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통의동 녹색당 사무실에서 만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번 총선에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그는 특정 정당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정치관행과 폐습에 저항하기 위해 선거라는 링에 오른 사람 같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지난 2월2일 아침, 서울 혜화역 3번 출구 앞. 영하 10도로 곤두박질친 기온에 아침 출근길 행인들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녹색 목도리를 두른 사내는 마이크를 들고 지하도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밥상의 안전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정체불명의 외국산 농산물이 범람하고 유전자조작식품과 방사능이 우리 밥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행인들은 잰걸음으로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에게 시선을 두고 얘기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사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하던 말을 이어갔다.
“뻔한 정당, 뻔한 정치인끼리 경쟁하는 정치가 아니라 이제 녹색당과 같은 정당이 제대로 된 정책을 가지고….”
유세차량도, 대형 스크린도 없었다. ‘녹색당 정당 연설회’라고 쓰인 작은 가림막 한 개와 손팻말 몇 개가 전부인 단출한 정당 행사.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흔들림 없이 담담한 자세로 연설하는 이는,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하승수(48)였다. 회계사이자 변호사, 법대 교수였던 그는 4년 전 모든 직함을 내려놓고 정치인이 되었다.
참여연대 상근변호사로 출발해 시민자치연대센터, 정보공개센터 등을 설립하고 풀뿌리운동에 전념하던 그는 2012년 3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을 창당했다. 그는 왜 기성 정당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험난한 원외정당의 길을 택했을까? 자고 새면 탈당과 합당, 분당과 당적 변경의 현란한 명분이 쏟아져 나오는 이때,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무엇일까? 20여개의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20대 총선에서 그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정당득표율 3%의 꿈
지난 12일 오후 2시, 서울 통의동 녹색당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30평이 채 안 되는 사무실 벽면에는 알록달록 손으로 오려 붙인 ‘정치야 희망이 되자’는 문구가 붙어 있고 ‘D-61일’이라고 쓰인 선거현황판엔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 사진이 나란히 게시되어 있었다. 하승수의 사진은 지역구 후보 다섯 중 세 번째에 있었다. 지역구는 ‘서울 종로구’. 그는 뒤늦은 점심식사를 막 마치고 서둘러 들어오는 길이었다.
-바쁘시죠? 요즘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보통 5시 반쯤 일어납니다. 아침 6시 반부터 7시 사이엔, 청와대 앞에서 인증샷 피케팅을 하고 있어요. 종로 지역구 안에 청와대가 있으니까 청와대를 향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피켓 한 장에 써가지고….”
-1인시위처럼요?
“그냥 사진 찍고 나오는 거니까 시위라고 할 건 없어요. 그 시간엔 사람도 없거든요. 중국인 관광객 말고는.(웃음) 그게 끝나면 보통 정당연설회를 합니다. 종로구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열심히 찾아갑니다. 제가 종로구 선거 준비도 해야 하지만 전체 녹색당 선거도 책임지고 있어서요.”
-이번 총선에는 유례없이 많은 군소정당이 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을 마친 상태입니다. 2월 초 통계로 22개 정당이라고 하니. 이 중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 4곳을 제외하면 녹색당처럼 의석이 없는 정당이 17, 18곳이나 됩니다. 녹색당이 이들 무리 속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세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입할 때 정당 투표용지에서 12번이었어요. 그때도 정당이 한 15개 이상?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투표용지가 꽤 길었어요. 그런데 12번 민주노동당을 찾아 찍은 투표율이 13%가 나왔지요. 그래서 8명이 비례대표로 들어갔어요. 관심 있는 유권자는 자기가 찍을 정당을 미리 정하고 들어가니까 정당이 많다고 헷갈리진 않아요. 우리가 정책적인 능력에선 앞선다고 인정받고 있으니까 앞으로 남은 기간 열심히 하면 그래도 녹색당을 찍어주는 분들이 늘지 않을까요? 투표용지는 좀 길겠지만.(웃음)”
[관련 영상] 하승수의 정치 피티쑈, 우리가 직접 정치한다, 녹색당
-19대 총선 때도 공동운영위원장이었지만 출마를 하진 않으셨어요. 이번에 종로구 출마를 결심한 이유는 뭡니까?
“일종의 절박함이 있었어요. 녹색당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지역구에 사람이 나가야 하는데 녹색당 당원들 특성이 나서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가 안 나가고 다른 사람보고 나가라고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종로구에 나갈 테니 좀 나갑시다’ 하고 먼저 지른 거죠.”
-그래서 효과가 있었나요?
“제가 먼저 지르면 좀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뭐….(웃음)”
그는 자신의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권에 드는 건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녹색당의 이번 총선 목표는 정당득표율 3%를 거둬서 비례대표를 한 석이라도 얻자는 것. 그걸 위해 지역구 후보들은 자기 지역뿐 아니라 인접 지역과 전국 홍보를 병행한다.
참여연대 상근변호사로 출발 정보공개센터 등 설립하고 풀뿌리운동 하다 녹색당 창당 왜 원외정당을 택한 것일까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
“2012년 녹색당 득표율 0.48% 현 당원수 7836명, 1만명이 고비 영국·캐나다 녹색당도 당원 숫자 1만명 된 뒤에 원내정당 돼 이 인터뷰 뒤 2천명 많아지면…”
지역 공약은 내세우지 않는다
-이번에 후보자 약력에 학력도 기재하지 않으셨어요.
“한국 정치가 후보들의 혈연, 학연, 지연을 강조하잖아요. 학력, 경력을 정책보다 중요한 스펙으로 써먹는 게 우리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라도 학력을 기재하지 말자 생각했습니다. 제 전공이 제가 해왔던 활동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요.”
-신생 원외정당에 이름도 배경도 낯선 신인인데, 거기 더해서 ‘지역 공약은 내세우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선거를 좀 해봤다 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미친 짓’이라고 얘기하던데요.
“우리나라에서 지역 공약이라고 하는 게 대체로 지역개발 공약이거나 구청장, 구의원들이 해야 하는 민원 해결 공약인데,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그걸로 표를 얻으려고 하면 국가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사라지고 국가정책 토론이 안돼요.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이 해야 할 일은 공약으로 하지 말자고 합의했습니다. 그게 녹색당 같은 새로운 정당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걸 누가 합의하고 결정한 거죠?
“우리는 대의원대회에서 큰 방향을 정합니다. 대의원은 추첨제로 뽑아요. 다른 정당은 대개 선거나 지명으로 정하죠. 추첨제가 당원들의 의사를 평균적으로 더 잘 반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추첨으로 뽑힌 대의원이 책임감을 가지고 사안을 결정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참여 기회가 주어지면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합니다. 우리가 대의원대회를 세 번 했는데 참석률이 70% 정도 돼요. 당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니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표결합니다. 그렇게 해서 합의된 안이, 지역민의 삶과 관련한 주거문제나 환경문제 같은 걸 제외하고 지역개발 공약은 하지 말자는 겁니다. 국회의원 후보자는 국가정책을 얘기해야죠.”
-너무 이상주의적인 것 아닌가요? 지역구 선거자금을 500만원 이내로 하겠다는 얘기도 하셨던데.
“지역구에 나가면 기탁금 1500만원을 반드시 내게 되어 있어요. 그걸 제외하고 500만원 이내로 하겠다는 겁니다. 공보물, 명함, 현수막과 어깨띠. 그렇게 하는 데 드는 최소비용을 500만원으로 잡고 있어요. 유급 선거운동원 안 쓰고 사무실 안 구하고.”
-지금 지역구 사무실도 없으세요?
“저는 아마 천막당사를 차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지금은 예비후보라 괜찮지만, 선거법상 사무실을 안 둘 수는 없게 돼 있거든요. 요즘 선관위 직원들이 저를 자꾸 찾으세요. 서류를 전달해야 하는데 사무실이 없으니까.”
하승수는 특정 정당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정치관행과 폐습에 저항하기 위해 선거라는 링에 오른 사람 같았다. 지난 19대 총선 이후 녹색당은, 2% 이하 득표를 한 정당을 등록 취소시키고 4년간 그 당명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정당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서 위헌판결을 받아냈다. 후보 1인당 1500만원의 고액기탁금제, 비례대표 선거운동 금지에 대해서도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최근엔 선거구 미획정으로 입법공백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잘못된 선거관행이나 선거법에는 반드시 문제 제기를 한다”는 원칙으로 선거운동을 벌여나갈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떻게든 표를 얻겠다는 야심보다는 ‘우리가 정치를 얼마나 다르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고 작정한 사람의 단호함이 느껴졌다.
-별명이 슈렉이라면서요?
“슈렉 만화가 나온 후에 어떤 분이 절 보고 자꾸 웃는 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 슈렉과 닮았다고.”
-녹색당 만들기 전인가요?
“훨씬 전이죠. 나중에 영화 보고 약간 충격받았어요.”
-왜요? 슈렉이 맘에 안 드세요?
“아니 뭐 캐릭터도 좋고 위트도 있는데 용모가 좀… 하하하.”
그가 큰 입을 활짝 벌리며 웃는 모습은 정말 슈렉을 닮았다. 세상을 구원할 백마 탄 왕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득시글대는 세상에서, 뭉툭하고 고집스런 그의 녹색 꿈도 슈렉과 닮았다.
2년 만에 그만둔 회계사 생활
하승수를 만든 시간들
하승수가 후보자 등록 서류에 기재하지 않은 학력과 경력은 예상외로 화려하다. 부산에서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와 교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87년 서울대 경영대에 입학했다. 원래 역사나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경영학을 권하는 집안의 기대를 거스를 만큼 소신이 강했던 것도 아니다. 회계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에 취업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막연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잘나가는 회계사 생활을 왜 2년 만에 그만뒀죠?
“대학 때는 회계사가 ‘증권시장의 파수꾼’이라고 배웠어요. 근데 가서 보니까 파수꾼이 아니더라고요.(웃음) 전문직이라는 게 돈을 벌려고 하면 주요한 고객이 기업일 수밖에 없어요. 그 무렵 마침 부실감사 문제가 터졌어요. 회계사들이 대기업을 봐준 거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싶었어요.”
처음부터 시민운동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판사가 되려고 했다.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우연찮게 참여연대에 자원봉사를 나가게 되었는데, 시민단체에 법률적인 조언을 하거나 정책 생산에 참여하는 게 관료적이고 보수적인 법원보다 훨씬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판사가 되려던 생각을 접고 변호사와 시민단체 일을 양립하기로 했다.
-단번에 확 바뀐 건 아니고 반걸음씩 반걸음씩 옮기셨네요. 비교적 익숙한 자리를 택해서.
“그렇죠. 근데 막상 변호사 하면서 시민단체 일을 하려니 딜레마가 막 생기는 거예요. 일정이 자꾸 충돌하고 안 맞고….”
-그럼 대개 사회단체 일을 포기하죠.
“그러게요. 근데 전 변호사 일을 접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죠. 미쳤었나 봐요.(웃음) 이상훈 변호사하고 사무실 개업해 있다가 둘이 짐 싸들고 참여연대 상근자로 들어갔으니까요.”
-회계사, 변호사 자격증 있는 사람이 시민단체 상근자로 들어가면 월급이 몇 분의 일로 줄어드는 거죠?
“그때는 월급 안 받고 일했어요.”
-게다가 무보수로!
“(머리를 긁적이며) 그때 약간 미쳤었다니까요. 전례도 없고, 변호사가 상근하는데 얼마를 줄 수 있는지 계산도 안 나오고. 그런 상태로 2년 하다가 우리 후임부터는 소액이라도 월급을 받는 시스템으로 만들었지요.”
회계사와 변호사 경력을 바탕으로 처음엔 경제민주화, 조세개혁, 예산감시운동 등의 일을 하다가 점차 지역 풀뿌리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00년엔 ‘시민자치연대센터’를 만들고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터지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단 생각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설립해 소장으로 일했다.
200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회계사나 변호사보다는 스스로 시민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2006년 제주대 법학대학원 교수로 부임해서 가르치고 공부하는 일도 좋았지만, 경기 과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접하게 된 공동육아, 지역공동체 일을 할 때가 제일 행복했다. 2009년 대학을 그만두고 지역활동가, 환경운동가로 전업했다.
-회계사, 변호사 자격증은 있지만 ‘장롱면허’로 안 써먹은 지 오래되었다고 말하셨던데.
“그렇죠.”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뭐, 등처가라고 할밖에….(웃음) 제가 밖에서 쓰는 돈은 원고료나 강의료로 해결하지만, 생활은 교사 생활을 하는 아내가 줄곧 꾸려왔죠.”
얼마 전까지 전세를 살던 그는 최근 충남 홍성에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했다. 선거에 나오느라 지금은 서울에 머물고 있지만 평당원 자격이 되면 농촌으로 내려가 공동체 활동을 하며 살 생각이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집 장만을 하셨군요.
“뭐, 제 아내 이름으로 되어 있어요. 제가 기여한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하하하.”
“슈렉 만화 나온 이후 어떤 분이 절 보고 슈렉 닮았다며 웃는 거예요 나중에 영화 보고 충격받았어요 캐릭터 좋고 위트 있는데 용모가…” 웃으니 그는 영락없이 슈렉이었다
“2012년에 정권교체 안 돼서 가장 피해 본 게 녹색당 당원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밀양과 강정마을 다 전과자 됐어요 제1야당 의원들이 뭔 피해 봤나요”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과 이진순(왼쪽)씨가 녹색당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
-시민운동계에서 조세나 예산, 풀뿌리운동과 생태환경운동, 정보공개운동과 교육운동을 두루 경험한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기성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 같은 걸 받은 적 없나요?
“참여정부 때 청와대에 들어와라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기존 정당에서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청와대에선 어떤 일로 불렀어요?
“초창기에 뭐, 청와대에 사람 모자란다고….”
-근데 왜 안 갔어요?
“저는 ‘지역정치에서 어떤 모델을 만들 수 있을까’에만 줄곧 관심이 있었어요.”
-그때까지는 정당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나요?
“정당이라는 건 내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정당을 하면 권력정치에 빠진다고 여겼고, 그보다는 지역에서 풀뿌리 후보를 내고 지역을 바꿔가는 게 옳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녹색당을 창당하셨네요. 왜 생각이 바뀌었죠?
“2011년 3월11일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어요. 제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풀뿌리운동 하는 사람들을 좀 알고 있었는데 후쿠시마 지역에서 우리처럼 생각하고 풀뿌리운동 해왔던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생협활동 하고 먹거리운동 하고 유기농업 하고, 근데 원전 사고 한 번에 휙 날아가는…. 방사능오염 다 되고 하니까요. 그러면서 그때까지 해왔던 활동을 반성하게 됐어요. 풀뿌리운동이 기본이긴 한데 국가정책을 바꾸지 못하면 소용이 없겠구나 하고. 그때 몇몇이 녹색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문제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거냐’ 하는 거였죠.”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2011년 8월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리고 생전 처음 정당을 만들고 선거를 치르는 일에 나섰다. 당원이 1천명에서 2천명, 3천명으로 불어날 때는 ‘원내 진입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꿈에 부풀기도 했지만 2012년 총선 한 달 전 창당된 녹색당의 득표율은 참담했다. 0.48%.
-0.48%면 몇 명이죠?
“10만3811표입니다.”
-(놀라며) 일 자리까지 기억하세요?
“한이 맺혀 가지고요. 하하하.”
-녹색당은 당원 현황이나 당비 납부 상황을 누리집에 전면 공개하던데, 2월 현재 당원이 7836명입니다. 창당 때보다 늘긴 했지만 햇수로 5년차 정당치고는 증가세가 너무 미미한 것 아닙니까?
“한국 녹색당이 느린 것은 아닙니다. 영국이나 캐나다 같은 경우는 당원이 1만명 될 때까지 10년 이상 걸렸거든요. 외국의 녹색당 당원들 만나면 한국은 진짜 빠른 거라고 다들 그래요.(웃음) 근데 1만명이 고비더라고요. 캐나다나 영국 녹색당이 한 20년 정도 이상 고생하다가 원내정당이 됐는데, 된 시점이 딱 당원 1만명 되는 시점이었어요. 우리도 1만명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터뷰 나가서 2천명 많아지면 대박인데… 하하하.”
-녹색당은 일찌감치 당의 정책공약을 정하고 비례대표도 이슈별로 당원이 투표해서 뽑았지요. 탈원전, 동물권, 기본소득 보장, 최저임금 보장, 전월세에 상한선 도입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녹색당이 지향하는 건 뭡니까?
“한마디로,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같이 살자고 하는 정당입니다. 공존하고 공생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화석연료에 기반하고 시장주의와 경제성장주의에만 매달려온 이 문명으로는 답이 안 나와요. 어떤 잘못을 해도 경제성장률만 높이면 합리화가 되고 정당화가 되는데 이런 성장주의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문명사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입니다. 어떤 분이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한국 정치가 “자신의 재선이 제일 큰 목표가 된 ‘자영업 정치’가 돼버리면서 서로 당선에 유리한 쪽으로 이합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영업 정치가 판치는 세상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 수산물, 건어물도 안 먹으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놀랄 정도로 사람들은 급속도로 무감각해졌어요. 방사능도 그렇고 미세먼지도 그렇고, 더 생각해봐야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거나 체념해버려요. 이런 무력감을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가 문제라고 보는데요. 하나는, 정확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일본에서 수입되는 수산물도 방사능 측정 방법이 되게 부실해요. 검사를 꼼꼼히 해서 나오면 돌려보내야 하고 그럼 골치 아프니까. 이번에 녹색당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 권고 기준의 2.65배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정부가 먼저 알리진 않은 거예요. 정보가 없으니 무감해질 수밖에요.”
-두 번째 문제는 뭐죠?
“이런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공론의 장이 없다는 거요.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사람들은 외면하게 됩니다. 사람 자체가 내 삶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찾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아요.”
-녹색당이 의석을 얻는다고 그게 해결될까요? 이번 선거 결과를 상당히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설사 3% 득표로 원내 1석을 가지게 된들, 그걸로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건 녹색당을 지지하는 3%의 유권자, 그런 사람들의 힘을 키우는 게 정권 교체를 위해서 굉장히 중요해질 거란 사실입니다. 총선 이후에 야권 질서가 재편될 텐데 녹색당 같은 새로운 세력이 3% 이상만 돼도 그 재편 과정에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2012년 정권 교체 안 돼서 가장 피해 본 게 사실은 우리 녹색당 당원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다 전과자 돼버렸어요. 제1야당 국회의원들이 무슨 피해를 봤어요? 정권 교체에 실패한 원인이 저는, 제1야당이 정권 교체를 할 의지가 별로 없었던 데 있다고 봅니다. (대선) 후보야 의지가 있었겠지만, 제1야당 국회의원들이 정말 열심히 뛰었나? 아니거든요.”
-그분들, 어딜 가든 심판론과 정권 교체를 말하는데요?
“한국 정치는 ‘자영업 정치’가 되어버렸어요. 자기 재선이 제일 큰 목표가 된 거지요. 예전엔 김대중, 김영삼 뭐 이런 큰 보스, 리더가 있었고 그 리더 때문에라도 자기가 안 뛸 수 없었는데 그 시대가 지나고 자기가 국회의원 또 하는 게 최고의 목표가 돼버렸죠. 여든 야든 누리는 특권이 크니까요. 이제는 생계형 정치인이 많이 나오잖아요. 자기 정당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게 재선이 되느냐 마느냐가 되다 보니, 서로 당선에 유리한 쪽으로 이합집산하는 거죠.”
-19대 이후 정당마다 리더십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과 갈등이 적지 않았는데, 녹색당은 아직까지 큰 잡음이 없는 걸로 압니다. 녹색당에선 당대표라는 호칭도 안 쓰고 있죠?
“한국의 조직문화가 수직적이고 권위적인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창당 때부터 합의했어요. 여성, 남성이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제도적으로 권한도 별로 없어요. 당직자 임명권도 없고요.”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권력을 줘서 카리스마 있게 일을 추진하도록 할 수도 있지 않나요?
“모든 사람은 권력이 주어지면 타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조선시대 왕 중에도 훌륭한 군주가 없지 않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권력이 쏠리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게 인류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중요한 거죠.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나없이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시기, 그는 권력을 경계하고 권한을 나누려 한다. 그에게 정치는 권력과 문명을 해체하고 다시 짜는 일이다. 어쩌면 하승수는 현존하는 체제에 정면승부를 거는 가장 ‘불온한’ 정치인인지도 모른다.
녹취 이돈섭
이진순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