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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8 17:46 수정 : 2019.11.14 17:33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사이 갈등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아베 정부가 일본 기업의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면서 시작된 무역 갈등은 경제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한겨레>도 소재·부품의 대일 의존도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등을 보도하면서 부품 의존성의 현실을 보도하였다. 또한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예약 취소 분위기 등의 현실도 잘 보여주었다. ‘수출규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에 관한 일본과 영미권의 매체들 기사도 보도하여, 외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상대적으로 중국이나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은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이해는 좀더 역사적인 접근을 필요로 한다. 제국주의와 냉전의 유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제국주의와 냉전의 유산이 남아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일본은 ‘탈아입구’를 내세우며 추격 발전에 성공했다. 서구 제국주의를 따라하여 영토 확장을 도모하면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던 2차 대전을 일으켜 조선의 젊은 남성과 여성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끝났지만 일본의 보수 정치 세력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 대신에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다. 반성은 자학이라 비판하고, 역사 왜곡을 통해서 제국주의 시대를 찬미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2차 대전 직후 당시 독일·이탈리아·일본에 맞서 함께 싸웠던 미국과 소련이 서로 대립하는 냉전체제가 만들어졌다. 1947년 소련 주재 미국대사관 외교관 조지 케넌은 엑스(X)라는 필명으로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스탈린의 팽창주의에 대응하여 소련을 차단하는 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해리 트루먼이 그의 견해를 받아들여, 소련, 중국과 협력해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루스벨트의 안을 폐기하고 소련과 중국을 포위하는 트루먼 독트린을 선포했다.

냉전체제의 등장으로 일본에서 연합군사령부가 시도했던 탈군국주의 민주화 개혁도 중단됐다. 연합군사령부는 전범 처형을 최소화하고, 일본 군국주의 세력을 부활시켜 소련에 대응하는 ‘역코스’라 불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일본은 전범국가가 아니라 소련과 중국의 팽창을 막는 미국의 아시아 파트너로 탈바꿈했다.

더구나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초호황을 누렸다. 미국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 전쟁 물자를 조달하면서, 한국전쟁 3년 동안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총 25억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당시 일본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는 한국전쟁을 ‘하늘의 은총’이라고 불렀다. 식민지로 고난을 겪었던 한반도는 전쟁으로 초토화되었지만, 일본은 초호황 전쟁경기를 누렸다.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서 한-일 국교 정상화를 도모하고, 공산권에 대항하도록 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대학생들의 대규모 반대 시위에도 불구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한일기본조약을 성급하게 조인했다. 일본의 조선 침탈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일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20세기 말 동아시아 경제는 크게 변했다. 1995년부터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는 동안 중국은 2009년 일본을 추월하여 G2 국가로 급부상했고, 한국도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중국, 일본, 한국 순으로 8:3:1 정도로 좁혀졌다. 일본 보수 세력엔 받아들이기 싫고 또 두렵기도 한 현실이다.

동아시아는 전자제품 생산에서 국제 분업체계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동아시아의 기업들은 일본, 한국,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타이 등 여러 나라의 기업들에서 생산된 부품을 이용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완제품을 만든다. 글로벌 수준에서도 생산 네트워크가 통합되어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이러한 네트워크를 차단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기업과 소비자들에 손해를 끼치는 시장 교란 행위다.

동아시아의 미래는 과거사의 매듭을 푸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유럽과 독일의 역사가 보여준 것처럼, 가해국의 지속적인 사죄와 더불어 여러 나라가 상생과 공존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게 될 때 새로운 동아시아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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