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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6 17:47 수정 : 2019.02.06 19:19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바야흐로 폭로의 시대다. 유력 정치인부터 인기 연예인, 신뢰가 높은 방송인까지 폭로 대상 또한 다양하다.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이제 모든 이들이 마이크를 들고 자신의 입장을 강변할 채널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부정의한 권력을 전복한 바 있는 대중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정치적 개인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이제 억울한 상황을 참는 이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 혹자는 이를 ‘을의 반란’으로 평가하며 발전된 민주주의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폭로로 인해 촉발된 수많은 진실게임과 여론재판의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폭로의 사전적 의미는 알려지지 않은 나쁜 일이나 음모 따위가 널리 알려져 드러나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는 주로 공익적 폭로가 그것도 드물게 이루어졌다면, 최근에는 일상적 행위나 사적 관계까지 폭로의 영역과 대상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예컨대 방송프로그램에 등장한 일반인들의 방송국 전횡 반박, 직장 내 상사의 행위에 대한 반란,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한 미투운동 등 권력과 서열이 작동하는 모든 곳에서 관계의 평등함과 공정한 제도의 확립 등을 요구하는 적극적 개인들의 목소리가 폭로라는 장치를 통해 확대되고 있다.

폭로의 긍정적 효과는 명확하다. 우선 권력에 대한 일반 대중의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은 최근 사례들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의식을 되돌아보는 학습기회를 가졌다. 술자리의 남성들이, 기업 간부와 대학교수가, 하다못해 종업원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쉽게 내뱉은 우리 모두가 이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시적 폭로의 가능성은 일종의 규율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관계 속의 극단적 폭력을 방지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폭로의 일상화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 폭로자의 해석에 따라 무고한 대상이 피해를 입거나 잘못된 정보가 사실로 오인될 수 있다. 특히 개인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에서 폭로라는 장치는 분명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개인주의와 평등주의가 확장된 한국 사회에서 모두가 합의한 윤리 기준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명확한 기준점이 부재한 상황에서 폭로는 개인 간의 파편화와 관계의 불신을 촉진할 위험마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우선적인 문제는 폭로가 초래하는 부정적 효과를 과도하게 부풀려 폭로의 순기능조차 무력화하려는 시도이다. 가장 빈번한 사례는 폭로자의 숨은 의도를 강조하면서 폭로 내용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폭로자의 과거 행적이나 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문제 삼으며 선한 폭로와 악한 폭로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는 폭로자를 정치적 존재가 아닌 순수한 존재로 속박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결국 폭로의 진위는 사회가 판단하게 된다. 촛불로 만들어진 사회라면 그 정도의 정화 능력은 있을 것이다. 부당한 폭로는 분명 사회적 논의 과정을 통해 처벌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폭로 내용, 대상, 기준 등은 세밀하게 조정될 것이다. 미리 나서 입을 다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지금 기억할 것은 폭로자 대부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과 폭로의 대상자는 어떤 의미에서건 권력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다. 이 자명한 원칙으로 돌아가 폭로자와 피폭로자 모두 폭로라는 행동의 의미와 무게를 다시금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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