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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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68) 오사마 빈 라덴과 음모론
4월30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죽은 날이라고들 한다. 베를린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문이 난 날이다. 이어 5월8일 밤, 히틀러가 사라진 독일군은 러시아의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을 비롯한 연합국 대표들 앞에서 항복했다. 유럽은 그날을 승전일로 삼았고, 시차가 나는 러시아와 동구권은 하루 뒤인 9일을 승전일로 기려왔다. 인류사에서 최대 희생자를 낸 전쟁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이 그렇게 끝났다. 1945년이었다.
올해로 71년이 지났다. 히틀러는 온데간데없다. 연합국은 여태껏 히틀러 주검조차 찾지 못했다. 그나마 러시아 정부가 지녔다고 우겨온 히틀러 유골은 정체불명 40대 여성 것으로 밝혀졌다. 스탈린이 종전 뒤에도 끝까지 히틀러를 찾아내서 죽이라고 비밀리에 명령했던 까닭이 드러난 셈이다.
어떤 전쟁에서든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이는 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전쟁 속살을 밝혀내고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적의 상징을 없애 승리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근데 전쟁을 끝내 놓고도 적장의 생사조차 모르던 게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인류 최대 전쟁의 한쪽 책임자인 히틀러의 주검조차 찾지 못했다는 건 역사에 어마어마한 빈자리를 남겼다는 뜻이다. 그 결과 히틀러는 지금껏 온갖 음모론 속에서 ‘살아’ 돌아다니고 있다.
2011년 5월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백악관 상황실에 모여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진행된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 실황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이 제공한 이 사진에서 탁자 위에 놓인 문서는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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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에 주검 버려” 발표뿐
미, 여태껏 세부정보 공개 안해
죽음 진위 놓고 음모론 씨앗 키워 군사대국 파키스탄 방어망 뚫고
20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특전단 헬리콥터 침투 가능했나?
반나절에 끝난 DNA 분석도 의문 파키스탄 ‘불법 침략’한 꼴 가장 의혹을 키운 대목은 뭐니 뭐니 해도 오사마 빈 라덴 주검을 칼빈슨호에서 인도양에 던져버렸다는 대목이다. 미국 정부는 “이슬람 관습에 따라 주검을 그날 바로 수장했다”고 밝히면서 “추종자들이 성지로 여길 수 있어 위치는 못 밝힌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전면적인 대이슬람 전쟁을 벌여온 미국 정부가 이슬람 장례 절차를 존중했다고 밝힌 건 누가 들어도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미국 정부가 인류 최대 공적이라 불렀던 오사마 빈 라덴 주검을 바다에 던져버렸다면 누가 믿을까? 게다가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 통보도 안 했고 도움도 안 받고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사실이라면 파키스탄을 불법 침략한 ‘람보급’ 코미디다.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최단 거리로 따져도 200킬로미터가 넘는 아보타바드까지 어떻게 특전단 헬리콥터 3대가 아무 탈 없이 숨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프가니스탄을 넘자마자 마주칠 국경 페샤와르 지역은 파키스탄의 군사수도라 부를 만한 요충지로 공군과 육군이 화력을 집중 배치한 곳이다. 정체불명 헬리콥터 3대가 날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다음은 수도 이슬라마바드 방공망을 뚫어야 동북쪽 50킬로미터 지점 아보타바드로 갈 수 있다. 파키스탄은 세계 13위권을 오르내리는 군사대국이다. 더구나 아보타바드는 파키스탄 육군 2사단 본부에다 육군사관학교까지 자리잡은 군사지대다. 오사마 빈 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숨어 있었다는 것도, 미군 헬리콥터 3대가 쳐들어갔다는 것도 모조리 심사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얘기일 뿐이다. 오바마도 우리도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닌가 싶다. 오사마 빈 라덴 음모론이란 것들도 모두 이런 상식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했다. 돌이켜보면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은 200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뒤부터 줄기차게 나돌았던 언론판 단골메뉴다. 미군 공습으로 폭사하고, 간경화로 숨지면서 수도 없이 ‘죽었던’ 게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근데 정작 2011년 사살 발표가 나오자 언론은 아주 고약한 태도를 보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과 음모론들”(가디언),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들”(워싱턴 포스트), “음모론들, 오사마 빈 라덴 죽음의 증거는 어디 있는가?”(ABC 뉴스), “오사마 빈 라덴의 파일: 사진도 없고, 동영상도 없다. 진짜 음모론?”(텔레그래프)…. 언론은 음모론을 나무라는 듯하면서 사실은 그 음모론에 기대 기사를 날렸다. 정직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았다. 언론이 제정신이라면 그 의문들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해야 마땅했다. 음모론은 언론이 죽은 땅에서 불신을 먹고 피어나는 악의 꽃이다. 주검 없는 히틀러와 오사마 빈 라덴을 다시 보는 까닭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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