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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6 19:26 수정 : 2016.05.08 11:16

오사마 빈 라덴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68) 오사마 빈 라덴과 음모론

4월30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죽은 날이라고들 한다.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난 날이다. 이어 5월8일 밤, 히틀러가 사라진 독일군은 러시아의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을 비롯한 연합국 대표들 앞에서 항복했다. 유럽은 그날을 승전일로 삼았고, 시차가 나는 러시아와 동구권은 하루 뒤인 9일을 승전일로 기려왔다. 인류사에서 최대 희생자를 낸 전쟁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그렇게 끝났다. 1945년이었다.

올해로 71년이 지났다. 히틀러는 온데간데없다. 연합국은 여태껏 히틀러 주검조차 찾지 못했다. 그나마 러시아 정부가 지녔다고 우겨온 히틀러 유골은 정체불명 40대 여성 것으로 밝혀졌다. 스탈린이 종전 뒤에도 끝까지 히틀러를 찾아내서 죽이라고 비밀리에 명령했던 까닭이 드러난 셈이다.

어떤 전쟁에서든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이는 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쟁 속살을 밝혀내고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적의 상징을 없애 승리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근데 전쟁을 끝내 놓고도 적장의 생사조차 모르던 게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인류 최대 전쟁의 한쪽 책임자인 히틀러의 주검조차 찾지 못했다는 건 역사에 어마어마한 빈자리를 남겼다는 뜻이다. 그 결과 히틀러는 지금껏 온갖 음모론 속에서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

2011년 5월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백악관 상황실에 모여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진행된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 실황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이 제공한 이 사진에서 탁자 위에 놓인 문서는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AP 연합뉴스

“9·11 기획·명령한 주범”

여기 히틀러와 맞먹는 음모론 주인공이 또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다. 5월1일 미국 중앙정보국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5주년이라 떠들어대며 그 시절 작전 상황을 실시간 보도 형태로 트위터에 올렸다는 뉴스가 떴다. 그 내용은 새로운 게 전혀 없었다. 이미 5년 전에 써먹었던 걸 그대로 재탕했을 뿐이다. 내놓으라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증거는 안 내놓고 쓸데없는 짓을 한 걸 보면 대통령선거가 가까워 오긴 한 모양이다.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가 날뛰는 걸 보면서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이 뭔가 불안하고 급해진 듯도 싶다. 2011년 5월1일 미국 정부가 느닷없이 오사마 빈 라덴을 죽였다고 했을 때도 오바마의 재선을 노린 선거가 1년 반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이미 후보들 이름이 나돌았다. 게다가 그날은 출생 비밀로 엄청난 말썽을 빚던 오바마가 ‘우연히’ 출생확인서를 내놓고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5년 전 오사마 빈 라덴 사살로 정치적 도움을 받았던 오바마가 아직도 그 미련을 못 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생각은 좀 다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진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으니 믿으려 하지도 않는다. 미국 정부가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않은 탓이다. 워싱턴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메이어가 “미국 대통령이 증거를 내놓지 않은 채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다고 세상을 향해 성명서를 날린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다”라고 <텔레그래프>에 말했듯이 세상은 이미 크게 바뀌었다. 9·11 사건 뒤부터 사람들은 내 눈으로 볼 수 없다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9·11 사건을 겪으면서 ‘이 세상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아주 새로운 인식법이 생겨난 까닭이다. 그런 세상을 향해 미국 정부가 입으로 모든 걸 때울 수 있다고 믿었던 듯.

오사마 빈 라덴이 누구였던가. 미국 정부에 따르면 9·11 사건을 기획하고 명령한 주범이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박멸을 핑계 삼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해서 지금껏 수십만 시민들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을 놓고 미국 정부가 증거를 못 내놓는 건 그만큼 켕기는 구석이 많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역사의 진실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람들 의문이 음모론을 타고 돌아다닐 수밖에.

“5월1일 해군 특전단(Navy SEALs)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숨어 지내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그 주검은 그날 바로 바다에 수장했다.”

5년 전 미국 정부가 밝힌 성명서 줄거리다. 이 짧은 문장 하나에 의문과 답이 모두 들어 있다. 이게 숱한 음모론의 씨앗이었다. 미국 정부는 그 성명서와 함께 누군지조차 또렷지 않은 사진을 오사마 빈 라덴이라며 증거로 내놨다. 곧장 사진 조작 논란이 일었다. 미국 정부는 “혐오감 줄 만한 사진을 피했다. 필요하다면 (공개를) 검토해볼 수도 있다”고 둘러댔다. 말썽이 수그러들지 않자 미국 정부는 이틀 뒤인 3일 “오사마 빈 라덴 친척(여동생 포함)들과 사진 속 주검의 디엔에이(DNA)가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디엔에이 검사 자료를 안 내놓은데다 시간마저 의혹을 부추겼다. 중앙정보국은 미국 동부 시간 1일 오후 3시39분(파키스탄 현지 시간 2일 0시39분) 특전단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고 30분 뒤인 4시10분 아보타바드를 떠났다고 밝혔다. 오사마 빈 라덴 주검은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 미군기지로 실어간 뒤 다시 인도양에 떠 있던 항공모함 칼빈슨호로 옮겼다고 했다. 오사마 빈 라덴 시료를 아프가니스탄에서 바로 보냈더라도 빨라야 2일 오후쯤 미국 실험실에 닿았을 텐데 3일 정부가 헐레벌떡 검사 결과를 내놨다. 하룻밤이면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 말이 먹히지 않았던 건 정부가 그 과정을 전혀 밝히지 않았던 탓이다.

CIA, 5월1일 “사살 5주년” 트위터
“인도양에 주검 버려” 발표뿐
미, 여태껏 세부정보 공개 안해
죽음 진위 놓고 음모론 씨앗 키워

군사대국 파키스탄 방어망 뚫고
20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특전단 헬리콥터 침투 가능했나?
반나절에 끝난 DNA 분석도 의문

파키스탄 ‘불법 침략’한 꼴

가장 의혹을 키운 대목은 뭐니 뭐니 해도 오사마 빈 라덴 주검을 칼빈슨호에서 인도양에 던져버렸다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는 “이슬람 관습에 따라 주검을 그날 바로 수장했다”고 밝히면서 “추종자들이 성지로 여길 수 있어 위치는 못 밝힌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전면적인 대이슬람 전쟁을 벌여온 미국 정부가 이슬람 장례 절차를 존중했다고 밝힌 건 누가 들어도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미국 정부가 인류 최대 공적이라 불렀던 오사마 빈 라덴 주검을 바다에 던져버렸다면 누가 믿을까?

게다가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 통보도 안 했고 도움도 안 받고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사실이라면 파키스탄을 불법 침략한 ‘람보급’ 코미디다.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최단 거리로 따져도 200킬로미터가 넘는 아보타바드까지 어떻게 특전단 헬리콥터 3대가 아무 탈 없이 숨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프가니스탄을 넘자마자 마주칠 국경 페샤와르 지역은 파키스탄의 군사수도라 부를 만한 요충지로 공군과 육군이 화력을 집중 배치한 곳이다. 정체불명 헬리콥터 3대가 날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다음은 수도 이슬라마바드 방공망을 뚫어야 동북쪽 50킬로미터 지점 아보타바드로 갈 수 있다. 파키스탄은 세계 13위권을 오르내리는 군사대국이다. 더구나 아보타바드는 파키스탄 육군 2사단 본부에다 육군사관학교까지 자리잡은 군사지대다. 오사마 빈 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숨어 있었다는 것도, 미군 헬리콥터 3대가 쳐들어갔다는 것도 모조리 심사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얘기일 뿐이다. 오바마도 우리도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 싶다.

오사마 빈 라덴 음모론이란 것들도 모두 이런 상식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했다. 돌이켜보면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은 200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뒤부터 줄기차게 나돌았던 언론판 단골메뉴다. 미군 공습으로 폭사하고, 간경화로 숨지면서 수도 없이 ‘죽었던’ 게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근데 정작 2011년 사살 발표가 나오자 언론은 아주 고약한 태도를 보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과 음모론들”(가디언),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들”(워싱턴 포스트), “음모론들,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의 증거는 어디 있는가?”(ABC 뉴스), “오사마 빈 라덴의 파일: 사진도 없고, 동영상도 없다. 진짜 음모론?”(텔레그래프)….

언론은 음모론을 나무라는 듯하면서 사실은 그 음모론에 기대 기사를 날렸다. 정직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다. 언론이 제정신이라면 그 의문들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야 마땅했다. 음모론은 언론이 죽은 땅에서 불신을 먹고 피어나는 악의 꽃이다. 주검 없는 히틀러와 오사마 빈 라덴을 다시 보는 까닭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6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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