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노래 ‘인디고 차일드’에 참여한 래퍼 블랙넛은 자신의 가사에서 피해자성 탄핵과 우생학-위선자 전략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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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길 한복판에서 건장한 사람이 다른 이를 때리고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대부분 웅성거릴 테고, 어떤 이는 상황에 직접 개입해 말리려 들 것이며, 누군가는 전화기를 꺼내 경찰에 신고를 할 것이다. 누가 봐도 온당치 못한 폭력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죄니까. 하지만 만약 범죄 여부를 단언하기 어려운 담론의 장에서 벌어지는 비난과 공격이라면 어떨까? 인터넷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여성, 장애인, 호남, 노인과 아이,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무슬림에 대한 근거없는 매도와 공격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온당치 않은 비난에 대해 비판을 던질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혐오발언으로 규정하고 범죄로 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한 사회에선, 가해자들이 그 틈을 노려 몇 가지 논리구조를 동원해 자신을 변호하곤 한다. 첫째는 “약해 보이는 저들은 사실 뒤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조직이나 이익단체를 끼고 있어서 ‘정상적인’ 우리를 억압한다”는 음모론이다. 최근 무슬림이나 이주노동자,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에서 자주 나오는 논리구조다. 한국의 기독교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반기독교 세력의 조직적인 음모가 진행되는 탓에 무슬림과 성소수자들에게 특혜가 주어진다거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들기 위한 친일세력의 음모로 다문화 정책이 이뤄지고 있다거나 하는 식의 음모론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기에, 이런 음모론은 비교적 금방 논의의 시장에서 탈락하고 만다. 둘째. “혐오할 만한 일을 저질렀으니 혐오하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피해자성을 탄핵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성을 “명품을 밝히고 한끼 식사보다 비싼 커피를 좋아하며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는 주제에 남자들 등쳐먹는 프리 라이더”로 몰아세워 여성혐오를 정당화하거나 “알고 보니 저들이 바라는 건 진실이 아니라 거액의 보상금과 대입 특례였다”는 거짓 프로파간다로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 등이 있겠다. 피해자성 탄핵은 음모론에 비해선 그 힘이 더 센데, 실존하는 일부를 표본으로 제시해 그것이 모집단(여성, 이주노동자) 전체의 속성인 것처럼 왜곡하거나, 사실관계의 맥락을 왜곡해 마치 전체 프로파간다가 다 진실인 것처럼 위장하는(세월호 유가족)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셋째. “어차피 세상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이고 우리 모두의 본성엔 이런 이기적인 유전자가 있다”는 우생학적 합리화와 “난 적어도 내가 그렇단 사실을 인정이라도 하지만 넌 뭐냐”고 외치며 상대를 위선자로 정의하는 전략의 결합이다. 앞의 두 논리가 디테일한 사실구조를 왜곡한 탓에 팩트 체크를 꼼꼼히 하는 것만으로도 비교적 쉽게 논파되는 것에 반해, 우생학-위선자 전략은 자신의 행동이 약자에 대한 탄압과 착취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의 본성이라는 더 큰 요인 탓으로 돌리며 메신저를 공격하는 논리라 파훼가 더 까다롭다. 이 논리를 구사하는 당사자 자신도 탄압을 당했던 약자라면 그 위력은 배가된다. “나 또한 이 사회의 약자로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남기 위해 이 꼴 저 꼴 다 보며 살아왔지만 아무도 날 보호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살아남기 위해 나보다 약자를 때리는 건데, 너희도 내심 그러고 싶으면서 겉으로만 위선을 떠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내가 얻어맞을 땐 다들 어디 있었는데?”라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성희롱하는 가사 써놓고“너넨 이런 말 못하지” 섹시코드의 비난에
“어차피 너도 좋아할 거면서”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윤리적 폐허에
도달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사설이 길었다. 최근 발표된 노래 ‘인디고 차일드’(indigo child)에 참여한 래퍼 블랙넛은 자신의 가사에서 피해자성 탄핵과 우생학-위선자 전략을 적극적으로 밀고 있다. 블랙넛은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 보고 딸 쳐봤지”라며 특정 여성 아티스트를 성희롱하는 가사를 써놓고도, 이를 “너넨 이런 말 못하지. 늘 숨기려고만 하지, 그저 너희 자신을. 다 드러나, 니가 얼마나 겁쟁이인지”라는 가사를 통해 정당화하려 한다. ‘찌질하지만 진솔한 나’와 ‘나와 속내는 똑같지만 그걸 숨기는 겁쟁이 위선자’라는 이분법으로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래퍼들에게 돈이나 여자 말고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랩을 해보라 충고했던 래퍼 엠씨 메타를 겨냥한 공격 또한 마찬가지다. “니가 진짜 걱정하는 건 추락하는 니 위치지, 아니잖아 세월호의 진실이”라는 가사 안에는 ‘어차피 인간은 모두 제 위치만 걱정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우생학과 ‘넌 그런 속내를 말 못하지만 난 다 말할 수 있다’며 상대를 위선자로 몰아가는 논점왜곡이 함께 도사리고 있다. 앞서 지적했던 대로 우생학-위선자 전략은 그 발화 당사자 본인이 사회적 약자로 박해를 당했던 전력이 있을수록 더 위력을 발휘한다. 블랙넛과 그의 옹호자들은 그가 구조적인 가난과 외모에 기인한 주위의 멸시, 학교폭력의 피해자 등 다양한 층위에서 박해를 당했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자신의 처지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위악적인 태도로 ‘찌질이’를 자처함으로써 극복했다고 말한다. ‘인디고 차일드’의 가사에서도 블랙넛은 “나는 알아. 우린 다 찌질이가 맞아”라는 가사를 통해 자신은 찌질한 사람이고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도 사실 자신과 다를 바 없이 찌질한 사람들이라고, 자신은 그저 그 사실을 이야기할 용기가 있는 것뿐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이 블랙넛만의 전략은 아니다. 최근 신곡 ‘찔려’를 발표한 걸그룹 스텔라의 소속사 관계자는 뮤직비디오에 벌레와 살충제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찔려’라는 부분을 심리적으로 찔리는 것으로 해석해 (중략) 스텔라의 ‘섹시코드’를 훔쳐보고 욕하는 소위 선비충(대중)들의 이중적 잣대를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박수정 <텐아시아> 기자, 2016년 1월21일, “스텔라 선정 ‘찔려’ 뮤직비디오 명장면”) 도덕적, 윤리적 층위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비하하는 단어인 ‘선비충’이 소속사 관계자의 입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무심함. 말하자면 ‘어차피 너도 걸그룹들의 섹시코드 경쟁을 보며 즐길 거면서 겉으로만 도덕적 엄숙주의를 말하는 위선자’라는 뜻이다. 선정적인 콘셉트를 좋아하면서도 겉으론 싫어하는 척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조피디와 싸이가 함께했던 노래 ‘아이 러브 섹스’(“속으론 좋아도 겉으론 삿대질”)나, 박진영이 작사 작곡해 미스에이에게 준 ‘배드 걸 굿 걸’(“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에서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대상화된 성을 소비하는 이들과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동일하다는 근거없는 비약에 기대고 있다. ‘결국 너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란 가정을 공격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섹시 콘셉트가 아니고서는 소속 아티스트를 띄울 만한 좋은 곡이나 프로모션을 제공할 능력이 안되는 매니지먼트사의 무능을, 과도한 섹시 콘셉트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대중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면피하는 광경은 낯뜨겁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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