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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담긴 직설화법은 김소희 셰프만의 무기다. 맛을 그리는 그의 방송에서 사람들은 요리와 요리사에 대해 더 가깝게 이해하고 자신의 생생한 식욕을 발견한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2>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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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요리 서바이벌 프로 ‘마셰코’서칭찬 전담 캐릭터 깨고 직언에
“단디하세요” 진한 사투리까지
모두 방송 ‘암묵적 룰’ 안 맞지만
결국 방송이 그를 따라왔다 집을 나와서 살기 전만 해도 난 내가 비교적 요리를 즐기는 줄 알았다. 종종 파스타나 쿠키도 만들어 먹고 김장철마다 어머니를 거드는 정도는 되었으니, 이만하면 사내놈치곤 제법 아닌가 싶었던 거다. 막상 몇 개월 나와 살아보니, 나처럼 게으른 자가 일을 하면서 밥까지 매 끼니 잘 요리해 먹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체 얼마나 성실해야 제한된 식비로 장을 보고 식단을 짜서 하루 세끼를 알차게 먹는 게 가능한지. 본업이 있는데 일할 시간을 쪼개 칼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 적당히 끼니나 해결하는 선에서 타협을 봤다. 내가 오븐을 쓸 줄 몰라 안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 안 쓰는 것일 뿐이라고, 자취 6개월 만에 난 자기 합리화에 성공했다. 억눌린 욕망은 어떤 식으로든 출구를 찾는 법이다. 누군가는 억눌린 공격욕을 액션영화를 보며 해소하고, 또 어떤 이는 인터넷에서 인테리어 관련 용품을 뒤져보는 것으로 손바닥만한 고시원에서 사는 갑갑함을 풀어낸다. 나라고 크게 다르진 않아서, 가끔 하릴없이 케이블 요리채널을 틀어놓고 그것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것으로 그 갑갑함을 풀곤 한다. 물론 본다고 다 따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재료를 손질하고 빠른 손목 스냅으로 팬을 튕겨 요리를 고르게 볶아내는 셰프들의 손놀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체기가 어느 정도 내려간다. 요리 채널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셰프가 하나 있었다. 주변의 다른 이들이 뽀얀 살결에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긴 강레오의 냉철한 심사평에 반하고, ‘마초’ 레이먼 킴이 시원시원하게 식재료를 손질하는 모양새에 매료되고, 깎아놓은 알밤처럼 곱게 생긴 샘 킴의 섬세한 손놀림에 끌리는 동안, 나는 괄괄한 부산 아지매 김소희 셰프의 말투와 태도에 꽂히고 말았다. <올리브>(O’live) 채널의 요리 서바이벌 쇼 <마스터셰프 코리아>(마셰코)의 한 장면, 심사위원들이 차례로 도전자의 음식을 시식한다. 강레오 셰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고, 노희영 셰프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이윽고 김소희 셰프의 시식, 갑자기 예상치 못한 멘트가 터져 나온다. “하이고, 내 팔자야. 하이고 참말로.” 쇼의 긴장감과 심사위원으로서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말을 조심하는 기존 서바이벌 쇼 심사위원들의 노력을 일순에 무색하게 만드는 저 강렬한 신세 한탄 “하이고, 내 팔자야”라니. 무슨 심사로 도전자들을 노려보는지 알 수 없는 강레오 셰프의 눈빛이 한껏 조여놓은 긴장감은, 김소희 셰프의 기탄없는 말 한마디에 탁 하고 풀린다. 노희영 셰프가 “내년에 다시 도전해주세요”라며 좋은 말로 탈락을 고하는 동안, 김소희 셰프는 도전자에게 선물받은 매듭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이거 만들어서 장사하세요. 너무 예쁘다.” 명색이 서바이벌 쇼니 보통은 도전자들이나 화려한 요리에 눈이 끌릴 법도 하건만, 방송국 카메라가 있든 없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몸쪽 꽉 찬 직구로 던져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희한한 셰프가 등장한 것이다. 저 찐한 사투리는 또 어떤가. 온 집안이 경상도 사람 천지인 나조차, 전국 단위 방송에서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인지라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경상도 말씨를 끝내 못 버리는 김제동이나 강호동과 같은 방송인조차 억양만 남길 뿐 어떻게든 표준어를 구사하려 애쓰는 동안, 김소희 셰프는 거침없이 내 동향 사람들의 말을 구사한다. 문장이 끝나는 부분에 뒤따라붙어 상대의 호응을 구하는 말 “그지예?”(그렇죠?)부터, “소금하고 싸우가꼬 이기겠다”(음식이 짠 것으로는 소금과 견주어도 이기겠다)는 경상도 특유의 거센 표현까지. 나야 내 동향 말씨니 친숙하고 좋지만, 경상도 말씨가 낯선 시청자들에겐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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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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