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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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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TV’
사람이 과체중이다 보면 타인으로부터 일상적인 무례를 마주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를테면 체중이 덜 나갈 때 찍었던 프로필 사진을 두고 “포토샵으로 턱을 깎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거나, 식당에서 밥을 잘 먹으면 “그러니까 살이 찌지”라는 말을 듣고, 남기면 “왜 이거밖에 안 먹어”란 소리를 듣는다거나, 평소에는 비교적 소식하는 편이라고 답하면 “그런데 몸은 왜 그러냐”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받아내야 한다거나. 생의 절반 넘게 과체중으로 살다 보니 이제 이런 말들이 귓전에 딱지처럼 앉았다. 일 년에 두어 차례 명절 때나 마주하는 사촌들은 괜히 할 말이 없으니 함부로 남의 배를 만지며 “넌 살 좀 빼야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나는 “그나마 연휴를 앞두고 일을 몰아서 하느라 몇 ㎏쯤 빠진 채로 온 거”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조용히 웃고 만다. 대단한 악의를 담은 말들이 아니니 화를 낼 수도 없다. 기분 나쁜 티라도 냈다간 “덩치는 넉넉하면서 배포는 왜 이렇게 작아”라는 말을 듣게 될 테니.
유민상·김현숙·김준현·이국주 등 과체중·비만을 개그 소재로 삼아
농담의 ‘대상’ 아닌 ‘주인공’ 설정 살찐 이는 게으르고 나태하다는
고정관념 뒤엎는 게 ‘웃음 코드’
날씬해야 꼭 행복한 건 아니잖나 어디든 사정이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겠지만, 한국은 유달리 살이 찐 사람들을 멸시한다.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량아 선발대회’라는 걸 열어가며 “아이를 살찌워 튼튼하게 키우자”는 메시지를 강조하던 나라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모아 “살이 찐 것은 운동을 하기 싫어하는 게으름과 식탐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기관리 실패의 결과”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오늘 일도 아니어서, 언제부터인가 티브이에선 마른 사람들을 보여주며 미의 기준으로 칭송하고, 과체중이나 비만인 이들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아 놀렸다. 주병진은 문화방송(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입버릇처럼 노사연에게 “살 좀 빼”라고 외쳤고, 이영자는 “살아, 살아, 내 살들아!”라는 유행어로 방송계의 신예로 떠올랐다. “개그의 소재로 삼으면 다들 항의해서 개그를 할 수가 없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누구나 마음 놓고 놀릴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인 살찐 사람은 마음 놓고 농담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마른 이들은 살찐 이들에게 폭언을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웃겼고, 살찐 이들은 제 식탐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는 것으로 웃기는 시대, 티브이부터 그러고 나서니 세간의 반응이야 오래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살찐 것을 죄악시하는 시절, 살찐 사람을 소재로 하는 농담은 쉽게 식상해지고 대체로 불쾌하다. 살찐 사람이 마른 사람들을 억지로 따라하려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거나, 마른 사람과 비교되면서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가치 판단과 하대의 대상이 되거나. 하지만 가끔, 과체중과 비만을 소재로 하는 개그가 신선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시선을 마른 사람이 아니라 살찐 사람 중심으로 놓고 상황을 역전시키는 순간들이 그렇다. 2005년도 한국방송(KBS) <폭소클럽>, 당시 신인이었던 유민상은 신인 데뷔 코너 ‘록키 앤 루키’에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이란 스탠드업 코미디를 들고나왔다. 마른 인간들이 죄다 멸종하고 비만인들만 남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코너에서, 마른 인간들의 기록들을 연구하는 연구가 유민상은 풀기 어려운 난제들 앞에서 고뇌한다. 산에 올라가면 호흡곤란으로 죽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왜 마른 인간들은 산으로 올라갔을까. 마른 인간들이 먹었던 초콜릿 뒷면엔 왜 의미를 알 수 없는 칸이 나뉘어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허리의 위치는 정확하게 어디인 걸까. 여전히 농담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살찐 이들이지만, 살이 찐 게 정상인 미래인이 ‘비정상’인 마른 인간들을 궁금해하는 이 농담은 적잖은 이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비슷한 시기,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던 김현숙은 ‘출산드라’라는 캐릭터로 등장해 마른 이들을 훈계하고 그들이 하루빨리 회개해 풍만한 몸매를 갖추기를 기원하는 코미디를 선보였다. “날씬한 것들의 세상은 가고 곧 뚱뚱한 이들의 시대가 올 것”이란 복음을 전파하며 무대 위로 올라와, 객석을 둘러보며 “아직도 깨닫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거나 “하체에만 축복을 받은 이”들이 상체까지 고루 축복받기를 축성하는 출산드라의 코미디 또한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식욕은 죄가 아니고,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며, 과도하게 마른 당신들이 오히려 비정상이라는 당당한 주체의 목소리 말이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는 남자도 그럴 것이나, 그게 여자 연예인일 경우엔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시선의 한가운데에서 농담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농담의 ‘주인’ 자리에 가서 선 출산드라라는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으며, 출산드라를 연기한 김현숙은 티브이엔(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를 통해 과체중 비혼 직장여성이 겪는 일상적인 모멸과 시련을 손에 잡힐 듯 그려냈다. 2010년대 들어 이렇게 일방적으로 정해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전복시키는 개그는 더 자주 시도되었다. <개그콘서트>의 ‘네가지’에서 김준현(사진)은 살찐 사람들이 흔히 마주하는 편견에 분노하며 “살이 쪘다고 해서 추위를 못 느끼는 게 아니”라거나, “고깃집에서 종업원을 불렀을 때 늘 추가 주문을 위해서 부르는 것은 아니”라는 열변을 토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코너 ‘아빠와 아들’에 등장한 유민상과 김수영은 폭발적인 식탐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라면 끓여 먹자. 몇 개 끓여 먹을까?” “음… 열 개요!” “열 개? 넌 안 먹을 거니?” 따위의 짧은 대화들로 구성된 ‘아빠와 아들’은 살찐 이들의 식탐을 지나치게 과장해서 보여줬다는 한계가 선명하긴 했지만, 동시에 남들 보기엔 비정상으로 보일 식탐도 누군가에겐 아주 소박한 일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했다. 비록 남들보다 좀더 많이 먹을 뿐, 언제나 아들의 식탐을 실망시키지 않고 충족시켜주는 아빠 유민상과 아들 김수영은 늘 누구보다 화목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코너를 닫았다. 행복의 기준이 꼭 날씬한 몸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압권은 문화방송에서 티브이엔 <코미디 빅리그>로 이적한 이국주였다. ‘불만고발’에서 이국주는 마른 사람 위주로만 꾸려진 세상이 잘못된 거지,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커피색 스타킹을 사 신었는데 내가 신으니 살색이더라. 제품이 이상하다”라거나, “마스크팩을 사서 썼는데 얼굴이 다 안 덮어지더라. 남는 부분은 목이냐 그럼”이라며 체구가 큰 사람들을 배제시켜 온 세상을 질타했다. 웹진 <아이즈>의 황효진 기자가 간결하게 요약한 것처럼, “이국주의 성취는 주로 놀림감으로만 활용됐던 체격 큰 여성들도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남들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겪는 불편함을 부끄러워하거나 굳이 모른 척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동정이나 비난도 원하지 않는”, 하지만 당당하게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체적인 인물을 그려냄으로써 이국주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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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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