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31 19:50
수정 : 2018.08.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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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한당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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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한당 원내대표가 3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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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군인권센터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라는 분은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31일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성태 원내대표가 곧이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최근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기무사의 도·감청 등을 통한 민간인 사찰을 잇따라 폭로한 임태훈 소장에 대한 인신공격이었다. “성정체성 혼란을 겪는 분이 군 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구속된 전력이 있는데, 문재인 정권과 임 소장은 어떤 관계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회의 뒤 기자들과 따로 만나서는 “(임 소장이) 화장을 많이 했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 발언에서 인권 감수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개인의 성 정체성이 기무사의 ‘헌정 유린’ 시도를 고발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김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은 계엄령 검토 문건을 ‘물타기’하려는 그간의 시도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시 촛불시민을 군이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는 실행계획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야당 국회의원을 체포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군내 사조직을 이용한 ‘친위 쿠데타’를 도모한 흔적도 있다. 이 문건을 누가 어떤 경로로 지시했는지, 어느 선까지 보고가 이뤄졌는지를 밝히는 것이 계엄령 문건 논란의 본질이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7월 초 계엄령 문건 폭로 직후 “문건 집단유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달 대신 손가락 가리키기’ 전략이다. 이날도 여러 ‘버전’으로 구사됐다. 임 소장을 공격하는가 하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대응 문건’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군에 이를 제출하라고 억지를 부렸다. 기무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사실 김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의 이런 행태는 박근혜 정부에서 여러차례 반복돼온 패턴이다. ‘박근혜 청와대’는 불리한 국면에 처하면 본질이 아닌 ‘곁가지’를 치는 방식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2014년 ‘정윤회 국정농단 문건’이 나오자 청와대는 내용이 아닌 유출 배경을 지목하며 이를 “사초가 증발한 국기문란”으로 규정했다. 2016년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수사의뢰하자 이 감찰관의 “기밀누설”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문제의 본질을 덮지 못했을뿐더러 국민들의 더 큰 공분을 자아냈다는 점을 김 원내대표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계엄령의 ‘협조 당사자’로 문건에 명시돼 있다. 도의적 책임은 물론 여당으로서 ‘실체적 책임’도 의심되는 상황이다. 김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임태훈 소장의 관계를 밝히라”고 하고 있지만, 정작 밝혀야 할 것은 자유한국당과 기무사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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