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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6 20:23 수정 : 2015.08.17 08:14

현장에서

일본인의 근현대사 인식의 저류를 관통하는 것은 아마도 소설가 시바 료타로(1923~1996)가 완성한 ‘시바 사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바 사관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그가 1968년부터 <산케이신문>에 연재한 대하소설 <언덕 위의 구름>이다.

소설은 현재의 에히메현에 해당하는 이요마쓰야마번 출신 세 젊은이의 성장담으로 구성돼 있다.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 일본’에서 청운의 꿈을 품은 이들은 각각 일본 육·해군의 장교와 저명한 문필가로 성장한다. 이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시대적 과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었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마수가 조선에 뻗쳐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은 싸워야 했고, 마침내 이겼다는 것이 소설이 말하는 큰 주제다. 이런 역사관으로 보면, 메이지 시대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결행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좋았던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이 되고, 1931년 만주사변에서 시작된 ‘쇼와의 전쟁’은 메이지 시대의 선배들이 쌓아 올린 조선 병합 등의 성과를 일거에 날려버린 잘못된 전쟁으로 해석된다. 이런 역사 인식은 14일 아베 담화에 철저히 반영돼 있다.

아베 담화는 “100년 전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한 서구 식민지배의 물결은 아시아에도 밀려왔다. 일러전쟁은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많은 아시아·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했다. 이어 담화는 한때 성공했던 일본이 세계공황 등으로 큰 타격을 입어 고립됐고, 이를 타결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 패전했다는 인식을 밝히고 있다.

담화가 간접적으로나마 반성·사죄하는 것은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쇼와의 전쟁’일 뿐, 조선을 강제병합하는 과정에서 벌인 ‘메이지 전쟁’에 대해선 오히려 미화했다. 담화는 ‘쇼와의 전쟁’ 상대였던 미·중에 대한 유감 표명일 순 있어도, 한국에 대한 사과는 아니며 한반도 강제병합을 정당화하려는 위험한 사관을 숨기고 있다.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듣고 깊이 절망한다. 박 대통령은 “(아베 담화에 관해선)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일본에 대한 정면 비판은 삼갔다. 1995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에 대해 분명히 사죄·반성했고, 2010년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의 조선 병합이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고 인정했다.

도쿄 길윤형 특파원
아베 총리는 1910년 시작된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담화는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소름이 끼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수호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를 지고 있는 박 대통령은 자신의 눈으로 담화를 한번 숙독하기나 한 것일까.

도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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