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정민의 전 남자친구인 ㅅ씨는 김정민이 결혼을 전제로 거액의 돈을 받아 쓰고 잠적했다면 이게 사기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양자가 공히 인정한 협박과 공갈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 진위 여부가 법정에서 다퉈지지 않은 혼인빙자사기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한국방송(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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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방송인 김정민
방송인 김정민의 전 남자친구인 ㅅ씨는 김정민이 결혼을 전제로 거액의 돈을 받아 쓰고 잠적했다면 이게 사기가 아니냐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양자가 공히 인정한 협박과 공갈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 진위 여부가 법정에서 다퉈지지 않은 혼인빙자사기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한국방송(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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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공개하겠다” 등 협박 시달려
ㅅ씨 공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혼인빙자 사기’라며 되레 큰소리
“결혼 전제로 지원받고 관계 끊었다면
김정민은 협박을 당한 게 싼 사람 되나?”
진위 불투명한 주장에 관심갖기보다
피해자 더 염려해줄 수는 없는 걸까 여성 연예인들에게 씌워진 폐습 근래에 언론이 살펴봐야 할 쟁점이라며 하고 있는 이야기인즉슨 ㅅ씨의 주장, 즉 김정민이 결혼을 전제로 거액의 돈을 받아 쓰고 잠적했다면 이게 사기가 아니냐는 이야기다. 소송 당사자 양자의 명예가 달려 있는 진실공방의 문제이니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에 있다. 설령 ㅅ씨의 주장대로 김정민이 결혼을 전제로 금전적인 지원을 많이 받고 관계를 끊었다면, 김정민은 그런 협박을 당한 게 싼 사람이 되고 ㅅ씨가 한 일에 이해할 만한 구석이 생기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말 ㅅ씨의 주장이 맞다고 치더라도, 그 억울함을 풀려면 진작에 사기 혐의로 소송을 거는 게 맞았다. 헤어진 것은 2015년 1월이었는데, 소송은 2017년 1월에 걸었다. 그 2년 사이 문자를 통해 협박과 공갈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가만히 있는 사람을 협박한 것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세상에 협박을 당해도 좋을 만한 사람 같은 건 없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사인의 자력 구제는 금지하는 것이 문명사회의 대원칙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겠다는 생각에 법원을 찾아가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상대를 협박하는 순간부터 그건 이미 별건의 문제인 것이다. 상대가 가만히 있었든 아니든, 그러면 안 되는 종류의 범죄. 한 방송을 통해 공개된 문자 내용에는 협박의 내용이 빼곡하다. 집 문을 뜯고 들어가 있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는 가택침입 협박, 존재하지도 않는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디지털 성범죄 협박, 사생활을 널리 알려 연예계 활동을 못 하게 막겠다는 명예훼손 협박까지. 그 종류와 정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문자를 타고 전송됐다.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거나, 사생활을 널리 알려 연예 활동을 못 하게 막겠다고 한 협박 내역, 자기 혼자만 겪은 일이 아니라는 식의 발언들은 전형적인 슬럿셰이밍(여성의 옷차림이나 행동거지, 사생활 등 성적인 면모를 빌미로 비난하는 것)이다. 김정민이 사생활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 교제를 하는가 등의 라이프스타일을 대중이 왜 알아야 하고, 그게 왜 갑자기 방송인으로서의 김정민에 대한 판단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이는 여성 연예인들에게 오랫동안 씌워져온 이미지의 굴레, 자신의 욕망이나 성향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행실이 부적절하고 헤픈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오랜 폐습을 이용한 협박이다. 그리고 이게 마치 협박과 공갈만큼이나 엄청난 쟁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들 또한, 피해자에게 “당할 만하게 굴었으니까 당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러니까 누가 짧은 치마를 입으랬더냐”라거나 “젊은 여자가 밤늦게 다니니까 그런 변을 당한 것”이라고 말하는 식의 뻔하고 지겨운 “너도 잘못이 있어” 프레임.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피해를 받아도 좋을 만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ㅅ씨는 1억6천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면서 “돈을 다 돌려준 것은 검찰에서도 확인을 했다. 당한 게 억울해서 순간적으로 받은 것이다. 나도 먹고살 만큼은 번다. 다 돌려준 것은 검찰에서 증빙했다”(<중앙일보> 7월11일치)고 말했다. 상대가 협박 끝에 1억6천만원을 가지고 와도 다시 돌려줄 거면, 애초에 협박은 왜 했던 것인가? 결국 바라왔던 게 돈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액수의 돈을 빌미로 협박을 하면 상대가 이기지 못하고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만에 하나 그렇다면 이건 더 이상 혼인빙자사기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유로 물리적·심리적 폭력 행사를 정당화하는 상대를 상대해야 하는 ‘안전 이별’의 문제이며 사이버스토킹의 문제가 된다. 인터넷 보안업체 노턴사의 대변인 메리언 메릿은 “기술, 특히 인터넷을 이용하여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사이버스토킹이라 말하며 그 예로 “이메일, 인스턴트 메시지, 전화 통화, 기타 통신장치”를 수단으로 삼아 이루어지는 “비난, 비방, 감시, 협박”을 들었다. 사이버스토킹의 피해자를 두고, 그가 정말로 무고하기만 한 피해자인지를 따지는 게 먼저여야 했을까? 믿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지금 무엇인가. 사람들은 말이 엇갈리는 양자가 공히 인정한 협박과 공갈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아직 그 진위 여부도 법정에서 다퉈지지 않은 혼인빙자사기 문제로 누구 말이 맞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물론 가십성 이슈의 특성상, 이미 답이 나온 문제보다 치열하게 시비를 다투는 문제에 더 시선이 가는 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 가택침입, 명예훼손 협박을 저지른 사람이, 태연하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단은 협박이나 공갈로 기소된 것은 맞다. 그 부분은 제가 벌을 받으면 된다”(<중앙일보> 7월11일치)고 이야기하면 그게 끝인가? 방송이 생업인 김정민은 상대방조차 인정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이면서도 고정출연하는 방송을 모두 접고, 출연이 예정되어 있던 프로그램도 출연을 취소해야 했다. 김정민 쪽이 법원이 혼인빙자 소송에 지정해준 조정 기일조차 “조정에 응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조정 절차를 철회해달라고 밝힌 건,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보다는 아직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대의 주장을 더 관심있게 볼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린 정말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가 입은 피해를 더 먼저 염려해주고 연대할 수는 없는 걸까? 김정민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올린 글을 마무리하며 “여러분이 힘이 되어주시고 저를 끝까지 믿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입은 피해를 위로하고 그의 곁에 서는 건, 굳이 그를 믿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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