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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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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그도 미치고 싶었을 것이다. 목련꽃,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청초한 향기 머금은 라일락들도. 그렇게 사월이 온 것이다. 그러나 또한 미치고 싶었을 것이다. 속잎은 돋아났지만, 누런 모래로 뒤덮인 숨막히는 꽃들의 절규. 꽃은 떨어지고, 그러나 우리들의 사월이다. 그 눈부신 사월, 목련나무에 수액이 차오르는 봄날에, 꽃구경은커녕 나는 오늘도 동료 교수들과 함께 밤샘농성을 하고 있다. 좋은 선생이 되어, 알뜰한 제자들과 시를 음미하고, 또 스프링처럼 경쾌하게 톡톡 튀어 더 넓은 세상, 예쁜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먼 훗날 제자들과 꽃구경 가 막걸리 한잔 하고 싶었다. 그것이 선생이 되었던 첫날의 다짐이었다. 그런 제자들과 선생들이, 미친 봄날 한 달 넘게 밤샘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학이 어딘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므로, 시인 김선우씨의 표현을 빌리면, 내 혀는 입속에 비굴하게 갇혀 있어야 될까. 그리고 당신들의 혀도, 기형도 시인의 표현처럼 다만 입속의 검은 잎처럼, 그렇게 굳어져야 할까. 육년 전의 가을이었을 것이다. ‘타는 혀’로 말하겠다. 나는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그랬던 내 혀가, 오늘 김선우 시인의 시처럼, 또는 기형도 시인의 절규처럼 그렇게 대롱대롱 온순한 양처럼 백태 낀 침묵 속에서, 무력하면 안 되겠다. 사월이 오면, 또다시 외치고 싶었다. “껍데기는 가라”,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통해 확인해 왔듯, 그 껍데기들은 그냥 나가지 않는다. 아무리 쉰 목소리로, 우리들이 단도직입적으로 “가라 껍데기, 오라 알맹이!” 하는 구호를 외친다고 해도, 누적된 앙시앵 레짐은 오늘도 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 뻔뻔하다. 그러나 나는 그 대학이 어딘지 모르겠다. 관용과 사랑을 설파하는 한 종교대학이, 그 종교적 관용을 몸소 보여주었던 한 교수를 파면하고, 경북지역의 다섯 사립대학의 교수들이 정당한 분노로 교육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울의 한 유수의 사립대학이 도대체가 중세시대에서나 있었을 법한 학생들에 대한 ‘출교’라는 징계를 통해 영구제명을 한다는 일이, 여전히 우리의 사학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일은 어처구니와 소가 함께 웃을 일이다. 그래서,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버짐 핀 얼굴로 밤샘농성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다가 우연하게 마주친 제자의 솔기 꺾인 칫솔을 바라볼 때, 그 제자의 소처럼 맑은 눈을 바라볼 때, 선생의 가슴이 뻐근해졌다. 아,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는데. 목련은 꽃잎을 허공중으로 떠내려 보내고 있는데. 그렇게 “진달래 산천” 붉게 물들어, 제자들과 함께 꽃잎 띄워 막걸리 한잔 하고 싶었는데. 오늘도 나는 농성을 하고 있다. 그렇게 제자들도 밤샘농성을 한다. 숱한 사학의 교수들이 그렇게 쉰 목소리로 교육당국에 외치고 있다.그러나 장미가시는 꽃이 져도 여전히 날카로울 것이다. 비바람과 천둥과 쏟아지는 별빛과 혹서의 태양을 견뎌낸 노송의 주름진 피부 또한 여전히 단단할 것이다. 다시 그러나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밤샘농성을 하는 밤에 신동엽의 시를 읊조리며 나는.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에 다시 ‘올인’하면서, 법안심의를 파행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보도를 들었다. 한 사립대학의 교수로서 경고한다. 부드러운 잎이 무거운 대지를 뚫고 올라온다. 시계를 되돌리지 마라. 지금은 4월, 찬란한 봄날이니까. 이명원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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