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2.25 17:59 수정 : 2019.02.25 19:39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연차휴가를 신청했다. 회사는 공휴일과 개인 연차 사용 일수가 16개를 초과해 남은 연차가 없다고 했다. 휴가를 쓰면 하루 일당이 까진다고 했다. 자동차 검사를 하지 않는 빨간 날(일요일·공휴일)엔 회사 문을 열지 않아 직원 모두가 쉰다. 필요할 때 연차를 사용했는데 새해부터 공휴일 연차 대체를 한다니 황당했다.

취업규칙을 찾아봤다. 연차를 공휴일로 대체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자동차정비사는 직장갑질119에 문의해 근로기준법 62조 연차 대체를 할 경우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취업규칙에 연차를 대체할 특정일이 명시돼 있지 않으면 무효라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법은 멀리 있었다. “연차 대체 서면합의서를 보여달라고 하니까 거부했고, 근로자대표가 누구로 되었는지 문의해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요?”

법정공휴일은 관공서의 휴일로, 근로기준법의 유급휴일은 주휴일과 노동자의 날(5월1일)이다. 빨간 날 문을 닫는 병원처럼 관행으로 쉬거나 취업규칙에 명시한 경우는 유급휴일이 된다. 올해 설과 추석, 공휴일을 더해 빨간 날은 16개. 근속 4년 정비사의 연차도 16개다. 회사가 취업규칙을 슬쩍 바꾸고 누군지도 모르는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했다고 하면, 연차 16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근로자대표가 누구인지 물어봐도 대답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막강한 위력을 떨친다. 근로자대표라는 유령이 직장을 배회한다.

민주노총이 빠진 문재인 정부 노사정 합의 1호, 탄력근로제의 주인공도 근로자대표다. 서면합의를 해야 도입할 수 있다. 정부가 건강권 보호 방안이라고 자랑한 11시간 연속 휴식시간도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하면 안 지켜도 된다. 임금보전 방안도 서면합의하면 신고의무조차 면제된다.

선택근로제, 선택적 보상휴가제, 간주근로제, 재량근로제도 근로자대표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경영상의 해고도 근로자대표와 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어디에도 근로자대표에 대한 규정이 없다. 3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도 마찬가지다. 선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장님 맘대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는 335곳 중 25.6%는 회사가 지명·추천해 근로자위원을 뽑았다. 노조 가입률 10.3%, 대한민국 직장인 90%의 근로자대표는 유령 아니면 어용이다.

회사 생활의 9할을 차지하는 월급, 노동시간, 휴가. 최저임금이 올랐는데 상여금을 쪼개고 식대를 기본급에 넣어 실수령액이 한 푼도 오르지 않는다. 탄력근로제로 3개월 내내 주 64시간씩 일하는데 연장수당이 날아가 월급이 줄어든다. 법정공휴일 연차 대체로 휴가마저 사라진다. 근로자대표를 찾아보지만 본 사람이 없다. 근로자대표로 인정되는 과반 노조는 회사에 맞설 수 있지만, 노조 없는 회사원들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국회에서 탄력근로제를 논의한다. 이참에 근로기준법과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을 바꿔 근로자대표 선출 방법을 명시하면 어떨까? 노조위원장 선거처럼 임기를 정하고, 관리자는 출마하지 못하게 하고,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면 된다. 내가 직접 뽑은 근로자대표에게 연차 대체에 서명했는지 물어볼 수 있다. 매일 15시간 일을 시켜도 되는 탄력근로제에 합의했다면 항의라도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반장도 직선제인데, 내 직장생활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가진 근로자대표를 직접 뽑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