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노조가 스스로 쇄신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주체가 나와야죠.” 이범연은 1989년 대우자동차 도장반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공장 노동자로 살아왔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늙은 노동자’인 그는 지난해 말 펴낸 책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에서 대기업 노조와 오늘날의 노동운동, 그리고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냉정하게 돌아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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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한국지엠 노동자 이범연
“대기업 노조가 스스로 쇄신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주체가 나와야죠.” 이범연은 1989년 대우자동차 도장반에 입사한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공장 노동자로 살아왔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늙은 노동자’인 그는 지난해 말 펴낸 책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에서 대기업 노조와 오늘날의 노동운동, 그리고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냉정하게 돌아본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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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공장이 폐쇄되면 지역의 자영업자들, 시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옵니다. 어떻게든 폐쇄 방침을 철회하고 재가동을 하거나 매각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30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해온 이범연은 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에 대해 “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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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서울대 입학 ‘운동권’
학교 그만두고 대우차 취업
해고·구속·복직 등 거쳐
30년 동안 ‘공장 노동자’ 삶 군산공장 폐쇄 결정한 지엠
외국인 투자기업 지정 등 요구
“노조 빨리 정리하고 정부 협상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것 같아
공장 존폐는 지역민 전체 문제
폐쇄 아닌 재가동 방법 찾아야” 한국지엠 2500여명 희망퇴직
2명은 잇따라 스스로 삶 마감
일각선 ‘돈 받았는데 왜 죽나?’
“20여년 회사만 알고 산 사람
지옥에 던져진 느낌이었을 것” 힘·규율 관성적인 사고만 있는
대기업 노조 ‘셀프 쇄신’ 어려워
새 노동운동 흐름·주체 나와야
‘지역 기반’ 다양한 노동자 모여
솔직히 소통하고 힘 합쳐야 한다 지엠, ‘먹튀’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라 ―멀리까지 오시게 했네요. “이번주는 주간 근무조예요. 아침 7시에 시작해 오후 3시40분에 작업이 끝납니다.” ―지엠 군산공장 폐쇄 방침 발표 이후 노사가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경영진은 4월20일까지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도 신청을 내겠다고 하고, 노조는 사측이 성실하게 교섭에 응하지 않는다고 노동쟁의 소송서를 낸 상태인데, 지금 노사 간 최대 현안이 뭡니까? “겉으로 드러난 쟁점이 있고 숨은 쟁점이 있을 텐데, 노동조합은 한국지엠이 잘못된 경영 행태를 개선하고 장기적인 미래발전 전망을 보여줄 것을 전제로, 임금과 성과급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측은 빨리 합의 안 하면 부도내겠다고 협박을 하니까 노조가 격앙된 거죠.” ―상식적으로, 경영진이 먼저 자구 대책을 보여 달라는 건 노조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임금 삭감을 감수하겠다고 할 순 없잖아요. “지금 지엠과 노동자와 정부, 3자가 다 ‘전제조건’을 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요. 지엠은 ‘정부가 지원하고 노동자가 양보하면 자기들(지엠 본사)도 한국지엠에 준 채권을 출자전환하고 신차를 내놓겠다’는 거고, 정부는 ‘지엠이 신차 계획을 내놓고 실사 결과에 따라서 경영 상태를 개선하면 지원하겠다’는 거고요. 노동조합은 ‘지엠이 장기적으로 고용과 미래에 대해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면 우리도 양보하겠다’는 거죠. 3자가 각자의 패를 갖고 있는데, 지엠으로서는 이런 게임이 싫은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빨리 정리하고, 정부랑 협상해서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가속도를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지금 지엠이 우리 정부에 요구하는 게 뭔데요? “두 가지인데, 산업은행 지분이 17% 정도 되는데 그 지분만큼, 그러니까 한 5천억 되죠. 그걸 출자전환하라는 거고, 또 하나는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선정해서 각종 세금 혜택을 받게 해달라는 거죠.” ―그동안 외국인 투자기업이 아니었어요? “자격 요건이 안 돼요. 외국인 투자기업은 신규 투자일 경우에만 해당돼요.” ―아, 근데 이 경우엔 신규 투자가 아니라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거니까…. “네. 자격 조건이 안 되는데 억지를 부리는 거예요. 2002년 대우자동차 인수할 때 이미 법인세 면제받고 여러 가지 혜택을 다 받아갔어요.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이미 군산공장 폐쇄 방침이 발표되었는데 부도와 줄도산, 정리해고로 이어지는 건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잖아요. 정부가 지엠 요구대로 지원을 해줘야 하나요? “솔직히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이 유지되는 게 좋죠. 문제는, 정부가 지원을 한다 해도 그 혜택이 진짜로 한국지엠을 유지 발전시키는 데 쓰일 것이냐, 아니면 그들의 철수 비용을 절약시켜 주는 데 쓰일 것이냐 하는 점이죠. 철수 비용으로 돈을 댈 순 없잖아요.” ―‘먹튀’ 하면 어쩌냐, 지원만 받고 철수를 해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거군요. “제가 볼 때, 지엠도 당장 철수를 할 순 없을 거예요. 그간 지엠(본사)이 한국지엠에 의존해온 게 많거든요. 연구소나 디자인센터나…. 지금 철수하면 지엠으로서도 엄청난 타격이죠. 근데 차근차근 챙겨서 단계적으로 철수를 할 가능성은 있어요. 지금 생산하는 차를 다 팔아먹고 4~5년 동안 단계적으로 정리해서…. 장기적인 유지냐 단계적 철수냐 중에서 어느 쪽인지 우린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일부 언론에선 노조가 ‘제 밥그릇 챙기기’를 위해서 위기를 자초한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어요. 그 탓인지, 한국지엠 노조에 대한 여론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군산공장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남아 있는 600명 노동자는 전환 배치로 다른 데 갈 수도 있어요. 근데 군산공장이 폐쇄되면 지역의 자영업자들, 시민들에게 엄청난 타격이 옵니다. 어떻게든 폐쇄 방침을 철회하고 재가동을 하거나 매각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이건 지역민 전체의 문제입니다.” 두 희망퇴직자의 죽음 ―그사이 군산공장을 비롯해서 한국지엠 4군데 공장에서 2500명 이상이 희망퇴직으로 감원되었습니다. 원치 않는 희망퇴직도 있습니까? “희망퇴직을 하면 55세 이상은 3년치, 그 아래로는 2년치 임금을 주는데 사실 저처럼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경우에는 고려해볼 수도 있지요. 근데 젊은 사람들은 그거 2년치 받고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요? 특히 군산공장엔 젊은층이 많거든요. 3월2일이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이었는데 3월1일 이전까지 신청자가 1천명을 밑돌았대요. 원래 목표가 2천명인데. 근데 3월1일부터 대대적으로 언론에 ‘희망퇴직 안 하면 정리해고한다’고 기사가 뜬 거예요. 회사에서 (언론플레이) ‘작업’을 한 거라고 전 확신하는데, 아무튼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하루 사이에 희망퇴직 신청자가 대폭 늘어난 거죠. 원래 목표치를 넘겨서 2600명 가까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퇴직을 ‘희망’하지 않으면 무참히 잘릴지도 모르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수천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이 생업을 잃었다. 그 와중에 두 명의 희망퇴직자가 세상을 떴다. 지난 7일엔 부평공장 이아무개(55)씨가 인천의 한 공원에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그의 휴대전화엔 이날 오후 ‘희망퇴직 대상자로 승인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이어서 24일엔 군산공장 노동자 고아무개(47)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도 3월2일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 중 하나였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만, 일각에선 “돈 많이 주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돈 많이 받고 나왔는데 왜 죽냐?”는 소리도 나옵니다. “그런 댓글들이 달린 거 봤습니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돈까지 받고 나와서 왜 죽냐?’고. 근데 군산공장에서 죽은 친구 나이를 보세요. 마흔일곱입니다. 97년에 군대 제대하고 바로 입사해서 21년을 거기 조립라인에서 일했어요. 원래대로라면 십몇년을 더 다녔을 텐데, 2년치 임금 받아 나와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자영업? 군산이 유령도시 돼서 자영업자들 다 망하는 판에? 20년 넘게 회사만 알고 살아온 사람에겐 지옥에 던져진 느낌이었을 거예요. 단절감과 두려움이 크지 않았을까.” ―회사만 알고 살아온 사람에겐 사형 선고처럼 느껴졌을 수 있단 말씀이군요. “제가 책에서 ‘회사인간’이란 말을 썼는데요. 일상적 삶의 의미를 회사에서만 찾는 거죠. 회사에서의 일, 동료들과의 관계, 회사를 떠나서 다른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한 그림이 아예 없는 거죠. 정년퇴직하고 나간 분들도 2~3년 만에 확 늙어버려요. 머리 하얘지고 갑자기 노인이 되더라고요. 인간관계도 끊어지고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뭘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도 잃어버리고. 댓글로 비판하는 사람들은 돈으로만 계산하고 얘기하시는데, 회사를 나가는 사람들은 돈보다 훨씬 소중한 걸 잃어버린 거예요.” 강제잔업과 특근이 줄고 임금이 올라도 대다수 한국 사회 남성 노동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선호한다. 한국지엠에선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일하던 걸 2012~13년 주야연속근무제로 바꿔냈다. 주간반이 되면 아침 7시에 시작된 일이 오후 3시 반께 끝나지만 대개는 여전히 퇴근 뒤 남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줄 모른다. “낮에 4시면 집에 가는데 할 일도 없고 시간낭비 아닌가요?” 하는 이도 있고 “주말에 집에 있으면 뭐 해? 마누라도 싫어하고 아이들도 불편해하는데” 하며 꾸역꾸역 주말 휴일 근무를 자청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원했지만 정작 그것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써야 할지 배우지 못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만 있을 뿐, 자기 자신은 텅 비어버린 ‘회사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기적으로 삶의 질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가치가 내면화되고, 돈은 많이 받지만 장시간 노동 등 삶의 짊을 개선하는 일은 여전히 안 되고 있다. 우리의 몸과 삶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지만 돈과의 교환에서 그 고통이 ‘자발적인 선택’인 것으로 은폐되고 있을 뿐이다.”(<어언 30년> 91쪽)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이범연 한국지엠 노동자와 이진순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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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무렵 가족 사진. 가난했지만 부모님 보살핌 덕분에 어려움 없이 자랐다. 앞줄 가운데 남자아이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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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아내와 연애 시절. 대우자동차 입사 뒤 인천 지역 해고노동자였던 아내를 만났다. 퍽퍽한 공장생활 중 아내와 연애하던 순간은 손꼽아 기다리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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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노태우 정권의 노동조합 탄압 항의 집회. 당시 나(앞줄 오른쪽 넷째)는 20대 후반이었고, 노조도 젊고 역동적이었다. 그 젊은이들이 지금 늙은 노동자가 돼 서로 정년 이후의 삶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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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딸 분유 먹이던 날. 1992년 첫딸이 태어날 당시 나는 막 구속돼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다. 구치소 면회실에서만 바라보던 딸을 직접 안고 분유를 먹였다. 그 순간이 너무 경이롭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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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1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그해 2월16일 대우차가 175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하면서 노동조합과 정리해고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사흘 뒤 대규모 공권력이 농성을 진압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이닥쳤다. 정리해고는 노사관계와 사람들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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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한국지엠 노동자 토론회. 위기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딱히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일단 정규직·비정규직 등 여러 구성원이 함께 모여 열린 마음으로 토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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