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부터 차근히 쌓아온 배우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국 영화의 역사가 보인다. 올 한 해 그가 출연한 영화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의 관객을 다 합치면 2000만명을 넘는다. 그의 넉살 좋은 아저씨 미소는 편안하고 소중하다. 위더스필름 제공
|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영화 <설국열차>와 <변호인>의 경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음에 걸리시는 독자 분들은 영화 관람 이후에 글을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 <변호인>(2013)이 개봉한 직후, 어디를 가든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변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승한씨는 <변호인> 봤어요? 언제 봤어요? 어떻게 봤어요? 나는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종종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의 모델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오인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변호인>은 안온하게 살아가던 돈 잘 벌던 변호사가 우연한 계기로 시대의 모순을 각성하고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바보’ 노무현의 시작이었으니,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이든 영화와 그 영화의 바탕이 된 실제 역사를 분리해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리라.
다만 내겐 그런 반응들이 다소 낯설긴 했다. <변호인> 속 송강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동작이나 말투, 습관을 따라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인을 떠올리게 하기보단, 관객에게 ‘송우석’이라는 등장인물 자체의 삶을 납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설령 고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실존 모델의 삶을 전혀 모르는 타국의 관객이 본다 하더라도 <변호인>이 가지는 영화적 의미는 크게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물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소화해내는 송강호의 탁월함에 많은 부분을 빚졌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변호인>은 독립된 텍스트로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대신 실존 인물과 실존 역사에 종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변호인>에서 눈을 돌려 송강호의 올해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설국열차>(2013)를 기점으로 <관상>(2013)과 <변호인>에 이르기까지, 송강호가 올 한 해 연기한 인물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맞아낸 인물이었다.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는 열차라는 시스템과 커티스의 혁명 양쪽 모두에 회의를 품은 무정부주의자였고, <관상>의 김내경은 본의 아니게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정의를 지키는 쪽에 서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한 지식인이었다. 정권의 공작과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맞서 일어선 변호사를 연기한 <변호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마 <조선일보>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급전 필요한가’ 운운하게 된 것 또한 이런 심상치 않은 행보에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필모그래피를 들어 송강호의 정치적 지향을 넘겨짚기도 하더라. 나는 송강호가 연달아 이런 인물들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게 무엇 때문인지 섣불리 말하지 않으련다. 그저 배우가 “좋은 작품인 것 같아 출연했다”고 하면 그런 줄 알밖에. 내가 진짜 궁금한 것은 “왜 송강호가 그런 배역들을 연달아 맡았을까”라는 질문의 정반대편에 있다. “왜 그 많은 감독들은 이런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배역들을 송강호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것일까”다.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게으른 답변은 “그 연배의 주연급 배우 중 송강호가 상업적으로나 연기력으로나 가장 파괴력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일 것이다. 동년배 주연급 배우 중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배우가 송강호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당장 송강호와 함께 트로이카로 호명되는 최민식과 설경구가 있고, 잠시 동안의 부진을 딛고 일어난 한석규도 있다. 그러니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 송강호인가?
그는 어딘지 허술한 ‘흔한 남자’ 지식인보단 소시민 역 자주 맡아
관객에게 주인공 활약 체험케 해
올해 그가 연기한 3명의 인물도
역사의 격랑에 휩싸인 ‘장삼이사’
세상 바꾸는 평범한 이들 보여줘 한때 한국 영화계에 지적으로 생긴 남자들이 주연을 도맡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태백산맥>(1994)의 안성기는 좌와 우 모두에 회의를 느끼는 민족주의자 김범우로 분해, 격렬한 좌우대립을 직접 경험한 임권택 감독의 시선을 대신 전했다.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법학도 출신의 학생운동가 김영수를 연기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문성근 또한 지식인의 자리에서 전태일의 삶을 바라보았던 박광수 감독의 입장을 대변했다. 심지어 블록버스터 영화였던 <쉬리>(1999)의 한석규조차, 인텔리 국가공무원의 자리에 서서 남북 분단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멋진 주인공들이 스크린 위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며 그에 반했고, 그들의 설명을 따라 극을 이해했다. 반면 송강호의 경우는 앞에 언급한 배우들과는 조금 다르다. <변호인>에서 그는 나이트클럽 앞에서 홍보 명함을 돌리다 삐끼로 오인받는 고졸 출신의 속물 세법 변호사였고, <괴물>(2006)에서는 ‘어릴 적 영양소를 잘 섭취하지 못해서 그런지 머리가 좀 그런’ 어수룩한 한강변 매점 주인이었다. <의형제>(2010)에서는 어떻게든 남파간첩을 잡아 팔자를 고쳐보려 하지만 전처를 따라 영국으로 떠난 딸과 통화하고 난 뒤엔 처진 어깨를 감당하지 못하는 못난 아비였고, <살인의 추억>(2003)에서는 매번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는 범인 앞에서 멍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시골 형사였다. 본의 아니게 계유정난에 휘말린 <관상>에서조차 그의 본질은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고 돈 많이 벌어 식솔을 먹이는 것이 목표였던 평범한 아버지였다. 물론 송강호가 맡은 그 많은 인물들을 한두 가지 공통점으로 싸잡아 묶어 버리는 것은 배우에 대한 결례일 수 있다. 그 위험을 감수하고 굳이 공통점을 짚어보자면 영화 속 그의 자리는 주로 상아탑이 아닌 소시민들 틈바구니였고, 무게를 잡고 시대에 고뇌하기보단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자며, 큰 야망보다는 소소한 행복이 중요한 소탈한 인간상을 더 자주 맡아 왔다는 점일 것이다. 송강호는 극을 설명해주고 이끌어가는 ‘지식인’이 아니라 ‘우리 중 한 명’으로 분해 우리 옆에 서서 스토리라인을 함께 걷는다. 그래서 우리는 송강호가 연기할 때 주인공의 활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고 주인공의 활약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시대 트로이카로 묶여서 호명되던 최민식이나 설경구와도 또 다른 덕목이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통제불능의 야수성을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최민식이나, 허허 웃고 있어도 어딘가 서늘한 기운을 담고 있는 설경구의 연기는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되는 종류의 연기에 가깝다. 설경구와 두 차례 작업하며 등장인물의 뒤틀린 삶으로 객석을 압도하던 이창동 감독이, 영화 <밀양>(2007)에서 여주인공 신애를 물끄러미 뒤에서 바라보는 동네 노총각 종찬의 자리에 설경구가 아닌 송강호를 앉힌 것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송강호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고, 다분히 무신경하며, 동네 다방 여종업원과 농담 따먹기를 즐기는 흔한 시골 노총각의 연기로 영화 속 밀양이라는 공간의 공기를 그려낸다. 이렇듯 송강호는 우리 중 한 명 있을 법한 ‘흔한 남자’를 그려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다면 <설국열차>와 <관상>, 그리고 <변호인>을 만든 감독들이 왜 모두 송강호에게 러브콜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영화의 감독들은 ‘우리 중 한 명’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송강호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세움으로써,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목격하는 자리는 위대하고 비범한 인물들만의 몫이 아니라, 바로 나와 당신과 같은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몫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