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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5 18:16 수정 : 2006.06.22 19:23

변혜정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야!한국사회

신록이 짙은 요즘, 많은 모임들이 체육대회로 친목을 다진다. 특히 월드컵 열기 때문인지 남성들은 운동장을 빌려 축구를 하기도 한다. 같이 온 여자들은 경기를 응원하면서 먹을 것을 준비한다. 나와 같이 사는 10대 여성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왜 여자들은 그런 모임에서 같이 운동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때로는 여자들의 월드컵이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에게 ‘남성공화국’인 한국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한다.

최근 어떤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웃기는(?) 이야기를 들었다. 1학년은 여학생 남학생 구분 없이 ‘보디가드 피구’를 하며, 2학년 남학생은 농구, 3학년 남학생은 축구를 하는데, 이때 2, 3학년 여학생들은 응원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응원을 통해 남학생들은 스타가 되며, 그 스타에 여학생들은 열광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은 1학년들이 하는 ‘보디가드 피구’다. 이름도 생소한 보디가드 피구란 팀별로 남녀가 짝을 지은 뒤 여학생이 공에 맞으면 탈락하는 놀이다. 남학생들은 공이 날아오면 여학생이 맞지 않도록 공을 막아야 하며,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의 등에 매달려 공을 피하면서 철저하게 남자들의 보호를 받아야 그 경기에서 이기게 된다.

같은 학생으로서 같은 수업료를 내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교과과정이 배정될 수 있을까? 농구와 축구를 배우지 않고 남학생한테 보호받는 대상이 되는 것을 정작 여학생 본인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내가 아는 많은 10대 여자들은 남자애들이 축구나 농구를 하기 때문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놀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공에 맞을까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은 당연히 남자들의 운동이었다. 여학생들은 그네, 미끄럼, 철봉 등을 하며 운동장 구석에서 노는 것이 ‘당연’했으며, 그 기구들이 때로 큰 나무 밑의 그늘에 있었기에 (얼굴이 덜 타므로) 엄마들이 고마워하기도 했다고 기억한다. 운동장은 남학생의 공간이었으며 자신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조용히 ‘여자답게’ 놀아야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편하기도 했으며, 그래서인지 ‘왜’ 라는 질문은 갈수록 사라져 갔다고 한다.

학교교육에서 성차별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공론화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는 방법론 문제만 남은 듯하다. 교과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여성과 남성에 대한 성차별적 묘사, 교훈의 남성 중심성, 학교 내의 성폭력 예방교육 등을 비롯한 성교육 필요성의 공감대를 어떻게 확산할 것인지로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눈에 보이는 성차별의 수정·보완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당연히 여기면서 이루어지는 보이지 않는 훈육체계에 복종하는, 그러나 상충되는 가치로 ‘분열’하는 10대 여성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다.

정장에 가까운 하얀 와이셔츠와 치마 교복들이 학교에서의 일상을 부담스럽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10대 여학생들이 교복을 더 예쁘게 입으려는 노력들, 보디가드 피구가 문제라고 말하기보다는 여자는 남자들로부터 보호받는 게 행복이라고 가르치는 학교교과 과정, 여자들도 전문직을 가져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여전히 좋은 엄마·아내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사회에서, 순수하고 똑똑해야 하지만 동시에 아리따워야 하는 10대 여자들의 몸과 머리는 거의 분열될 지경이다. 과연 이 사회의 10대 여자들은 이 모순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변혜정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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