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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3 17:44 수정 : 2019.01.23 19:29

손아람
작가

두 살 된 개 ‘사람이’를 산책시키면 이름을 묻는 사람보다 품종을 묻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나는 ‘아이리시 그랜드마운틴 올머스트 테리어’라고 말해준다. 기분에 따라 ‘마블러스 건틀렛 타노스’나 ‘덤애스킹 허시퍼피’라고도 대답한다. 그러면 잡종인데도 예쁘게 생겼네요, 같은 지긋지긋한 인사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처음 보는 종이라고 신기해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기도 한다.

사람이가 머물렀던 지역 동물단체의 보호소는 논밭 근처의 작은 임대주택이었다. 들개 무리 생활을 했던 사람이는 제 발로 나타나 현관 앞에 주저앉았다. 관리자는 문을 열지 못했다. 품종 없는 중대형견이 입양되는 경우는 사실상 전무하고 보호소는 이미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사람이는 현관 앞에서 하루를 버텨 보호소 문을 열었고 한달 뒤 나에게 왔다. “천분의 일 정도 확률이에요. 얘가 살아남은 건.” 단체 대표는 말했다.

지방의 친목모임에서 시작된 이 동물단체는 성장통을 앓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활동이 알려지며 동물 구조 요청이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구조동물의 입양 건수는 비례하여 늘지 않는다. 보호소 운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중대형 동물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구조 요청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단체의 결정은 곧 논란에 휩싸였다. 동물단체들의 상황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독지가들이 후원하고, 임시보호자들이 나서서 안락사 집행을 유예시키고, 국외 동물단체에 손을 벌려보지만 여전히 동물이 버려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모든 미봉책의 한계가 곧 명백해진다. 동물권 단체가 임의로 안락사를 실행할 정신나간 배짱이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동물 구조를 중단하는 것이다. 동물권 단체에서 재정적인 이유로 구조와 수용을 거부하면, 유기동물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보호센터로 보내져서 동물보호법이 규정한 ‘인도적 처리’ 절차를 밟게 된다. 똑같은 사형 집행이지만 이 과정에는 악마가 없다. 말을 알아듣는 동물을 만난다고 해도 ‘인도적 처리’의 의미를 납득시키기는 버거울 터다.

동물권 단체는 최고 수준의 생명윤리를 요구받고, 최고 수준의 생명윤리를 실천해야만 지지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고 수준의 생명윤리에는 최고 수준의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잊는다. 직장 때문에, 집이 좁아서, 이미 반려동물을 키워서, 생활비가 빠듯해서, 알레르기가 있어서, 가족이 반대해서…. 유기동물을 입양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기회비용은 제각각이지만 그 모든 사람이 유기동물에게 건강한 삶을 영구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마법 같은 해결책을 동물권 단체라면 벌써 발견해냈을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결국엔 비난의 표적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유기동물 안락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행되고 있다.

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펫숍의 동물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효됐고 영국에서도 비슷한 행정계획이 발표됐다. 동물거래는 개인의 반려동물과 유기동물에 한해 허용된다. 유기동물은 근본적으로 반려동물 산업이 생명을 잉여상품으로 대량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유기동물이 지속적으로 ‘인도적 처리’ 되는 것은 더 인도적인 방식으로는 이 산업적 숫자를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무제한의 사랑을 쏟는 동물종일수록 더욱 불행하게 죽어가는 이유는, 이 사랑을 쫓아 탄생한 비정한 거래 시장이 사랑의 총합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사지 마세요’로는 부족하다. 이 슬로건은 법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니까 살 수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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