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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1 20:41 수정 : 2019.02.12 13:50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약속했지만, 관저를 옮기는 일조차 쉽지 않다. 얼마 전엔 유홍준 자문위원의 광화문 풍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청와대가 풍수상 불길하다는 말을 기자회견에서 꺼냈기 때문이다. 풍수가 미신에 불과하며 비과학적인 사상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는 필요 없다. 사회는 과학적 사상만으로 굴러갈 수 없으며, 그런 비과학을 모두 박멸해도 사회가 좋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려는 사람 모두를 멀리하면 만날 사람이 없는 게 한국이다.

풍수가 과학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풍수라는 사상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문화로 소중하다. 풍수로만 검색되는 학위논문이 1319건, 학술지 논문이 2225건이다. 대부분 역사학 혹은 지리학 연구들이다. 물론 풍수를 양자역학과 연결하는 사이비 학술지의 논문도 있지만, 이런 논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정부는 아니라 믿는다.

풍수를 말한 유 위원은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한국의 문화권력이다. 그는 청와대 이전을 기획하는 권한을 위임받았고, 따라서 그의 발언과 사상은 직접적으로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권력은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은 국민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풍수가 청와대 이전의 주요 근거가 되어버리면, 앞으로 집주인이 풍수를 근거로 집값을 올릴 때 청와대가 거론되는 코미디가 연출될 수 있다. 권력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과학적 사고에 기반해야 하는 이유다.

문화재청장까지 지낸 미술사학자가 풍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모를 리 없다. 이미 신라시대부터 풍수는 정치적 도구였다. 풍수는 정치사회적 변동을 돌파하는 사상이자, 정치세력이 입지를 유지하는 버팀목이기도 했다. 풍수가 권력층에 의해 남용될수록 민중은 그 사상을 신비주의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회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풍수가 유행했다. 그 이유로 풍수는 조선 말 실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비판받았다. 조선 말 실학자들이 현대의 청와대 자문위원보다 진보된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미술사학자 개인으로 지닐 수 있는 풍수 관념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 관념이 묘를 명당에 쓰는 정도를 넘어서면 곤란하다. 조상의 유골이 오래가길 바라는 효 사상이 풍수에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당을 써야만 가문이 번성한다는 믿음을 강요해선 안 된다. 유 위원의 발언이 갖는 무게는, 부모의 묘를 명당에 쓰려는 자식의 정성까지 왜곡한다. 만약 청와대가 이전해야 한다면, 그건 철저히 행정의 효율성 때문이어야 한다.

박근혜가 온갖 사이비 종교를 근거로 국정을 농단할 때, 그 퇴행을 샤머니즘 국가라 불렀다. 유홍준을 비판한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였다. 당연히 차기 정권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랐다. 창조과학자가 장관 후보가 되었을 때, 과학적 사유가 청와대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 실수가 과학기술정책 전반으로 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실수가 잦았지만 늦지 않았다.

핵심은 풍수나 과학이 아니다. 문제는 권력이 이 사안에 접근하는 태도에 있다. 권력이 정책 하나를 결정할 때 얼마나 치열하게 측정하고, 실험하며, 근거를 따지는가.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일 뿐 아니라 세상에 접근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끊임없이 실험하고 측정할 뿐이다. 이미 조선시대 실학자들은 그런 삶을 추구했다. 과학은 태도다. 정책의 결과를 측정하고, 실험하고, 근거를 통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일,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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