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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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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16일 소설가 이응준은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 기고문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을 통해 신경숙의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의 표절작이며, 문화권력이 된 신경숙에게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한 한국 문단은 공범으로 전락했노라 비판했다. 이미 15년 전 문학평론가 정문순 또한 <전설>이 <우국>의 명백한 표절작이란 비판을 <문예중앙>에 실었다는 사실도 재조명되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폭발적인 유행어가 되어버린 “기쁨을 아는 몸”을 비롯한 몇몇 문장들은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복사기를 돌린 것처럼 유사하나, 상세한 논의들은 일 핑계로 오랫동안 책을 멀리한 내 것이 아니라 꾸준히 책을 가까이한 다독가들의 몫일 테니 말을 아끼겠다. 다만 신경숙과 출판사 창비의 반응이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것들이란 점에 대해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 시비와 모방을 변명하는 유구한 전통만큼은 텔레비전이 선배이기 때문이다. 표절 시비와 모방을 변명하는유구한 전통만큼은 텔레비전이 선배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흔한 답안은 “본 적이 없다” 였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텔레비전 피디들이 일본에 ‘출장’을 다녀오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본 텔레비전 개편철에 맞춰, 현지 여관방 하나 잡아놓고 리모컨을 돌려가며 일본 프로그램의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해 돌아오는 일을 ‘출장’이라 불렀던 것이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기 전인 70~80년대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그저 출장지가 일본 전파가 잡히는 부산이었을 뿐. 심지어 일본 문화를 안방에서 접하는 게 가능해져 시청자들 또한 일본 프로그램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21세기에 들어서도 표절 의혹은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 티비에스(TBS)로부터 자사의 <행복한 가족계획>을 표절했다는 항의를 들은 에스비에스 <특명! 아빠의 도전>(1997~2005), 후지티브이의 <트리비아의 샘>와 비슷하다는 네티즌들의 질타에 포맷 참조를 시인하면서도 차이점을 강조했던 한국방송 <스펀지>(2003~2012), 일본 만화 원작 드라마 후지티브이 <라이어 게임>(2007)과의 표절 시비가 붙었던 티브이엔 게임쇼 <더 지니어스> 시리즈(2013~)까지. 어디 일본뿐이겠는가. 미국 엔비시(NBC) 시트콤 <프렌즈>(1994~2004)의 인물 구도를 고스란히 따온 문화방송 <남자 셋 여자 셋>(1996~1999)이나 지리적 배경과 세트까지 고스란히 참조한 에스비에스 <뉴욕 스토리>(1997~1998)도 빼놓을 수 없다. 작정하고 적기 시작하면 아마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요즘에야 안방에서도 바다 건너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게 쉬워져 딱 잡아떼기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만,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한 흔한 답안은 “본 적이 없다”였다. 시청자들이 직접 비교 확인을 하기 어려우니, 일단 지르고 봤던 것이다. 아직 가장 대중적인 영상매체가 브이에이치에스(VHS) 비디오테이프였던 시절이었고, 외국 프로그램을 보려면 현지에서 비디오테이프를 확보해 들여와야 했던 시대에 가장 보편적이던 변명이다. 1999년 방송위원회는 같은 해 7월 방송된 에스비에스 <서세원의 슈퍼 스테이션>의 코너 ‘현상수배’가 후지티브이 <달려라 행복건설>의 ‘도망자’를 베꼈다는 판단을 내렸다. 프로그램 중 20여군데가 닮았고, 개중 네댓 장면은 아예 똑같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아예 똑같다’는 판단에 대해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전엔 <달려라 행복건설>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로그램 방영 뒤 일본 프로를 봤는데 유사점이 많았다. 문제가 된다면 앞으로 포맷을 대폭 변경하겠다.”(<동아일보> 1999년 8월6일치, 에스비에스 ‘서세원의… 현상수배’ 방송 표절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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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논란 와중에 나오는 ‘본 적이 없다’는 흔한 변명의 선배는 텔레비전이다. 문화방송 ‘아빠! 어디 가?’(위 사진)를 참조한 티가 역력한 한국방송 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아래)는 오히려 더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재빨리 따라하는 전략이 별다른 비판을 받지 않고 성공하는 분위기에서 과연 어떤 제작자들이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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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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