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20 21:12
수정 : 2017.04.20 22:15
단 한 글자의 변경. ‘내’에서 ‘(주)’.
전국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27~28일 지부 운영규정(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하는 총회(총투표)를 연다고 19일 공고했다. 기아차지부가 바꾸려고 하는 것은 단 한 글자다. 조합원 자격을 “기아차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기아차 ‘(주)’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기아차(주)’로 규약을 바꾸면, 비정규직 노동자 4712명(2016년 기준)은 기아차지부에 가입할 수 없고, 기아차지부는 정규직 노동자만의 노조가 된다.
기아차 ‘내’에서 근무하지만 기아차 ‘(주)’의 노동자는 아니었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같은 자동차를 만들면서도,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하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왔다.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조를 만들었고, 2008년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1사 1노조’ 원칙을 바탕으로 완성차 노조 중엔 처음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깃발’ 아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원도 인정한, 불법파견 해소를 위한 노사 교섭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파업을 벌이고, 지부 운영에 혼란을 끼쳤다는 이유로, 정규직 노조는 이들을 노조에서 분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아차지부의 이런 결정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화성지회와 전 지부장 등도 ‘1사1노조’ 원칙을 깨선 안 된다며 총투표를 하지 말자고 주장해왔다. 상급 조직인 금속노조조차 19일 총회를 만류하는 공문을 냈고, 20일엔 입장문을 내어 “지난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차별과 불평등을 없애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외쳤던 촛불 민심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기아차지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동안 기아차를 비롯한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노동시장의 임금격차 해소 등 사회적 책임을 무시한 채 자신의 임금 인상만을 위해 싸우는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동조건의 유지와 향상’이라는 노조의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면, 조합원 임금 인상을 위해 회사와 싸우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아차지부가 이른바 ‘민주노조’라면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아차 ‘내’의 노조가 될 것인지, 기아차 ‘(주)’의 노조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건너선 안 될 강’을 건너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대통령을 파면시킨 촛불 이후 ‘직장의 민주화’ ‘일터의 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대선주자들은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1987년 ‘민주노조 쟁취’ 30주년이자 통합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건설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800만 시대에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돛단배”(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유인물),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조직, 조롱과 질타의 대상”(금속노조 입장문)이 될지 여부는 기아차지부와 정규직 조합원들의 판단에 달렸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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