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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행동의 일원으로 교과서 국정화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전남생명과학고 3학년 장희도(19) 학생은 농업 분야 공무원을 꿈꾸고 있지만 자신의 행위로 인해 공무원 채용에 불이익이 있다면 이를 감수하겠다고 말하는 당찬 젊은이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여주터미널 근처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여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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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청소년행동 장희도
한국인들에게 새해는 해맞이와 함께 시작된다. 서양인들은 연도가 바뀌는 자정을 기해 밤하늘에 일제히 축포를 쏘아 올리며 ‘해피 뉴 이어!’를 외치지만, 한국인들은 새벽 어두움을 가르고 천천히 떠오르는 붉은 해를 맞이하는 것으로 경건한 신년 의식을 치른다. 진통을 겪으며 새 생명이 태어나듯 동쪽 하늘에 태양이 떠오를 때, 우리는 또 한 해를 버텨나갈 용기와 희망의 서광을 가슴에 담는다. 해가 바뀐 2016년, 우리 마음은 여전히 해돋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희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소년은 2016년 새해 일출을 서울 혜화동 거리에서 맞았다. 12월31일 저녁,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고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들으며 혜화동까지 걸어오니 새벽이었다. 다음날 있을 ‘청소년 거리행동’에서 발표할 성명서를 준비하기 위해, 친구들과 24시간 커피점에서 문안을 검토하고 다듬느라 밤을 꼬박 지새웠다. 잠시 후 낙산 위로 떠오를 해를 기다리며, 소년은 열아홉 살이 되는 새해 소감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2016년, 병신년이 오고야 말았네요.
2015년, 처음 겪는 사회생활의 알싸한 맛과
비로소 사회의 불의를 직시할 용기와
10대의 아름다운 마지막 불꽃으로
팔도비빔면 같은 한 해였습니다!
오늘의 태양과 함께 저는 성인이 됩니다.
불의에 당당히 맞서 싸우며 불타는 청춘이 되겠습니다.
아듀 2015! 웰컴 2016!
(1월1일 새벽 5시15분, 장희도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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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소요문화제’에 참여해 청소년행동 추진단원들과 함께 풍물을 치며 혜화동까지 행진하고 있는 장희도 학생.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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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치명타, 그 3만원
전남생명과학고 3학년 장희도(19)는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이하 청소년행동)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이다. 청소년행동은 지난해 10월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행정예고한 뒤 자발적으로 결성된 중고생 모임으로, 총 13차에 걸쳐 ‘거리행동’을 벌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질의서와 청원서를 전국 시·도교육감과 유엔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조사관에게 각각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이 현수막을 들고 거리행진을 할 때,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어른도 있었지만, 다가와 욕을 퍼붓거나 현수막을 발로 차는 어른도 적지 않았다. 열아홉 살 장희도의 눈에 비친 2016년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장희도와 청소년행동의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모였을까?
올 2월 고교 졸업을 앞둔 장희도는 지난해 8월부터 경기도 여주의 한 농산물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 7시께 여주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둘러 약속장소로 나오느라 기숙사에 들르지 못했다며 그가 수줍은 표정으로 커다란 비닐봉투를 든 채 나타났다. 회사에서 입는 겨울 작업복이 봉투 안에 불룩했다.
-보통 이 시간에 퇴근하나요?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기 쉽지 않겠네요?
“네. 그래도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서울 가서 회의하고 행사 준비도 해요. 보통 회의는 밤 9시 정도에 늦게 시작하거든요. 다들 야자(야간자율학습) 하고 뭐 하면 그 시간이나 돼야 모일 수 있어서.”
-보통 정성이 아니네요. 지금 청소년행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돼요?
“많이 모일 때는 한 400명 정도? 지역은 다양해요. 저는 전남이고요, 대구도 있고, 부산, 대전, 군산, 인천, 경기도 광주… 여기저기서 옵니다.”
-다들 어떻게 알고 모이는 거죠?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그룹인가요?
“그보다는 그냥 각자 한 명씩 오는 경우가 많아요. 보도를 보거나 페북 같은 걸 보고 서로 연락해서 모이는 겁니다. 저도 그랬고요.”
-청소년행동엔 처음부터 참가했어요?
“저는 중간에 합류한 케이스예요. 6차 거리행동(11월14일) 때부터였나?… 학교에서 영농학생회장을 하면서 교내 인권운동을 하긴 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설 엄두는 못 내고 있었는데 국정교과서 문제가 10월에 터지는 걸 보면서, 이번엔 정말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싶었어요.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국정화 저지 청년학생 네트워크’라는 데서 주최하는 대자보 백일장이란 데 나가보게 되었죠.”
-그건 주로 대학생들 모임이죠?
“맞아요. 그 일로 광화문엘 나갔는데 그때 청소년행동이 4차, 5차 거리행동을 하고 있었어요. 저도 처음엔 청소년들이 자주적으로 뭔가 할 수 있을까 믿지 못했거든요. 뭔가 뒤에… (망설이며) 음, 뭐랄까….”
-배후가 있다?
“네. 배후가 있거나 어떤 인센티브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고3만 해도 수능이 코앞이고, 다들 시험기간도 닥쳐 있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자주적으로 이런 활동을 하겠는가, 뭔가 있을 것이다, 생각했죠. 근데….”
-만나보니 다르던가요?
“가보니까 바로 딱 알겠더라고요. 일단 학생이 사회를 맡고 있었고요. ‘자유발언하실 분 나오세요’ 하면 다른 학생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발언을 하고요. 다 자기 돈 들여서 필요한 물건도 사고 밥도 사 먹고.”
-지난달 대학로에서 행진할 때 보니까 가면 쓰고 망토도 둘렀던데 그런 것도 각자 준비한 거예요?
“그럼요. 저도 3만원 냈어요. (한숨 쉬며) 에고, 치명타였어요.(웃음)”
-하하하… 그래도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한 행운아인데.
“아녜요. 여기선 딱 최저시급만 줘요. 세금 제하고 나면 편의점 알바보다 못해요.”
-아, 그래요? 학교에서 취업률 높이려고 일단 취직시키는 건가?
“그런 거죠.”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가보니 청소년이 주도하는 모임이더라?
“저희가 모임장소로 (청소년단체인) ‘희망’ 카페를 빌리기는 하지만 회의 진행이나 의결은 다 저희가 하지, 선생님들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우린 대표도, 조직도 따로 없어요.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투표를 하면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전 투표해도 안 나간다고 못박았어요. 그냥 직접민주주의로 표결해서 결정하고 누군가 회의 주재만 하면 됐지, 대표를 뽑아서 한 사람한테 책임과 권한을 몰아주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대표나 직책을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시간 되는 학생들이 나와서 역할 분담하고, 같이 회의해서 준비해요.”
대표도 사무실도, 조직도 없다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뒤
자발적으로 만든 ‘청소년행동’
전남생명과학고 3학년 장희도는
이 모임의 중심인물 중 하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점 관련
청소년들이 유엔에 낸 청원서
석사과정 페이퍼라 해도 믿을 만
정말 이걸 청소년들이 했다고?
민주적 토론·조사의 산물이라네
전교조 선생님들 때문 아니냐?
청소년행동에는 대표도, 사무실도, 조직도, 정해진 회비나 회원가입 절차도 없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더 많이 일을 맡고, 그가 바빠지면 또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운다. 회의를 주재하는 건 대개 장희도 같은 고3생이 맡지만, 진행을 위한 보조자일 뿐 권한을 더 갖는 것도 아니다. 매번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다음 집회를 계획하고 준비물을 분담하고 글을 나눠 쓴다.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다. 이 느슨하고 유연한 조직이 이들 사이에선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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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도 학생이 지난달 12일 청소년행동이 유엔의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조사관’에게 제출한 청원서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고 있다.
여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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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2일 청소년행동이 유엔의 ‘문화적 권리 분야 특별조사관’에게 제출한 청원서도 그런 과정을 거쳐 작성되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의 경과와 문제점’ ‘정부의 위법사항들’ ‘국민들이 받는 피해’를 포함한 총 5개 장과 각계 의견을 요약한 첨부자료. 1400여명의 청소년 서명을 포함한 이 청원서는, 2013년 유엔보고서의 권고안을 조목조목 인용하는 것으로 본론을 시작한다.
(2013년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는 아동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 역사적 시각을 발전시킬 권리를 보장하며 1) 역사교육이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게 해야 하며 2) 역사교육은 투명해야 하고 3) 공식적인 기준안을 대중에 공개하고 4) 다양한 교과서를 승인하여 교사들이 선택하게 해야 하고 5) 교과서 선정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 반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습니다.(‘청소년행동 유엔 청원서’ 중에서. 2015년 12월12일)
-청원서를 보니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아주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잘 정리를 했어요. 학교도 학년도 다양한 청소년들이 정말 이걸 팀 작업으로 해냈단 말이에요? 누가 써준 거 아니고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석사과정 페이퍼라 해도 믿겠어요.
“전체 총괄은 저와 이한수(경기 광주중앙고3)가 했지만, 정말 열 몇 명이 넘는 학생들이 계속 토론하고 조사해서 각자 글을 쓴 걸 하나로 합친 거거든요. 그런데도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이라는 하나의 지적 존재가 이걸 쓴 것처럼 조율이 잘됐더라고요. 우리가 정말 같은 뜻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일반적인 시민단체나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하고 비교해도 굉장히 참신해요. 대개 대표집필자가 초안을 쓰고 다른 이들이 검토하면서 약간 수정하는 정도인데.
“저희는 대표가 없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는지도 몰라요. 구심점이 없으니까 누구든 자유롭게 참가해서 조사할 수 있었고, 누구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었고요.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참여해서 너의 뜻을 펼쳐라’ 한 거죠.”
-구호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짜 민주주의를 체험해봤군요.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하고 싶었어요. 사실 원래 계획은 12월10일 세계 인권선언기념일에 맞춰서 내보내는 거였지만, 우리가 원했던 방식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 날짜가 좀 늦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여럿이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쓴 게 80점이고 한 명의 탁월한 대표집필자가 쓴 게 100점이라 해도, 과정에 의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의 80점짜리가 실제로는 150점이 될 수 있다고 봤죠.”
-모이게 된 과정부터 일하는 방식 하나하나가 모두 청소년 개개인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거라는 점은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근데 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전교조 선생님들 때문이 아니냐?’ 의심하는 시선이 있어요.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저희 학교에도 전교조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설사 어떤 선생님이 나서서 ‘여러분, 북한은 너무 좋은 나라예요. 북한이 하란 대로 합시다’라고 말한다 해도 아이들이 그걸 믿고 따라할 거라 보시나요? 요즘의 그 영악한 친구들이? 설사 ‘집회 나가면 봉사시간을 준다’고 꼬신다 해도, 시험기간이거나 곧 수능을 볼 학생들이 그걸 위해서 거리로 나온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선동을 당해서 나온다는 개념 자체가 황당한 거예요.”
정부의 거짓말을 조목조목 짚어보면…
-그러면 ‘국정화 반대를 위해 거리로 나가야겠다’ 생각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뭐예요?
“헌법 1조2항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놓고 반대가 찬성 의견의 두 배에 육박하는데 왜 정부가 그 말을 듣지 않냐고요. 국민한테 거짓말을 하면서 진행하는 교과서가 어떻게 진실을 담을 수 있겠냐고요.”
-어떤 거짓말을 했죠?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10월9일에 국정화 확정된 것 없다고 말해놓고 사실은 5일부터 비밀 태스크포스(TF) 조직했고요. 추진 주체가 교육부라고 해놓고 사실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상황 관리를 해왔고요. 10월14일에 국정화 예산 결정된 것 없다고 해놓고 13일날 이미 예비비 44억을 의결했고요. 시작과 주체, 비용까지 모든 게 거짓인데 국민을 그렇게 속여가면서 집필 기준도 밝히지 않은 채 지금 뭘 하고 있냐는 거죠.”
-특별히 역사 과목에 관심이 많은가요?
“다른 과목과 달리 역사는, 미래를 통찰하는 힘을 길러주는 거의 유일한 과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자기들 맘대로 하겠다는 건, 우리가 꿈꾸는 미래를 맘대로 조종하겠다는 겁니다.”
-부모님은 지금 희도씨가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거 아시나요?
“네. 광주 내려갔을 때 집에서 피켓도 만들고 했거든요.”
-걱정하지 않으세요?
“보시더니 ‘이런 일 하니? 사실 우리도 정부가 잘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시데요.”
-그래도 아들을 믿고 격려해주시는 편이군요.
“아버지도 운동권… 요즘 운동권이란 말이 좋지 않은 단어로 인식되지만 사회를 위해서 싸운 게 왜 나쁜 거죠? 아버지도 옛날에 조대(조선대)를 나오셨는데 그때 조대는 거의 운동권이었다고 해요.”
-아버지가 그때 얘길 많이 해줬나요?
“아니요. 주변 분들 얘기론 아버지가 열심히 하셨다고 하던데, 정작 아버지는 저한테 단 한 번도 그때 얘길 하신 적이 없어요. 아마도 무슨 상처 같은 게 있지 않나….”
-무슨 상처요?
“글쎄요,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
-가족은 어떻게 되죠?
“부모님과 저, 셋이죠. 제가 1997년생인데 딱 아이엠에프(IMF) 나던 해예요. 제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는 실직하고 붕어빵 장사를 하고 계셨어요. 어릴 때 제가 아버지 도시락을 들고 나가면, 아버지는 도시락을 드시고 전 붕어빵을 먹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붕어빵 되게 좋아해요.”
-보통 그러면 붕어빵 싫어할 법도 한데.
“왜요? 우리 집이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거였는데.”
게임보다 농사가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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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도를 만든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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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창피하진 않았어요?
“전혀요. 온 국가가 허덕이고 다 어려운 판에 그래도 겨울에 따뜻하게 먹을 걸 판다는 게 뭐가 부끄러워요? 아버지는 가난해도 바르게 커야 한다고 항상 얘기하셨어요. 정말 살기 어려울 때도 그걸 몸소 보여주신 분이에요.”
지금 아버지는 비닐자재 유통업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대형마트에서 일하신다. 여전히 살림은 그리 풍족하지 않으나 아들을 믿고 존중해주는 부모님에 대해 큰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희도가 농업계열 마이스터교에 들어가겠다고 할 때도 부모님은 몇 차례 만류는 하셨지만, 끝내 아들의 고집을 꺾지는 않으셨다.
-원래 농촌 출신도 아닌데 농사가 그렇게 좋았어요?
“전 이상하게 날 때부터 식물을 되게 좋아했어요. 저희 집 옆 저수지 부근에 공터가 있었는데 중학교 때 거기 두어 평짜리 밭을 만들어서 상추도 심고 토마토도 심고 매일매일 학교 끝나면 가보고 했지요. 아빠가 미쳤다고 할 정도로 온 용돈을 거기 쏟아붓고, 친구들이 피시방 갈 때 난 그 돈으로 모종 사고 그랬거든요.(웃음)”
-청소년 직업체험교육관에 가면 여러 가지 직업군이 나오는데 거기 농민은 없어요. 직업적성검사에도 선택지에 농민은 없어요. 농업이 미래에 비전 있는 직군이라고 생각하세요?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릴게요. 처음 입학할 때는 비전이 있다고 믿었어요. 농업 자체가 망할 수가 없는 산업이잖아요. 사람은 어찌 됐든 먹고 살아야 하니까. 국제 정세를 놓고 봐도 비전이 있어요. 근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국내 정세를 생각하면 정말 비전이… (긴 한숨) 하아! 내가 볏짚을 들고 불속으로 뛰어든 격이구나 생각해요.”
-국제 정세는 뭐고, 국내 정세는 뭔데요?
“중국의 경우를 보면 몇 년 전까지 식량수출국이었어요. 식량 자급률이 130%대를 넘었다는 것 같아요. 근데 중국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식량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콩 몇 ㎏이 있어야 고기 1㎏이 만들어지니까. 100% 벽이 깨지면서 중국이 식량 수출국이 아니라 수입을 하게 생겼죠. 그래서 수출량을 줄이고 비축을 하려고 들 거고요. 식량이 큰 무기가 되는 거죠. 근데 우린 수입할 데가 없어지니까 자동차를 팔아서 번 돈을 식량 사는 데 다 쓰게 되겠죠. ‘토지직불금’이네 뭐네 해서 농민에게 고기 몇 마리 던져주는 방식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지금 농업은 직불금 끊기면 다 굶어 죽게 생겼으니 불안할 수밖에요.”
-청년농민들이 농업을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국내엔 영세한 가정농이 대부분이라 일단 취업할 데가 없어요. 농사는 3년 학교에서 배운 걸로 되는 게 아니고 직접 지어보면서 해마다 햇빛과 물과 자원이 들고 날 때마다 무얼 심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배워야 하거든요. 그런 경험도 없이 자기가 땅 사고 농기계 사서 하려면 자본금은 많이 들고 실패할 게 뻔하죠.”
전남지역 영농학생회장을 맡아 농업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2013년엔 이론 분야 최고 득점으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까지 받았지만, 촉망받는 농업영재 장희도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은 최저시급의 허드렛일을 시키는 곳뿐이다. 올봄에 농업 분야 공무원 채용 공고가 나오길 기다리는 중이지만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면 지금처럼 활동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거리행진도 하고 성명서도 내고 그러다가 공무원 임용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데요.
“저도 불안하죠. 하지만 음… (잠시 침묵)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거 아닐까요? 출석요구서 없이 찾아와서 연행해 가고, 학교에 전화해서 압박 넣고, 보수단체에서 학교 운영이 마비될 정도로 훼방 놓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청소년행동 학생들한테도 벌어지고 있고요.”
농업분야 공무원 꿈꾸는 농업영재
운동하다가 공무원 못하면 어쩌나
“우선 자기 실력부터 키우라는데
3·1운동 때 공부 먼저 하라던
이완용의 말과 뭐가 다르죠?”
“어른들, 어려운 시대 산 거 압니다
우리가 시위할 때 세상이 그런다고
바뀌겠냐는 말씀들 해주시죠
부모님 세대가 패배했다 해서
지금 우리도 그러리란 법은 없어요”
이제 ‘청소년행동 여명’으로 불러달라
-그러다 공무원 못 되면 어떡해요?
“할 수 없죠. 그런다고 곧 살림 망하는 것도 아닌데. 나중 일을 생각해서 당장 눈앞의 일을 외면한다? 그건 굉장히 이기적인 짓이죠. 전태일 열사 같은 분들은 자기 목숨 내놓고 미래세대 위해서 싸우셨잖아요. 엄청 어려운 시대를 부모님 세대가 손해 보고 싸워줘서 오늘 우리가 여기 서 있는 건데, 그러면 우리도 그만큼 미래세대를 위해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어리니까 뭔가 이 사회에 바꾸고 싶은 게 있으면 우선 자기 실력을 키워서 자리를 잡고 나서 해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근데 그건 이완용이 3·1운동에 대해서 했던 얘기랑 똑같아요. ‘지금은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야. 공부해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나라를 바꿀 수 있어. 지금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그랬죠, 이완용이.”
-어머니한테도 그렇게 얘기했어요?
“네. 사회가 불공평하고 불합리해서 노력한 만큼 성공하기 어려운데, 그걸 성공해서 바꿔라? 말도 안 되는 얘기죠. 그런 불합리한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버려야 하는 것이 너무 많잖아요. 싸워서 이겨야 하고 짓밟아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금 가진 생각을 그대로 이어나가 싸울 수 있냐고요? 전 그럴 자신 없습니다.”
-나도 희도씨 부모님과 같은 연배, 같은 세대예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나 같은 기성세대한테 하고 싶은 말 더 있어요?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신 것 압니다. 우리가 시위를 할 때 이런저런 얘기들 많이 해 주세요.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뀌겠냐?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요. 근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거리로 한 번씩만 같이 나왔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을까요? 기성세대들도 과거에 데모를 하셨고 그렇게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체험하셨겠죠. 근데 부모님세대가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하고 패배했다 해서 지금 우리도 그러리란 법은 없어요. 왜 먹고살기 힘들다고 불평하면서 그걸 고치려고 싸우진 않죠? 애초에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바뀌지 않는 것 아닌가요?”
오는 16일 ‘청소년 행동의 날’을 서울 청계광장 소라탑 앞에서 할 거니까 기사에서 꼭 언급해주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토크쇼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개사곡 경연이랑 전시회도 할 거니까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써달라면서. 아, 그리고 어젯밤 그가 카톡을 통해서 새 소식을 전해왔다. 국정교과서 반대뿐만 아니라 세월호, 위안부 문제, 청소년의 투표권과 피선거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 청소년행동이 모임 이름을 바꿨다고. 이제부터 ‘청소년행동 여명(黎明)’이라 불러달라고. 이제야 ‘새해가 밝아온다’는 느낌이 든다.
녹취 이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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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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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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