더 나은가. 아이엘오 기본협약 비준은 안 해도 되는 것인가. 거래의 대상은 아니지만, 양보와 협상의 대상도 아닐까. 좀처럼 확신할 수가 없다.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지만, 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을까 겁나는 것이 사실이다. 위원회가 운영되어 가는 모습이나 절차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아직 동거의 규칙을 찾지 못한 나이 든 딸과 엄마처럼, 한 번도 대화의 룰을 배운 적이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노는 사가, 사는 노가, 그리고 정부나 공익은 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반대(엄마는 “내 속엔 나만으로도 복잡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들어가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아직은 포기할 수가 없다. 늪이나 수렁과 같은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일컫는 말 ‘습지’는 근래 들어 생명 다양성의 보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호수 옆 쓸모없어 보이던 자투리땅에서 ‘경포생태저류지’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습지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안 될 것이라고 부정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경사노위에서, 이렇게 뒤죽박죽인 채로 첫 생존 보고를 한다. 로저 아웃!(Roger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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