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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강원 춘천시 효자동 대학가 건물에 자리잡은 ‘인문학카페 36.5도’에서 만난 홍승은씨. 홍씨는 2013년부터 뜻 맞는 동료들과 카페를 열어 인문학 소모임과 강좌를 열고 독립출판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세월호나 구의역 비정규직 사고는 국가 폭력과 구조의 문제로 보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맞거나 죽는 건 개인 탓으로 돌려왔다”며 “지난 강남역 사건을 보면서 (여성들이) 내가 문제라서 당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자각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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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홍승은 인문학카페 36.5도 대표
대의(大義)는 없다. 정의에는 사이즈 구분이 없다. ‘엑스라지’ 대의와 ‘스몰’ 사이즈 소의(小義)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큰 정의를 위해서 다른 정의를 포기하라 강요한다면, 그건 이미 정의가 아니다. 이 단순한 상식이 외면당했던 몰상식의 시대, 대의를 위해서 ‘남녀 간의 사소한 불만’은 묻어둬야 한다고 우린 배워왔다.
경제성장을 위해서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절반 가격으로 매겨졌고, 국가를 위해서 여성의 몸은 외화벌이 상품이 되었다. 노동해방과 진보를 위해서 가부장적 남성 리더십에 복종하기를 강요받았고, 성추행과 성폭력은 집단의 체면, 지역의 평판, 국가의 위신을 위해 은폐되었다. 그때그때마다 대의가 표방하는 이상은 달랐지만, 여성은 그 대의를 위해서 매번 침묵을 요구받았다.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지고, 수능부터 공무원시험까지 성적의 여고남저(女高南低) 현상이 두드러지는 세상이 되었어도, 여성취업인구의 40% 이상은 비정규직이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나라에서, 성별 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가 넘어 22개 나라 가운데 꼴찌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그래서 여전히 가장 숫자가 많은 ‘소수자’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우리 일상 속 수많은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의 한 예다. 이전 사건들과 유일한 차이라면, 여성학자 정희진이 지적했듯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라고 명명할 수 있는 여성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특정 여성단체나 페미니스트그룹이 주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평범한 젊은 여성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호명하지 않았던 일반 여성들이 선두에 섰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강남역 희생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우연히 살아남은 자”로서 슬픔과 분노를 공유하며 사회적 주체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람들. 그런 여성을 만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왜 이들은 지금, 이 사건에 이토록 공분하는지. 오랜 세월 꽁꽁 싸매두었던 자신의 폭력피해경험을 공개하면서 이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춘천에서 인문학카페 36.5도를 운영하는 홍승은(28)을 찾아간 건, 그를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여성 활동가의 한 전형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였다.
인문학 소모임과 독립출판하며
지역청년들 아지트 공간 운영
‘공동밥상차리기’ 등 생활공동체
결혼·혈연 엮인 가족만이 정답?
대안적 가족형태 공동체 꿈꾼다
‘효녀연합’ 퍼포먼스한 동생에
“얼굴 예쁜 개념녀” 등 댓글 폭주
성 대상화하는 진보주의 거부
‘여성=위안하는 존재’ 인식이
위안부 문제의 진짜 본질 아닐까
얼굴 예쁘니 오빠부대가 지켜주겠다고?
강원 춘천시 효자동 대학가 건물 2층에 세 든 ‘인문학카페 36.5도’로 오르는 계단참엔 두세 칸 건너 한 줄씩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곳은 청년들의 일터, 가족, 삶’
‘외로워 말아요’
‘우리의 온도, 카페 36.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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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카페 36.5도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 홍승은씨는 대학 시절 썼던 대자보의 연장선에서 ‘당당히 할 말을 하자’는 취지로 지난 3년간 쉬지 않고 입간판의 메시지를 새로 써왔다. 최근엔 다른 방식의 메시지 전달을 고민하며 잠시 쉬고 있다고 한다. 춘천/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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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평 남짓한 카페의 두 면은 인문학 서적을 할인가격에 판매하거나 다른 이들과 책을 공유하게 만든 ‘공동책꽂이’로, 다른 한 면은 누구나 글이나 그림 낙서를 남길 수 있는 대형 칠판으로 꾸며져 있었다. 2013년 홍승은을 비롯해 뜻 맞는 몇몇 젊은이들이 카페를 오픈한 뒤, 다양한 인문학 소모임과 강좌를 열고 독립출판을 하며 지역 청년들의 아지트 구실을 해온 공간이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른 체형에 눈이 동그란 여성, 익숙한 얼굴이었다.
- 동생 홍승희씨랑 많이 닮았네요.
“승희를 아세요?”
- 예. 만나본 적 있어요. 인도엔 잘 도착했대요?
“네. 잘 지내고 있다고 연락 왔어요.”
홍승은의 오랜 동료 활동가이자 친동생인 홍승희(26)는 올해 1월초 서울 일본대사관의 소녀상 앞에서 ‘대한민국 효녀연합’이란 손팻말을 들고 한-일 정부간 합의 무효를 주장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예술가다. 어버이연합의 삿대질에도 여유있게 미소를 짓는 그의 시위 방식은 새롭고 신선해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 문제는 그가 젊은 여성이고, 미모가 빼어났다는 점이었다. ‘얼굴 예쁜 개념녀’, ‘청순 미소녀’라는 애칭으로 홍승희의 외모에 주목하는 글이 온라인으로 쏟아지면서 승은, 승희 자매는 뜻밖의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을 대하는 오빠들의 자세.
너네는 얼굴도 어여쁘고 마음도 예쁘니 우리가 지켜주겠다. 너네는 ‘바람직한 사회운동’ 하는 개념녀이니 지켜주겠다. 페미니스트만 아니면 돼~ㅎ
(1월9일 인문학카페 36.5도 입간판에 인용됨)
홍승은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 도구화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에게 반박했고 홍승희 역시 ‘나는 페미니스트다. 위안부 문제는 지금도 일어나는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이니 함께 성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열렬하게 환호하던 오빠부대의 태도가 돌변했다. 홍승은은 ‘대의를 추구하는 동생을 질투하는 못생긴 꼴페미’로, 홍승희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언니 말만 듣는 비주체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대승적 진보’를 위해서 소소한 꼬투리를 잡지 말라고 점잖게 훈계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달 말, 홍승희는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 인터뷰 요청을 드렸을 때 얼굴을 공개하는 문제로 상당히 주저하셨어요. 지난번 일로 많이 상심하셨나 봐요.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응했는데 최근엔 회의가 들더라고요. 승희가 효녀연합 (퍼포먼스)했을 때, 일베에서는 ‘강간하고 싶다’, ‘보쌈하고 싶다’고 하고, 응원하는 측도 ‘얼굴이 예쁜데 개념도 있네’ 이런 시선으로 보니까요….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 여성으로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메시지 전달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회의가 들어서요.”
-‘예쁘고 개념 있다’는 얘기를, 소녀상 지키기에 대한 단순한 호의와 지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잖아요. 단순히 민족, 계급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젊은 여성은 남성을 ‘위안’해야 하는 존재라고 보는 게 위안부 문제의 본질인지도 몰라요. 인격이 아니라 외모로 평가하고 온라인상에서 조리돌림하는 것, 그건 폭력입니다. 그런 폭력을 겪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 깨달은 것 같아요. 정부·여당과 일본만 나쁜 놈이고 우린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하지만, 사실 위안부 다녀온 할머니들을 내쫓고 사회적으로 배제한 건 한국 남성들이었잖아요. 내 안에도 권력이 있고 우리 사회에도 (편견과 차별이) 다 있는 건데, 쉽게 적을 상정해서 이것만 건드리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진보를 멈추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 그래서 지난번 <허핑턴 포스트>와의 인터뷰(2016년 2월12일치, 홍승은·승희 자매 인터뷰)에선 자매 모두 얼굴을 가리셨군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얼굴을 가리고 다닐 수도 없고…. 참!
“어떤 이들은 동생에게 ‘네가 예쁘니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거다. 그걸 너의 자원으로 삼아서 사회적으로 좋은 일 하는 데 쓰면 된다’고 말하지만, 외모가 자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합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게 모순 아닌가요? 남들은 ‘굳이 저렇게까지 생각할 게 뭐야?’ 할지 몰라도, 저희한텐 중요한 대목입니다.”
외모 콤플렉스는 잘생기든 못생기든 모든 여성에게 부과되는 멍에와 같다. 외모 때문에 비하당하는 것이나 외모 때문에 ‘눈요기 치어리더’ 취급을 받는 것, 어느 쪽이든 괴로운 일이다. 조심스레 카메라 앞에 선 홍승은의 모습이 너무 고와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촬영 중인 강재훈 기자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아 좀, 안 예쁘게 찍어주세요!” (일동 웃음)
‘정상가족의 신화’에서 자유로워지기
홍승은은 두 살 터울의 동생 홍승희와 함께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한림성심대를 거쳐 한림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탈학교 청소년으로 지내는 걸 부모님이 허락하셨다니 굉장히 리버럴한 분들이셨나 봐요?
“꼭 그렇진 않고요. 제가 학교 다니는 데 특별히 의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제가 중3 때 두 분이 이혼하셨는데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고교 진학을 안 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죠. 아침에 화장실 문 잠그고 학교 안 가겠다고 버틴 적도 있어요.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제가 나중에 계획서를 써서 보여드렸어요. 학교 그만둬도 막 살지 않겠다고 계획 정리해서 보여드리니 나중엔 포기하셨죠.”
그래서 계획서대로 했어요? 친구들 학교에 있을 때 뭐하고 지냈어요?
“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머리를 노랗게 탈색도 해보고 와인색으로 바꿔도 보고.(웃음) 알바도 많이 했어요.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놀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1년쯤 놀다 보니까 스스로 경각심이 생기더라고요. ‘이러다 내 인생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고. 어머니가 ‘너는 누군가 돕는 걸 좋아하니 사회복지가 어울릴 것 같다’고 권해주셨어요. 저처럼 청소년기를 힘들게 보내는 애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사회복지과에 들어갔죠.”
굉장히 독립적인 성격인 것 같은데, 내심 많이 외롭고 힘들었군요.
“아빠는 집에 오면 손 까딱 안 하는 분이었는데, 어머니는 아침에 아버지 양말을 신겨드리고 딸들 머리도 감겨줄 만큼 가정적인 분이었어요. 그러다 엄마가 사라지니까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그 당시 학교에서 저와 동생 별명이 ‘기름공장 딸들’이었어요.(웃음) 머리를 못 감고 예쁘게 땋지도 못하니까요. 아빠는 이혼한 뒤에도 밥이며 청소는 전혀 안 하셨으니 동생이랑 제가 장 봐다 해먹고 살아야 했지요. 지옥같이 괴로운 날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덕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에요.”
-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최정점을 ‘가족’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인생의 사이클에 따라, 취업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죠. 가족이란 게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관계라는 생각을 주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가정이 굉장히 취약하고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걸 어린 나이에 경험한 셈입니다. 저는 비혼(非婚)을 생각하고 있고요, 좀더 안정적이고 비폭력적이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대안가족공동체를 꿈꾸면서 살고 있어요.”
홍승은은 결혼과 혈연으로 얽힌 가족만이 정답은 아니며, 결혼이 아닌 형태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대안적인 가족 형태가 가능할 거라 믿는다. 2013년 감성노리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인문학카페 36.5도를 함께 운영하는 동료들은 그의 또 다른 가족이다. 이사장은 홍승은이지만, 서로를 직함 없이 닉네임으로 부른다. 새벽(홍승은)을 비롯해서 조제(조아라), 해달(이명훈), 보라돌이(허일정), 그리고 칼리(홍승희)는 카페를 근거지로 해서 만나는 다양한 모임의 성원들이 그런 공감과 연대의 공동체를 경험하길 희망한다. 카페를 처음 열 무렵, 그들은 카페 앞 빨간 입간판에 이렇게 써두었다.
돈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정교한 건물이나/ 예술작품을 보아도/ 값어치만을 생각한다./ 무심히 지나치는 건물과 작품에 깃든/ 누군가의 땀과 인생을 생각할 수 없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누군가의 꿈을 듣고 밥 벌어먹겠냐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은/ 출입금지다. (2013년 12월13일 인문학카페 36.5도 입간판 글귀)
사람들은 여전히 “그래서 먹고살겠냐?”고 혀를 차지만, 홍승은의 인문학카페는 150여명의 회원과 지역 청소년,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성업 중’이다. ‘누구나 예술가 프로젝트’를 통해 페미니즘이나 청년 일상의 문제에 대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토론하고, ‘타자의 철학’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철학책을 읽은 뒤 글쓰기를 한다. 작가들을 불러서 강좌를 열고 지난해 말엔 <계간 진지>와 같은 청년잡지를 독립출판 하기도 했다. 지금은 ‘춘천코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역 자취생들의 ‘공동밥상 차리기’와 같은 생활공동체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고,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하늘을 나는 물고기’ 같은 노래를 만들어 콘서트를 연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상업적 완성도가 아니라, 글과 그림과 음악과 대화를 통한 자기표현이다.
아내 때리는 남편, 데이트폭력에 ‘개새끼들’
-이번에 충격을 줬던 강남역 살인 사건을… 아, 이 사건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저는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라고 불러요.”
-그럼 저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사건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20대 젊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자신의 사적 체험,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발화(發話)하고 있단 사실이었어요. 이렇게 집단적이고 공개적으로 피해자 증언이 나온 건 처음일 것 같아요. 승은씨도 페이스북에 직간접적인 경험담을 상세히 올리셨죠?
“어제도 춘천에서 10대 여성 청소년이 묻지마 폭행을 당했대요. 이런 사건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어떤 불쌍한 여자가 미친놈, 괴물 같은 놈한테 재수 없게 걸려서 당한 사고라고 여기는데, 전 아니라고 봐요. 제 주변을 봐도 가장 근원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던 건 대개 가정에서 벌어진 아버지의 폭력이거든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걸 한 번 이상 본 친구들이 대다수고요. 학교에 변태 선생님으로 통하는 교사들이 있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바바리맨들, 알바할 때 호의를 베푸는 척했던 사장님, 학교의 남자 선배, ‘작업 건다’면서 술 먹이던 남자친구, 데이트 폭력…. 제 경험만 돌아봐도 정말 페북에 다 못 쓸 정도로 많아요.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 모든 폭력에서 자기는 예외인 것처럼 여기는 무심함이에요. 후배 아버지가 티브이에서 데이트 폭력에 대한 다큐를 보면서 ‘저런 개새끼들이 있냐?’고 욕했다는데, 그 아버지 자신이 엄마를 피가 나도록 때린 가해자였다는 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거죠. 불행은 항상 자극적인 미디어 안에 있고 나의 삶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 그게 끔찍한 거죠.”
-이번에 많은 여성들이 자기 상처를 직접 드러내고 일종의 커밍아웃을 단행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그동안은 이게 각자 개인의 탓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겠죠. 인디가수 봄눈별이 얘기하던데, 세월호 참사 보면서 눈물 흘리고 아파하고 있을 때 아랫집 여자가 매 맞는 소릴 들었는데 자긴 반응하지 않았대요. 세월호도 그렇고, 구의역 비정규직 사고도 그렇고 국가 폭력과 구조의 문제잖아요. 근데 여자라는 이유로 맞거나 죽는 건, 개인 탓으로 돌려온 거예요. 여자가 남자 보는 눈이 없거나, 바람을 피웠거나,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러다 보니 정작 자기가 피해를 당해도 내 탓인 것 같아 공적으로 말을 못 하는 거고요. 그런데 이번 강남역 사건을 보면서 이건 내가 문제라서 당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자각하게 된 거예요.”
현실 속 ‘평범한’ 얼굴의 ‘나쁜 놈’
‘자기는 예외’ 무심함이 더 무서워
가장 빈번한 폭력은 일상 속 존재
가해자는 자기가 한 일 잊고 살아
피해자가 반드시 폭력 증언해야
‘남성은 능력, 여성은 외모’ 편견
미디어 통해 끝없이 확대재생산
민주주의 외치며 광장 나갔는데
찝찝하고 불편한 대목 있더라
‘공감과 연대’의 진보담론 필요
홍승은은 페이스북에 원고지 15장 분량의 긴 글을 통해서 자신이 경험한 성추행과 폭력의 기억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중3 때 노래방 화장실에서 흉기를 든 남자한테 성추행당한 일, 대학 도서관 앞에서 성기를 내보이던 남자, 하굣길 차 안에서 여학생을 보며 자위하던 남자, 멘토를 자처하며 강제로 키스하려던 남자,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집으로 찾아와 강제로 추행한 전 남친의 이야기…. 그들 중에는 주변에서 꽤 존경받는 ‘어른’도 있었고 신뢰받는 사회운동가,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한 친구도 있었다.
“외설적이고 자극적인 사건 안에서 나쁜 놈은 항상 정신병자이거나 괴물로 여겨지지만, 현실 속 그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이 아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가장 빈번한 폭력과 착취는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게일 루빈의 지적은 정확하다. 대체 그들은 ‘왜’ 그러는 걸까? 내가 최근 내린 답은 이렇다.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행동해도 되니까.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력을 저지르곤, 쉽게 잊고 산다. 가해자는 자신이 한 일을 몰라도 되는 입장이다. 그래서 항상 피해자가 폭력을 증언해야 한다.”(홍승은 페이스북, 2016년 5월19일)
대의를 앞세워 소수자를 억압하는 일상
-젊은 여성들 스스로는 이전 세대에 비해 가부장제로부터 자유로운가요? 요즘 돈 없는 남성은 데이트하기 어렵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이벤트도 해줘야 하고 비싼 백과 화장품도 사줘야 한다고. 이게 사실입니까?
“학창 시절부터 남학생들은 ‘성적이 올라갈수록 미래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는 말을 듣고, 여학생들은 ‘성적이 올라가면 남편 직장이 바뀐다’는 말을 들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남녀 모두 ‘남성은 능력, 여성은 외모’라는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다 보니 남성이 여성에게 거부당할 때 ‘내가 비싼 밥이나 백을 사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하지만 경제력을 유일한 매력이라고 느끼는 여성은 사실 거의 없어요. 여자가 돈이 있을 땐 여자가 내기도 하고 그런 거지, ‘여자가 몸 대줄 테니 넌 이만큼 사 줘’ 이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이런 질문 자체에 편견이 깔려 있어요. 아마 미디어의 영향일 거예요.”
-아, 그럴 수 있겠네요. 드라마에 나오는 여성들, 매 맞고 구박받아도 선물 하나에 ‘뿅 가는’ 캐릭터로 그려지죠.
“맞아요. 미디어에 나오는 여성은 딱 세 부류뿐이에요. 첫째, 아주 사적인 존재이자 지켜줘야 하는 여성, 둘째, 유혹적이고 위험한 창녀, 셋째, 여성스러움이 없는 털털한 ‘명예남성’ 스타일.”
-항상 드라마 주인공은 1번이죠. 2번한테 당하고 더 멋진 남자 꼬셔서 복수하는….(웃음)
“하하하, 맞아요. 미디어가 만든 여성상이죠.”
-이번 사건에 대응하는 20대 여성들을 보면서, 문득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의 주역이던 여고생들이 떠올랐어요. 그때 승은씨는 몇 살이었죠?
“21살(만 20살)요. 동생이랑 같이 촛불집회에 나갔었죠. 전희경의 <오빠는 필요없다>란 책을 보면 여성들에게 집회의 경험이 짜릿한 이유는, ‘가부장제에서 항상 딸이나 아내의 역할만 요구받고 사적인 존재로 머무르다가, 공적으로 시민이 되는 체험을 하기 때문’이란 대목이 나와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공적인 주체가 돼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한다는 느낌이 짜릿했어요. 근데, 우린 정의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광장에 나갔는데 아주 찝찝하고 불편한 대목이 있었지요. 민족 문제, 계급 문제가 사회의 주요 모순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싸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이걸 해결하고자 했던 여성들의 정치적 행동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거예요.”
2008년 민주노총의 성폭행 미수 사건은, 당시 수배 중이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숨겨준 전교조 여교사를 민주노총 간부가 찾아가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당시 민주노총과 전교조 일부 간부는 이 사건으로 조직에 도덕적 타격을 미칠 것을 우려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 신안군 여교사 성폭행 사건처럼, 집단의 위신을 개인의 인권보다 중시하는 이들이 빚어낸 2차 가해였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에는 대의를 위해서 ‘소소한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어요. 아직도 그런 인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요.
“저도 예전에는 그런 줄 알았어요. 가장 나쁜 놈들하고 싸워 이기면, 나머지는 연쇄적으로 줄줄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 생각인지 지금은 절감하고 있어요. 과거에 대의를 위해서 싸웠던 386, 486 여성 활동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 세대 여성들은 남성들이 주말에 광장에 나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안, 집에서 자식 교육시키고 사적인 것에 몰두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린다고. 그런데 광장에 나가서 목소리를 내는 것, 투표에 참여하는 것만 정치일까요? 저희 엄마도 훌륭한 정치가였어요. 생활 속에서 공동체를 조직하고 불의를 보면 힘을 모아서 항의하고. 왜 그런 건 다 사적인 것이고 정치가 아니라고 여기죠? 저도 원룸 살면서 아래층에 매 맞는 여자가 있어서 경찰에 10번도 넘게 신고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건 사적인 문제라고 치부하더라고요. 저기 저 광장에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만 해왔지, 일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운동을 한 적은 없어요. 대의를 앞세워서, 소수자들의 권리가 입막음당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해요.”
홍승은은 남성 권력의 언어로 쓰이는 진보의 담론, ‘대의를 앞세우는 폭력’이 아니라, 여성의 언어로 쓰이는 ‘평화와 공감과 연대’의 새로운 진보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시적 일상 속에 자리잡은 차별과 폭력의 사슬을 넘어, 우리의 삶과 일과 몸과 성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일. 홍승은이 꿈꾸는 변화는 대한민국 유사 이래 가장 급진적인 혁명인지도 모른다.
녹취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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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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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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