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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20 19:57 수정 : 2016.05.21 10:27

그룹 에이오에이(AOA)의 멤버 설현과 지민이 지난 3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채널 에이오에이>에서 사진 속 명사 이름 맞히기 게임을 하는 모습. 채널 에이오에이 방송화면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느 날 뜬금없이 이렇게 묻더라는 것이다. “선생님, 그러니까 아이엠에프(IMF) 긴급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서 그걸 이겨내려고 새마을운동을 한 건가요?” 한 집 걸러 한 명씩 실업과 파산을 겪던 우울한 시절이 어제처럼 생생한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20년도 채 안 된 일이 이렇게까지 전승이 안 될 수 있느냐고 혀를 차려다 멈췄다. 아이들에게 아이엠에프 위기란 태어나기도 전에 터진 일이고 그렇다고 국사책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역사도 아닐 테니, 금 모으기 운동과 새마을운동을 헷갈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인이 역사 교과목을 담당한 사람도 아닌데 지인에게 물어본 걸 보면 특출하게 역사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아니었으리라.

머릿속에 광주민주항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5월 광주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된 건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가 처음이었다. 한참 국회에서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검찰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12·12 관련 혐의로 기소하던 시절,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5월 광주가 무슨 일인지 알려주는 것은 드라마가 유일했다. 95년이야 내가 초등학생 때였으니 그렇다 쳐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광주민주항쟁에 대해 굳이 시간을 쪼개어 상세히 가르쳐준 건 전교조 소속 교사들뿐이었다. 어른들이 특별한 의도가 있어 나에게 광주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점수로 환산 가능한 교과목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시험 출제 빈도도 낮은 현대사 파트를, 그것도 교과서에도 두세 줄 서술되고 끝난 일을 굳이 공들여 가르칠 생각들이 없었던 것이리라.

요즘엔 학교에서 광주를 어떻게 가르치는가 싶은 마음에 대학교 후배들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역시 대부분의 후배들은 광주를 교과서나 교사가 아니라 영화 <화려한 휴가>(2007)나 강풀 만화 원작의 영화 <26년>(2012)을 통해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크게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알고 종종 집회에 나가 그 노래를 따라 불렀던 친구들조차, 그 노래가 전남도청에서 죽어간 시민군 윤상원과 1979년 들불야학에서 숨을 거둔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란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이다. 붙잡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특별히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한 일, 내가 아이엠에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금 모으기 운동과 새마을운동을 헷갈리는 것에 당황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광주민주항쟁 이후 태어난 우리 세대가 광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빈약한 지식 수준에 개탄할지 모른다.

AOA 설현·지민 향한 십자포화
‘어린’ ‘여자’ ‘딴따라’에 대한
3중의 하대는 아닐지…

‘화려한 휴가’로 5월 광주를 알고
‘암살’ 봐야 김원봉 들어보는
대입 중심 역사교육 현실에서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손가락질
이제 그만 거둬도 좋지 않을까

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터졌을 때에도 나왔던 지적이지만, 검인정 체계를 채택한 현행 체계에서도 한국의 국사 교육은 국가가 알리고 싶은 역사 위주로 진행된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인 교육 과정 총론과 각론을 잡는 건 교육부의 업무고, 그나마도 정치적 논란이 될 만한 파트는 최대한 언급을 피한 탓에 한국의 근현대사 교육은 거의 반쪽이 되어 너덜너덜한 수준이다. 약산 김원봉처럼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한 이조차 월북했다는 이유로 좀처럼 언급이 안 되어 있는가 하면, 미국과 소련이 모두 가장 유능한 민족지도자 후보로 손꼽았던 여운형은 중도 좌파였다는 이유로 교과서상의 대접이 영 시원치 않다. 제3공화국과 제5공화국의 탄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조차 아직도 정치적 논쟁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한국의 국사 교육은 ‘국가가 별 부끄러움이나 논란 없이 흔쾌히 알려주고 싶은 역사’를 그 뼈대로 삼는다.

그나마도 대입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과목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아이들에게 “국영수 중심의 공부”를 강조해온 한국에서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과목은 어쨌거나 거추장스러운 과목 취급을 받으니 말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도 학생들의 역사 지식 부족은 늘 논란의 대상이었고, 해서 지난 몇 년간 역사교육 과정은 급격한 변화를 거듭했다.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신설됐다가 다시 기존 국사 과목과 통폐합되며 한국사 과목이 되고, 과거 국사 과목에서 배웠던 파트들을 중학교로 내려보내 세계사와 함께 ‘역사’의 틀 안에서 배우게 하는가 하면,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켰다가 해제했다가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역사를 잘 모른다는 지적에 “안 배우고는 대학에 못 가게 만들면 곧잘 배우겠지” 식으로 대응한 교육정책. 역사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알려주고 그것을 기반으로 각자 저마다 토론을 하며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과 역사관을 쌓아가도록 유도하는 교육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건 꼭 알아야 한다”는 식의 ‘필수 사관’을 만들어 하달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역사 교육이었다.

온스타일 <채널 에이오에이(AOA)>에 출연한 에이오에이의 멤버 설현과 지민은 김구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히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안중근의 사진을 보고 그 이름을 맞히는 데엔 실패했다. 제한시간 안에 역사적 인물들과 유명인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맞혀야 하는 퀴즈, 성씨가 안씨인 것은 어렴풋이 기억했는지 “안창호”라고 중얼거리던 지민은 제작진이 힌트로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을 던져주자 더더욱 감을 못 잡는 표정이 되어 제작진을 향해 “긴또깡?”이라고 물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은 역사에 무지하다”라고 고백했고, 정답이 안중근이라는 것을 알자 “안중근님 맞아”라고 재차 곱씹었다. 그리고 해당 회차가 방영된 이후 대대적인 비난에 시달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역사적 지식 부족에 대해서,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사과했다. 자신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명시하고, 앞으로 그 잘못을 어떻게 고쳐 나갈 것인가도 명시해 둔 사과문이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컴백을 앞두고 악재를 피하려고 한 면피성 사과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혹자는 지난 2월부터 3월 사이에 방영된 한국방송 <해피선데이-1박2일> 하얼빈 특집 편에서 늘 어리숙한 이미지였던 김종민이 의외로 역사적 지식이 풍부했다는 점을 들어 비교를 했다. 그러나 퀴즈를 맞힌 김종민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던 것과 별개로 정답을 몰랐거나 장난스레 대답했던 다른 멤버들에 대한 비판이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다. 물론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잘 몰랐던 점들을 배워가는 게 콘셉트였던 <1박2일> 하얼빈 특집편과, 시간에 쫓기며 퀴즈를 풀어야 방을 탈출할 수 있는 탓에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간 <채널 에이오에이>를 등가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다른 온도차이를 보면, 이것이 “어린” “여자” “딴따라”라는 3중의 하대가 작용한 결과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것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그것도 안중근처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얼굴을 매치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사과 후에도 이렇게 십자포화를 당해야 하는 일인지는 갸우뚱하다. 영화 <암살>(2015)을 통해서야 비로소 김원봉의 존재를 알고 <동주>(2016)를 통해서야 송몽규를 기억하는 나라에서, 학생들이 박정희와 전두환을 헷갈리고 5·16과 5·18을 혼동하며 언론에서도 윤봉길과 이봉창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는지 ‘윤봉창’이라고 잘못 적는 일이 터지는 틈바구니에서, 연예인을 향해 “나도 아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라며 손가락질하는 게 무슨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연예인이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게 개탄스러울 순 있겠지만, 그게 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이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구성원들에게 교육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 없이 누구 한 명을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그 손가락, 이제 그만 거둬도 좋지 않을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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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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