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다. 특히 윤병세 장관이 이끄는 외교부가 첨병으로 나서 유엔 회원국을 상대로 ‘북한 악마화’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이라는 주권국가 자체를 ‘대량파괴무기(WMD) 개발기구’라 규정하며 유엔 회원국 자격까지 문제삼는 등 ‘말폭탄’의 수위가 한계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주유엔대표부 오준 대사와 한충희 차석대사는 각각 15, 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엔 가입 때의 의무를 위반한 북한이 과연 회원국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1991년 9월17일 남북한의 유엔 동시·분리 가입 이후 유엔 공식 회의에서 북한의 회원국 자격을 문제삼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오 대사와 한 차석대사의 이런 문제제기는 외교부 본부의 ‘훈령’에 따른 것이다. 앞서 외교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 직전인 지난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15개 이사국을 상대로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안보리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데 활용할 논리를 정리한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응’이라는 이름의 비공식 외교문서(non-paper)를 유엔대표부에 보냈다. 외교부는 이 자료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7일 외교부 담당 기자들한테도 공개했다. 사실상 ‘공식문서’인 셈이다. 외교부는 이 문서에서 “북한에 의한 안보리 결의 등 여러 국제적 의무의 일상적, 반복적 위반은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자격(평화 애호, 헌장상 의무 이행 의지 및 능력 보유)까지 의문시하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심지어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비판하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북한은 국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대량파괴무기 개발 기구”라고 단정했다. 외교부가 이 문서를 유엔대표부에 보내기 전에 청와대와 협의해 재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정책 탓에 20년간(1974~94년) 자격이 정지됐다 복귀한 사례를 빼고는 유엔이 회원국의 자격을 정지시키거나 제명한 적이 없을뿐더러,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존재하는 한 북한의 자격 정지나 제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교부의 이런 과격한 ‘북한 악마화 외교’에 내부 이견이 없을 리 없다. 한 중간 간부는 “이 엄혹한 시기에 장관이 너무 청와대 기류만 살피며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퍼포먼스식 쇼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젊은 외교관은 “북한과는 앞으로 상종도 안 하겠다는 건지 뭔지, 우리 정부의 외교 행태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렇듯이 윤 장관도 이런 내부 비판에 귀를 기울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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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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