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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31 19:44 수정 : 2015.12.31 20:54

현장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할 수는 없었다.” 지난 11~12일 개성공단에서 어렵사리 열린 제1차 차관급 남북당국회담 결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설명이다. 북쪽이 요구한 ‘금강산관광 재개’와 남쪽이 바라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서로 주고받으며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북쪽에 원칙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는 ‘창의적 해결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쟁점을 그대로 둔 채 합의한 뒤 각자 편한대로 해석하는 이른바 ‘회색지대’ 해법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해소됐는지에 대해 엇갈리는 양국 정부의 견해는 ‘일본 정부의 책임’이라는 표현으로 봉합됐다. 두 나라의 외교장관은 합의문 낭독 회견을 마치며 한·일 관계의 새 시대를 기약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12·28 합의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현실적 제약 속에서 우리 쪽 입장을 최대한 반영시킨 최선의 결과”라고 말했다. 원칙을 양보한 타협이었으되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의 대일 청구권과 관련한 공식 방침은, 200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외교문서 공개 뒤 정립한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2·28 합의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일·한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배상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최종 종결됐다는 것)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고 거듭 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에서 ‘원칙’을 거론하긴 했다.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가 치유되는 방향으로 이 사안이 해결돼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울분을 토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에겐 “대승적 견지에서의 이해”를 요구했다. 원칙을 제대로 지켰다면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해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김진철 기자
박근혜 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원칙’으로,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과 북의 거리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나 대한해협은 좁혀질 참이다. 이산가족 문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놓고 북쪽과 창의적 해결 방안을 궁리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에는 원칙을 고수하는 일은, 이 정부에서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남쪽 당국은 부인했으나, 당국회담 결렬 뒤 북쪽은 남쪽의 금강산관광 재개 반대의 배경에 ‘미국’이 있다고 지적했다. 12·28 합의 뒤 일본과 함께 가장 기뻐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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