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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13 18:57 수정 : 2016.05.30 14:24

‘범근뉴스’ 등 1인 미디어를 통해 독보적인 자기 브랜드를 구축한 ‘시사 아이돌’ 국범근이 목표로 삼는 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궁금해하고 그 사람들의 담론 형성에 기여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합정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가 손으로 베트맨 흉내를 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국범근 쥐픽쳐스 대표

“범근뉴스의 국범근입니다. 미리 얘기하는데 오늘의 범근뉴스는 재미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얘기는 분명히 해야겠어.”

타이틀 멘트를 제외하곤, 곁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듯 친근한 반말 투였다. 1인 미디어 ‘쥐픽쳐스’(G-Pictures)의 스튜디오이자 편집실인 그의 방에는 모니터 두 대와 컴퓨터, 자잘한 피규어 인형들, 탁상용 알람시계가 오밀조밀 놓여 있다. 노랗게 염색한 더벅머리 진행자는 쥐픽쳐스의 자칭 ‘최고존엄’ 국범근(19)이다. 4월16일의 <범근뉴스>는 여느 때와 달리 웃음기 싹 가신 진지한 도입부로 포문을 열었다. 국범근이 전하는 이날 뉴스의 주제는 세월호 참사였다.

뉴스와 오락물 경계 넘는 영상물
유튜브 구독자수 2만8000여명
‘청년층의 정치감성’ 대변 아이콘
여당 압승 예상 완전히 빗나간
‘꿀잼’ 같은 ‘내 인생의 첫 투표’

무능·부패 확인한 계기 된 세월호
교육의 당사자인 청소년 제쳐두고
커리큘럼 정해 따르라는 데 분노
‘차렷, 열중쉬어’ 타령하는 교실
“‘학생답다’는 말이 싫어요”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에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세월호 참사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사건이야. 민주국가에서 시민의 모든 요구사항은 정치로 귀결되는 게 정상이야. 이런 문제 해결하라고 우리 세금으로 정치인들 월급 주는 거고. 오히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단순한 추모의 대상이 되면 참사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게 되고 우리는 비슷한 비극을 반복하게 될 거야.”(<범근뉴스> 중에서, 2016년 4월16일)

또렷한 발음으로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그의 말소리는, 무대에서 랩을 하는 뮤지션의 목소리처럼 리드미컬하고 거침이 없었다. ‘꿀잼 영상들의 향연’ 쥐픽쳐스의 유튜브 구독자수는 5월 현재 2만8000여명. 전체 조회수는 200만을 넘어선다.

4월13일 <한겨레21>이 페이스북 생중계로 전한 개표토론 방송에도 국범근은 최연소 패널로 자리했다. 정치담당 기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언론의 사전예측이 크게 빗나간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20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질타하는 기성세대의 ‘20대 개새끼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10대들 사이에서 정치나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으면 ‘정치충’ ‘진지충’이라고 놀림받는다는 시대, 그는 1인 미디어를 통해 독보적인 자기 브랜드를 구축한 ‘시사 아이돌’이다.

영상 제작이나 기사 작성법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국범근의 영상물은 전형적인 뉴스와 오락물의 경계를 뛰어넘어 역사와 정치, 청소년 문제를 다룬다. <범근뉴스> 같은 시사논평, <한국역사인물 랩배틀> 같은 뮤직비디오, <어린놈이 뭘 좀 알아> 같은 토크쇼 등 포맷도 자유분방하다. 고2 때부터 쥐픽쳐스란 이름으로 연간 수십 편의 영상물을 만들어내면서 국범근은 ‘청년층의 정치감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열아홉 살 청년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와 기성세대는 어떤 모습일까? 청소년과 청년의 경계를 막 넘어서는 젊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꿈꾸는 미래와 청년 문화는 어떤 것일까? 지난 2일 바람 몹시 불고 비 오는 월요일 밤, 서울 합정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수업을 막 끝내고 달려온 국범근을 만났다.

내 인생의 첫 투표는 ‘꿀잼’

-요즘 ‘핫한’ 청년 논객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자신의 특별한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국범근은 “객관과 공정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완벽한 객관과 중립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뉴스라는 게 어떤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서, 모든 과정에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조숙한 독립 언론인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얘기를 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 팔로어가 10만명, 50만명 넘어가는 소위 ‘페북 스타’들 많은데, 그분들 대부분이 단순 유머 영상이나 공감 영상, 이런 게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런 걸 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저처럼 시사·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그걸 콘텐츠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저는 그런 희소성 때문에 특별한 캐릭터로 비치는 것 같아요.”

-총선 당일, <한겨레21> 기자들이랑 페이스북 생중계로 개표 관련 토론을 하는 걸 봤어요. 편집장, 정치담당 기자들 같은 정치전문가들 사이에서 유일한 외부 패널이었는데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없던데요.

“그때 엄청 주눅 들었었는데….”

-그랬어요? 별로 그래 보이지 않던데요?(웃음)

“그렇게 안 보이려고 노력한 것뿐이에요. 다 전문기자분들이시고, 나이도 30~40대 훌쩍 넘긴 아저씨들하고 얘기하려니까 처음엔 엄청 걱정이 되는 거예요. ‘어버버…’ 하다가 띨빵하게 나오면 어떡하나 무지 걱정했어요. 나중에는 좀 (긴장이) 풀려서 나아졌지만 처음엔 완전 경직돼가지고 말도 변변히 못했어요.”

-개표방송 하고 나서 관전기 형식으로 <한겨레21>에 쓰신 글을 봤어요. “가장 암울할 것만 같았던 2016년 4월13일, 내 인생의 첫 투표는 ‘드라마틱’하고 ‘다이내믹’했으며 그렇기에 ‘꿀잼’이었다”고 쓰셨더군요. 그 글을 읽고 ‘아, 그렇지! 청년세대에겐 이번 선거의 의미가 각별하겠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저 같은 장년층은 대통령이 바뀌는 걸 본 적도 있고 여소야대 국회를 보기도 했는데, 청년들에겐 이번이 처음이었겠죠?

“그렇죠.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미 에프티에이(FTA) 촛불시위 하고 그랬어요. 뉴스를 보고 사회에 대한 안목이 트일 때가 딱 그 시점이었는데, 이명박 이후로 지금까지 야권이 맨날 깨지고, 깨지고, 또 깨지는 모습만 봐와서 정부, 여당은 어떻게든 ‘이길 사람’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굳어져버린 거예요. 이번 선거도 여당이 유례없는 압승을 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갑자기 예상 못한 결과가 나오니까 깜짝 놀란 거죠. 저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 다 업(up) 되어 있는 상태예요.”

한 번도 투표의 효능감을 느껴보지 못한 세대에게 이번 총선은 뜻깊은 전환점이었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총선, 대선, 재보궐선거에서 판판이 깨지는 것만 봐온 세대는 좌절감을 내면화했고 정치에 더욱 냉담해졌다. 국범근의 칼럼을 보면 이번 총선이 다른 세대에 비해 청년세대에게 특히 값진 체험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항상 이기던 새누리당이 졌다.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원내 제1당 지위를 상실하는 참패를 당했다. ‘정치 알파고’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를 진두지휘했는데도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새누리당은 ‘발렸다’. 오세훈, 김문수, 안대희 등 ‘잠룡’으로 불리던 여권의 대권 주자들이 올킬 당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피닉제(이인제)’도 마침내 낙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무성이 머리를 숙였다. 킹무성이 사과를 했다고! 에헤리디야~”(국범근, ‘내 인생의 첫 투표 스타크래프트만큼 ‘꿀잼’’ <한겨레21> 1108호)

10대가 등 돌린 이유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이미지는 새누리당이 선점했죠. 그런 이미지 전략으로 10대들 사이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 호감도가 높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보세요?

“그때 제가 고1이었는데 그런 친구들 있었죠. 경제민주화니 뭐니 개혁적인 이미지를 앞세우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하면 이명박과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고요. 사실 홍보와 디자인, 마케팅 감각에서는 여권이 압도적으로 앞서가는 것 같아요. 이번 총선에서도 ‘무성이 옥새 들고 나르샤’ 같은 영상 만들잖아요. 야권에서 친노, 비노 싸운다고 해서 ‘박지원 당권 들고 나르샤’ 이런 거 감히 만들 생각 하나요? 새누리당에선 ‘반다송’ 같은 것도 만드는데….”

-반다송이 뭐예요?

“반성과 다짐의 노래… ‘정신차려요!/ 차릴게요… 이런 노래요.”

-아아…(웃음)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은 총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새누리당이 지지층 이탈을 막아볼 의도로 만든 노래 영상으로, 젊은층을 겨냥해 유튜브를 통해 배포되었다. 친근한 포크송 ‘연가’를 개사한 곡으로,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김을동·안대희 최고위원, 최경환·나경원·오세훈·황우여·정병국 의원 등 당내 주요 인사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둘러서서, 젊은이들의 질책에 사죄의 코러스로 화답하는 형식이었다.

“지금 국회 모습 보면 가슴이 참 답답해요/ 알바도 이렇게 하면 지금 바로 잘려요/ 정신 차려요 (코러스: 차릴게요~)/ 싸우지 마요 (안 싸울게요)/ 일하세요 (일할게요)/ 잘하세요 (잘할게요)…”(새누리당 ‘반다송’ 가사)

그러나 누리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반다송을 ‘반성하는 척 다급해서 하는 노래’라고 꼬집고 코러스 가사를 바꾼 패러디물을 쏟아냈다.

“정신차려요 (일단은요)/ 잘하세요 (당선되면요)/ 낙하산이죠 (전 아니에요)/ 사과해요 (꿇었어요)/ 선거 전 을이요, 당선 후 갑…”(‘반다송’ 패러디 가사 중에서)

-이번엔 새누리당의 홍보전략이 젊은이들에게 먹히지 않았나 봐요. 지난 대선 때 가졌던 정부, 여당에 대한 이미지가 3~4년 사이에 많이 바뀐 건가요?

“대선 이전에 보여줬던 개혁적인 이미지, 긍정적인 이미지는 완전히 싹 말소됐다고 봐야죠. 박 대통령이 말 못하는 게 조롱의 대상, 희화화의 대상이 되잖아요. 과거의 개혁적 이미지가 무능, 독선, 무책임으로 바뀐 거죠.”

-그렇게 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뭘까요?

“제 경우엔 개인적으로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역시 세월호 참사죠. 그때 저도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그 친구들하고 완전 또래고요. 그래서 더더욱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완전히 몰입해서 상황을 보게 됐어요.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모임’ 같은 걸 만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구호물품을 보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좌절감, 무력감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저나 제 또래 친구들에게 세월호는, 살면서 처음으로 우리 사회의 무능과 부패를 직접 확인한 계기였어요. 말로만 듣던 그런 비참한 모습을 처음으로 딱 목도한 거예요.”

-흠… 마치 저희 세대가 고등학생 때 5·18을 경험한 것처럼….

“그렇죠. 두 번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예요. 청소년들이 교육의 당사자인데, 우리하곤 아무 합의도 안 하고 그냥 교과서 정하고 커리큘럼 정해놓으면 학생들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거라는 오만한 믿음. 그게 저랑 제 또래 친구들을 엄청 화나게 한 거죠.”

수십년째 ‘차렷! 선생님께 경례!’

국범근
-세월호 참사 직후 ‘가만히 있으라’로 상징되는 우리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고 통탄했어요.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때 학교교육에 변화가 좀 있었나요?

“달라진 점은 전혀 못 느꼈어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맹목적으로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교육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어요. 근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참사 전보다 더 진득한 좌절감이 있습니다. 항상.”

-콩나물교실에서 ‘줄빳다’ 맞으면서 성장한 저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요즘 아이들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공부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근데, 얼마 전 아이 입학식에 갔다가 ‘차렷, 열중쉬어’만 20~30분씩 연습시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30~40년 전 하던 걸 지금도 시키는 줄 몰랐어요.

“변화가 너무 더디죠. 아직도 ‘차렷, 열중쉬어’ 하고 있고, 교칙도 해괴망칙한 게 많아요. 전 ‘학생답다’는 말이 싫어요. 학생다운 게 뭔지 충분히 설명 안 해주고, 귀밑 몇 센티, 파마하면 안 되고, 바지통 줄여 입으면 안 되고, 이런 쓸데없는 거를 잡느라 아침에 교문지도 하면서 선생님하고 학생 사이에 갈등 생기고…. 너무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무얼 위해서 이러고 있는가? 수업 전에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는 문화도 너무 구시대적이고 군국주의적인데 이걸 강요하는 걸 보면 기가 막히죠.”

영국의 ‘생존 버라이어티’ 패러디해
교육 현실 풍자한 <베어그릴스 학교>
영상 통해 나를 표현하는 ‘대안’ 찾아
고3 때도 밤샘하며 작품 만들고
입시 낙방기를 다큐 티저로

뉴스란 프레이밍 따라 달라지는 것
‘범근’뉴스는 내 주관 담은 선언
청소년 목소리 반영 시스템 필요
또래 담론 콘텐츠 만들고 싶어
기성 미디어에 흥미 못 느껴

-(고개 끄덕)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요즘 누가 인사를 그렇게 한다고….

“학생 자치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아요. 학생들이 교육의 당사자인데 정작 자기가 처한 현실에 대해 발언할 기회가 아예 없다시피 하니까요.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실질적인 발언권은 보장하지 않고 학생회장 뽑는 걸로 다 했다고 가르치는 건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가르치는, 나쁜 교육 아닌가요? 저도 개인적으로 뭔가 바꿔보겠다고 시도해본 적 있어요. 반에서 회장도 하고, 전교회장 선거에도 나가고, 대의원 회의에도 나가고….”

-아, 그래서 뽑히셨나요?

“전교회장이 돼서 대대적으로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전교회장 나가려면 한 살 어린 여학생과 러닝메이트 해야 된다고 해서 못 했어요.”

-전교회장 후보는 남학생, 부회장 후보는 한 학년 아래 여학생, 이렇게 나가야 한다고요?

“네. 동성 커플은 안 되고 저보다 한 살 어린 여자 러닝메이트가 있어야 하는데 저로서는 손쓸 방법이…, 아는 여자애가 없어서 출마를 못 했어요.(웃음)”

국범근이 쑥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아직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 없다면서 머리를 긁적일 때, 그의 볼에 수줍음이 묻어났다. 이럴 때 그는 열아홉 소년이다.

-전교회장 되면 하고 싶었던 게 뭐예요?

“그때 다른 애들 공약이 쓰레기통 설치하고 화분 설치하고 그런 거였는데 저는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대의원회를 입법기구처럼 만들고 대의원회에서 의결을 한 거는 쉽게 뒤바꾸지 못하게 명문화하자, 이런 걸 하고 싶었죠. 근데 제가 출마를 못 해서….(웃음)”

국범근은 회장에 출마하진 못했지만, 학교 회장 선거를 통해 한국 사회 부조리를 비유한 <프레지던트>라는 영상으로 교내 유시시(UCC·손수제작물)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 그러고 나니 자신감도 붙고 더 본격적으로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국범근의 성 이니셜을 따서 ‘쥐픽쳐스’란 브랜드를 만들고 다양한 영상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국범근의 대학도전기’도 영상으로

이진순의 열림
-우리 교육 현실을 풍자한 <베어그릴스 학교>라는 동영상을 만든 것도 그 무렵인가요?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하던데요. 특히 천신만고 끝에 학교에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학생이, 지나가는 차에 받혀 흔적도 없이 날아간다는 결말이, 키득거리고 웃으면서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쥐픽쳐스 막 시작하려 할 때 만든 거예요. 야생에서 살아남는, 영국의 생존 버라이어티에 나오는 인물인 ‘베어 그릴스’를 패러디해서 ‘인간 대 학교’라는 부제를 붙여 만든 건데, 그때는 깊이 고민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문제의식이 그리 깊지 않은 상태여서.”

-실제로 쥐픽쳐스 영상물을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을 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황진이와 신사임당’, ‘김좌진과 안창호’ 등 역사상 라이벌을 등장시켜 만든 <한국역사인물 랩배틀>도 그 발상이 신선하고 재미있긴 하지만 역사인식은 비교적 평이한 편인데 후반으로 올수록 더 생각하게 만들어요. ‘유관순 편’ 같은 경우엔 국정교과서 논란과 관련해서 “내 이름 좀 팔아먹지 마. 요즘 애들 거리로 많이 나오지? 걔네가 하면 선동당한 거고, 내가 하면 위대한 거냐?”고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영상 작업을 하면서 많이 배운 거죠. 영상을 통해서 저는,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대안’을 찾은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진로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 같은 게 없었거든요. 영상 작업을 하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고 싶다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어요. 영상을 만들려면 대본을 써야 하니까 글도 필요하고, 시각적 요소가 들어가니까 그림을 알아야 하고, 음악을 넣으려고 하면 음악으로 모든 요소가 하모니를 이루게 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걸 하나하나 배우는 과정이 즐겁고 뿌듯해요.”

-그래도 당장 입시준비를 할 시간을 많이 뺏기니 집안에선 걱정이 많으셨을 텐데요.

“어머니와 갈등이 엄청 심했죠. 어머니는 교사이신데,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애쓰시는 분이지만, 제가 고3이 돼서도 영상 작업하느라 밤샘하곤 하니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 입장에선 그러실 거예요. 아무리 전공과 무관하게 음악을 하거나 창업을 해도, 명문대 출신의 뮤지션, 학벌 좋은 소셜벤처 창업가라고 하면 뭔가 가산점을 받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니까. 이런 부모님 세대에 대해서 할 말이 많겠어요?(웃음)

“과거에는 학력이 계층이동의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그땐 좋은 대학 나오면 어느 정도 지위가 보장되었으니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도 모든 걸 ‘기-승-전-대학’으로 생각하세요. 근데 세상이 많이 변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변할 건데, 여전히 그때 기준을 맹신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교사 부모님 아래서 태어났으나 두 살 때 교사인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갈 때까지 영상 작업을 유보해두기를 원하셨지만, 연세대 언론영상계열을 지망했던 아들은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도 그걸 <리얼다큐 국범근의 연세낙방기> 티저로 만들었다. 국범근은 올해 성공회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했다. 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히기 위해 사회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이제 어머니는 그의 든든한 우군이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저널리즘은 허상

-흥미 위주로 트래픽만 높이는 콘텐츠를 만들진 않겠다고 한 기사를 읽었어요. 그럼 범근씨가 지향하는 미디어는 어떤 거죠?

“제가 목표로 삼는 건 제 또래 친구들, 18살에서 24살까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궁금해하고 그 사람들의 담론 형성에 기여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범근뉴스>까지 왔는데, <범근뉴스>에 대한 비판이나 반론이 많은 것도 알아요. ‘네가 만드는 게 뉴스라고 할 수 있느냐?’ ‘뉴스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는데 네가 만드는 건 뉴스가 아니다’ 같은 비판 댓글도 많이 봤거든요.”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객관과 공정이라는 허상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봐요. 완벽한 객관과 중립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거거든요. 뉴스라는 게 어떤 사실을 어떤 관점에서 프레이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서, 모든 과정에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잖아요. ‘범근’뉴스라고 뉴스 앞에 제 이름이 붙는 건, 제 주관을 갖고 프레이밍한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뉴스쇼라는 선언이죠.”

-미디어를 통해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는데 왜 하필 대상층이 18~24살이죠? 우리나라 청소년기본법은 청소년을 24살 이하로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사실상 정치적 한정치산자예요. 피선거권도 없고, 사회적·정치적으로 당사자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통로도 좁지요.

“100% 공감합니다. 발언권이 적으니까 얘기를 해도 말발이 안 서고, 말발이 안 서니까 변화를 못 만들고, 그러니까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형성되는 악순환이죠.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이제 만 열아홉인데, 쥐픽쳐스를 하면서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지난 2년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세요?

“저한테는 끊임없이 고민과 이해를 확장시켜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고민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시도하고 실험하는 과정이요.”

-독립미디어를 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언론사 시험 준비할 건가요?

“다른 기성 미디어나 언론사에 입사해서 명함 달고 활동하면 내 스스로 재미있을까? 지금 생각으론 아닌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쥐픽쳐스로 개인활동 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의미가 느껴져요. 당분간은 쭉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내 마지막 질문은 잘못되었다. 국범근은 이미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저널리즘의 도식을 사뿐히 무시하고, 영상에 대한 미학적 집착도 가볍게 털어내며, 국범근만이 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를 찾아서. 그는 쥐픽쳐스의 최고존엄, 국범근이다.

녹취 김성희

이진순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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