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이들하고 대화가 안 되냐 하면 ‘내가 이만큼 하면 얘가 이만큼 변할 거다’ 하는 기대를 하고 대하니까 그래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변화입니다. 코칭 스킬 좀 배워서 애한테 써먹는다고 애들이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엄마반성문>의 지은이 이유남 서울명신초등학교 교장은 성취 중심적인 부모 세대의 치부를 고백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누가 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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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엄마반성문> 저자 이유남 서울명신초 교장
“왜 아이들하고 대화가 안 되냐 하면 ‘내가 이만큼 하면 얘가 이만큼 변할 거다’ 하는 기대를 하고 대하니까 그래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변화입니다. 코칭 스킬 좀 배워서 애한테 써먹는다고 애들이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엄마반성문>의 지은이 이유남 서울명신초등학교 교장은 성취 중심적인 부모 세대의 치부를 고백하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누가 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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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적폐를 고백한다’
‘성공 지향’ 부모세대 반성문
출간 석달 만에 베스트셀러
애들과 싸우면서 삶 되돌아봐 농사꾼 집 5남매 중 둘째딸
여상 나와 은행 취직하라는
부친 뜻 거역하고 명문고 진학
가정형편 탓 서울교대 들어가
교사이자 주부로 고군분투
“한 번도 아이들을 칭찬해준 적 없이 늘 다그친 것 같아요. 놀러 갈 때조차도 차에 책이랑 문제집 싣고 ‘빨리 해!’ 들볶고요.” <엄마반성문>의 지은이 이유남 교장이 지난 21일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 명신초등학교 교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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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고 칭찬받는 자녀
기대에 부응하며 잘 자라던
아들·딸 갑자기 자퇴선언
방문 걸어잠그고 대화 거부 열심히 해도 칭찬 못하고
계속 소리치고 야단치던
과거의 내 모습 떠올랐다
관계 회복까지 시간 걸려
“무엇보다 내가 변해야 한다” 예고된 불행 ―그렇게 잘나가던 아들이 고3 여름에 갑자기 자퇴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까지 아무 낌새도 못 느끼셨나요? “중2 때 아이가 학급 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걔가 장난기 많고 유머가 많은 아이예요. 담임 선생님이 보시기에 그런 아이가 좀 못마땅했나 봐요. 회장이나 되는 애가 무게 없이 군다고. ‘똥인지 오줌인지 가리질 못한다’는 말까지 하셨대요. 애가 그때 꽤 상처를 받았는지 전학을 시켜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그랬어요. ‘세상에 나가면 그보다 심한 일들도 많아. 네가 거기서 못 이겨내면 앞으로 사회 나가서도 견디지 못해. 참아.’ 아이 얘기를 차분히 들어줘야 했는데 제가 그렇게 애를 눌러버린 거죠.” ―속상해도 하소연할 데가 없었겠군요? “고등학교 가서도 학교 비리 문제로 안팎이 어수선해서 아이가 학교나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많이 잃었어요. 그래도 고3 때까지 모의고사 성적도 잘 나왔고 내신 1등급 유지하면서 전교 임원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자꾸 자퇴한 친구 얘길 하더라고요. 자퇴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는데 너무 편하다고 한다고.” ―그래서 뭐라셨어요? “그런 애들하고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죠.” 그때 아들이 공황장애 증세까지 겪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학교만 가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창문을 보면 문득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아들은 훗날 말했다. 결국 대학입시를 몇 달 앞두고 아들은 자퇴를 했다. 한 달 뒤, 고2에 재학 중이던 딸도 자퇴를 선언했다. ‘잘나가던 오빠도 학교를 그만두는데 내가 학교를 다녀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면서. ―믿었던 아들, 딸이 연이어 자퇴를 하니 충격이 크셨겠어요? “이제 내 인생은 끝났다 싶더라고요. 남편 사업 부도났고 아들, 딸 자퇴하고…. 난 이제 그만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신이 원망스러웠어요.” 남매는 등교만 거부한 게 아니었다. 공부를 접고 친구도 잘 안 만나고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 종일 게임만 해댔다. 딸은 학교를 그만두고 폭식을 하면서 체중도 80킬로그램까지 불어났다. ―막막하셨겠어요. “하도 속이 상해서 제가 야단치다가 ‘그럴 거면 밥도 먹지 마!’ 하니까 ‘엄마가 해주는 밥은 먹기 싫다’면서 집밥을 안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러곤 할머니한테 용돈 타다가 피자, 치킨 같은 것만 잔뜩 시켜 먹으면서 한 달에 5~6킬로씩 찌기 시작했어요. 그때 사진 보면 얼굴에 잔뜩 독이 올라 있어요. 난 아이가 나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찐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인스턴트식품 때문에 살이 쪄서 스트레스 받는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원인이 나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죠.” 그러던 어느 날 더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출장 갔다가 맥없이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서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사람들 몇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딸아이의 통곡 소리였다. 황급히 집에 달려 들어가 보니 살림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고 딸은 장롱 문을 부수고 옷을 갈기갈기 찢고 책을 사방에 흩트린 채 산발을 하고 짐승처럼 울고 있었다. 공포가 엄습했다. ‘저러다 아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정신이 아뜩해졌지만 딸은 엄마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거부했다. 딸은 자기 방에서, 엄마는 안방에서 목 놓아 펑펑 울었다. 엄마가 달라져야 아이가 산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일이 영화 필름처럼 쫙쫙 떠오르면서 죽 회상이 되는 거예요. 전 계속 아이들을 야단치고 소리치고 애들은 주눅 들어 있고…. 애들이 진짜 힘들었겠구나, 그때 처음 실감했어요. 우리 집에는 ‘에스케이에스케이’(sksk)란 말이 법도처럼 있었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란 뜻이죠.” ―부모도 마음의 여유가 없고 행복하지 못했으니까. “나한테 대화는 사치였죠. 밥 먹고 자기도 바쁜데 무슨 대화야. 한 번도 아이들을 칭찬해준 적 없이 늘 다그친 것 같아요. 놀러 갈 때조차도 차에 책이랑 문제집 싣고 ‘빨리 해!’ 들볶고요. 내가 정말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내가 뭘 위해서 이렇게 달려왔나. 근데 막상 어디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애들은 문 꽁꽁 걸어 잠그고 한집에 살아도 한 달 내내 얼굴 보기도 힘들고. 그때부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교육을 듣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유남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 것이 한국코칭센터의 교육이었다. 일방적인 지시나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수 있게 대화하는 방법. “모든 사람은 온전하며 모두가 특별하다” “모든 사람은 해답을 내부에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인정, 존중, 지지, 칭찬’을 통해서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게 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할 때 자식과 ‘원수 되는 말’을 쏟아낸다. “너는 잘하는 게 뭐야?” “너는 왜 맨날 그 모양이니?” 하면서…. ‘맨날, 언제나, 한 번도, 절대로, 결코’가 들어가는 모든 말들. 그것이 당사자들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걸 이유남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서서히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뒤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날 아이들 방문의 잠금장치가 풀린 걸 발견했다. 마음의 잠금장치도 그렇게 천천히 해제되어 갔다. ―코칭 방법을 배운다고 애들과의 관계가 갑자기 달라질 순 없겠죠. 부모가 대화를 시도한다고 애들이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왜 아이들하고 대화가 안 되냐 하면, ‘내가 이만큼 하면 얘가 이만큼 변할 거다’ 하는 기대를 하고 대하니까 그래요. ‘코칭을 배워서 내가 원하는 뭔가를 애들한테 얻어낼 거야’ 생각하면 애들이 금방 알아요. ‘왜 그러세요?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하지.(웃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의 변화입니다. 내가 변해야 돼요. 코칭 스킬 좀 배워서 애한테 써먹는다고 애들이 절대로 바뀌지 않아요.”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셨는데요. “우리 애들이 자퇴하고 양쪽 방문 닫아걸고 있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너희 엄마들은 진짜 좋겠다. 이렇게 학교를 잘 다녀주고 있으니’ 싶더라고요. 학교 와주는 것만 해도 참 고마웠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애들도 학교 잘 다녀준 적 있는데, 나한테 칭찬받으려고 그렇게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는데, 생각이 들면서 제가 너무 미안해지는 거예요. 아이들 닫힌 문 바깥에 서 있으면 정말 확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정작 소리가 안 나면 걱정되잖아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안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요. ‘살아 있구나’ 싶으면 안 죽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어요. 너희들 칭찬 한 번 못해주고 열심히 해도 인정해주지 않은 거 진짜 미안하다. 그런 생각에 아이들 방문 앞에서 눈물 줄줄 흘린 게 한두 번이 아녜요. 제가 반성하기 시작한 거죠.” 행복한 부모가 되는 법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아이들은 10년 전 엄마가 목표했던 스카이(SKY)대나 아이비리그엔 가지 못했다. 자기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라며 아들은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 딸은 제과제빵을 배웠다. 자신감을 얻은 아들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 딸은 살을 뺀 뒤 미국에 가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왔다. 남편의 사업 실패 후 풍족하지 못한 형편이라 이유남이 할 수 있는 건, 1년에 천만원의 융자를 내서 학비를 보태준 것뿐이지만 남매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평 없이 자기 앞길을 헤쳐 나갔다. ―책에 자녀분들 ‘흑역사’를 다 공개한 셈인데, 부담스러워하지 않아요? “‘엄마가 너희들 얘기 하는 거 괜찮아?’ 하니까, 딸은 흔쾌히 ‘뭐 어때? 옛날 엄마 같은 엄마들 없애려면 해야지’ 하더라고요.(웃음) 자기는 그나마 용기가 있어서 학교 그만두고라도 나왔지만 용기 없는 친구들은 정신과 약 먹으면서 지내기도 한다고요. 아들도 이 책에 추천사를 써줬어요. ‘실제로 우리 어머니는 많이 달라지셨고 그 덕분에 제 삶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고요.” ―이렇게 해피엔딩이니까, 책도 쓰고 강연도 하시는 거 아녜요? 또 다른 의미의 자녀교육 성공수기 아닙니까? “우리 애들 얘기를 하기 위해서 책을 쓴 게 아녜요. 칭찬하고 존중하는 코칭을 통해서 우리 사회 문화를 바꾸자는 얘길 하기 위해서 저의 체험을 양념으로 넣은 거죠. 우리 애들도 여전히 갈등하고 고민해요.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아들도 철학 공부를 계속할지 고민 중이고요. 근데, 인생이 원래 그렇게 헤매는 거잖아요. 어느 쪽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지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찾아나갈 수밖에 없고요.” ―선생님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으셨어요? “전 요즘 행복해요.(웃음) 아직 갚아야 할 빚도 많이 남았지만, 조금씩 돈을 떼서 저희 학교랑 제가 다닌 모교에 수학여행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한 기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돈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서 한이 많았거든요.(웃음) 나중에 빚 갚고 돈 생기면 해야지 생각하면, 평생 못 할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제가 공부한 것 같은 부모교육을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기획해서 진행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유남은 그 어느 때보다 요즘이 행복하다고 했다. 자녀가 행복해지길 바라다가 결국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은 사람. 새해엔 더 많은 이들이 그처럼 행복해질 수 있기를. 녹취 심지연
■ 이유남을 만든 시간들
1978년 전주여고 2학년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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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 서울교대 학사학위 받던 날. 1980년 입학 당시 서울교대는 2년제였던지라 졸업 이후 3년간 방학 때마다 계절학기 강의를 수강해 4년제 졸업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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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8월 서강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수여식 날.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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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서울 노량진초등학교에서 교무부장으로 일할 당시 학예회 사회를 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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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교회 권사 취임식 날. 관계가 많이 회복된 두 아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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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현재 재직 중인 서울명신초 교장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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