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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6 18:59 수정 : 2015.12.22 15:05

‘알바생’이란 단어는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알바를 택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구교현씨는 2013년 7월부터 ‘알바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는 알바노조의 위원장을 맡아왔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알바노조 사무실에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알바노조 위원장 구교현

‘알바’란 한국 사람만 쓰는 한국말이다.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 노동)를 어원으로 하지만 독일에서 뭐라고 쓰였건 상관없이,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아르바이트’는 청년문화의 한 조각이었다. 당시 그 말엔 ‘성실한 고학생의 꿈’이나 ‘세상과 직접 부딪혀보려는 젊은이의 패기’ 같은 서정이 깃들어 있었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아르바이트’를 ‘부업’(副業)으로 순화해서 쓰라고 권고했다.

90년대 아이엠에프(IMF)를 거치면서 아르바이트의 낭만은 거세되고, 알바는 부업이 아닌 생업이 되었다. 10대 청소년부터 60대 장년층까지 뛰어들게 된, 자본주의 먹이사슬 최말단의 시간제 노동. 알바는 과거 아르바이트의 준말이 아니라 2000년대 이후에 새 의미를 부여받은 신조어다. 최근 ‘알바천국’이 1만77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알바 종사자들은 일주일에 평균 22.5시간을 일하고 한달에 평균 63만6000원을 받는다. 법정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알바가 수두룩하고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모두 노동법 위반이지만 방치되고 있다.

노동권의 변방에 있는 알바들의 권리를 위해 2013년 7월 알바노조가 설립되었다. 알바노조는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올리라며 “시급 일만원” 운동을 펼치는 한편, 알바노동 상담, 부당관행 시정 요구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작년 말에는 패션노조, 청년유니온과 함께, “청년착취 대상”에 디자이너 이상봉을 선정해서 디자인업계의 고질적인 임금착취 관행을 고발했고, 곧이어 디자이너에게 모델 같은 몸매만 요구하는 신체 차별 구인공고 실태를 모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합원 360여명 규모의 신생 노조지만 그 활동은 재기발랄하고 저돌적이다.

알바노조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신촌로터리 뒷골목에 위치한 노조 사무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평화캠프 서울지부, 청년좌파, 청년초록네트워크 등과 같은 단체들과 공동 임대한 사무실의 두어 평 남짓한 파티션 공간에서 7명의 상근자가 일하고 있었다. 알바노조 로고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입고, 키가 큰 사내가 성큼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구교현(38) 위원장이었다.

알바하면서 숱한 참담함 느껴
자기 존재감 강렬히 인식하려
오토바이 시끄럽게 타게 되더라
‘최저시급 일만원’ 과한 주장 아냐
알바하면서 먹고살 수 있어야

호출근로, 꺾기, 최저근로조건…
맥도날드 부당관행 바로잡기
올해 역점사업 중 하나
신촌점과 연세대점 매장 점거
오늘 저녁 선전포고를 하다

10대부터 60대까지 알바인생 연대기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나?

“조합원들이 매달 최저임금만큼 조합비를 낸다. 올해 (최저임금은) 5580원이니까 매달 그만큼씩.”

-그것으로 운영비가 나오나? 상근자 월급은?

“조합비만으론 운영이 안 되는데 ‘알바연대’라는 후원단체를 통해 직장인이나 노무사, 학교 선생님…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후원을 해주고 있다. 그걸로 활동가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건비를 줄 수 있는 상태다.”

-청년유니온도 노동조합인데, 알바노조와는 어떤 관계인가?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다. 청년유니온은 청년세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알바뿐만 아니라 인턴, 계약직, 일시적 실업자 등 청년노동자 전반의 문제를 다룬다. 이에 비해서 우리는 알바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청소년과 청년층이 많기는 하지만 중년, 장년까지 세대가 확장된다.”

-알바는 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 잠깐 하다 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알바노동자라 하지 않고 뭉뚱그려 ‘알바생’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알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

“청소년부터 중장년층까지 광범하다. 청소년들 경우엔 우리가 만나본 바로는 부모님들이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았다. 생계가 어려워서 자식이 하고 싶은 거를 후원해 주지 못하는 환경. 단순히 휴대폰 사고 싶어서 일하는 게 아니다. 대학생이 되면 학비 대기 위해서 일하다가,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니까 또 알바 하러 나오고….”

-당신 연배의 사람들도 많나?

“물론이다. 내가 2013년에 롯데리아에서 일할 때 같이 일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30대였다. 어떤 이는 통닭집 하다가 망해서 왔는데 하루에 12시간~15시간씩 일했다. 빚을 갚아야 되니까. 또 어떤 친구는 투잡(two job)을 뛰고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데 결혼해서 아이 낳고 직장 월급만으론 생활이 안 돼서 나온 거다. 50~60대층에서도, 퇴직은 했는데 자녀들이 취업을 굉장히 늦게 하고 공부를 계속하니 뭐라도 해야 한다. 알고 보면 굉장히 좋은 직장 다니고 3개 국어 할 줄 알고 스펙도 엄청 훌륭하신데, 편의점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고 알바하시는 50~60대 아저씨들을 여럿 뵈었다. 맥도날드에 가면, 이런 다양한 분들을 하나의 매장에서 다 볼 수 있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청소년, 청년과 중년층, 그리고 주부사원….”

-그럼 연령대나 경력에 따라 임금이 다른가?

“맥도날드는 무조건 다 최저임금이다.”

-거참… (실소) 엄청 평등하네!

그나마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231만명, 전체 노동자의 12.6%에 이른다. 구교현의 말대로라면, 10대부터 60대까지 알바들은 동심원의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도는 소모품들이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시급 노동자의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행로.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걸음씩 빠져드는 개미지옥처럼, 알바로 시작해서 알바로 끝나는 알바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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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레스토랑의 ‘강아지 자세’

-지난달 초,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백화점 주차장 모녀 고객 앞에 무릎 꿇은 알바생들에 대해 “하루 일당 못 받을 각오로 당당히 부당함에 맞설 패기도 없는 젊음. 가난할수록 비굴하지 말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다”고 썼는데.

“청년 알바노동자들을 그렇게 만드는 건 우리 사회다. 패밀리레스토랑 가면 주문받는 친구들이 고객 앞에 무릎 꿇고 앉는다. 이걸 ‘강아지 자세’라고 하는데,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되는 거다. 알바들은 언제든 쉽게 잘릴 수 있고 다른 데 가봐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니 어떤 알바가 갑질하는 고객한테 뭐라 하겠나? 그러면 바로 잘리는데. 사실 그렇게 해고되는 친구들도 많다.”

-그렇게 잘리고 다른 데 가서도 또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우리 사회 엘리트들은 잘 모를 수 있다. 알바노조 위원장인 당신도 알바를 하면서 참담함을 느낀 적이 있나?

“재작년이던가, 롯데리아에서 평일 오후 1시부터 저녁 8, 9시까지 배달 일을 할 때였다. 저녁때 배달이 밀리면 밥 먹을 시간을 넘겨가며 일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날 홍대 앞에 배달을 나갔는데 문득 서글퍼졌다. 남들은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빵 하나를 배달한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나는 뭔가? 그러다보니 오토바이를 세게, 시끄럽게 타게 되더라. 빵빵 막 소리를 내면서.”

-아, 그게 그런 거였구나. 배달하는 분들 오토바이 소음 내는 거 종종 봤는데.

“자기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 즐겁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묻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강렬하게 인식시키는 방식이 오토바이 소음 내기다. 빵~ 하고.”

-‘나 여기 있어!’ 외치듯이….

“맞다. 교통신호에 걸리면 오토바이들이 정지선 앞에 일렬로 주르르 선다. 맥도날드, 롯데리아, 통닭, 피자… 이렇게 일렬로 딱 서서 신호를 기다릴 때, 그들에게서 왠지 진한 정서적 연대감을 느낀다.”

-개인사 얘기를 좀 더 듣고 싶다. 지금 30대 후반이니 낼모레가 마흔인데 그간 알바만 쭉 해온 건가?

“그건 아니다. 알바노조를 하기 전 장애인단체에서 2005년부터 7년간 일했다. 거기서 장애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권리를 요구하는 일을 했다.”

-원래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꼭 그런 건 아닌데… 장애 문제에 대해서 약간의 ‘민감성’은 있다. 70년대, 내가 두세살 무렵일 때, 아버지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왼쪽 다리를 다쳐서, 무릎 밑을 절단하셨다.”

-산재였나? 어떤 작업을 하다 다치셨나?

“모르겠다. 살면서 한번도 여쭤보지 못했고 아버지도 사고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내가 위로 누나 둘이 있고 외아들인데 어려서 아빠하고 목욕탕을 가는 게 부끄럽고 싫었다. 아빠는 왜 다를까, 아빠도 두 다리 멀쩡하고 뛰어다니면 좋을 텐데, 그러면서 컸는데 나중에 자라서 생각하니 죄스러운 생각이 들고… 그래서 장애와 관련된 문제를 접하면 좀 더 관심이 가긴 했다.”

사고 후 아버지는 어머니와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삼남매를 뒷바라지하셨다. 96년 구교현은 서울에 있는 전문대 정보통신 관련학과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엠에프가 터졌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에 갔는데 “운이 없었는지”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

-그때가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을 텐데, 시위 현장에 나가본 적 있나?

“많이 나갔다. 99년도 지하철노조 총파업에도 가고 에프티에이(FTA) 반대투쟁에도 가고.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은 여수 화학단지의 주민시위였다. 여수에 새로 공단을 확장하면서 주민들을 이주시키는데, 화학약품 냄새가 너무 역해서 버스에서 내리려면 방독면을 써야 할 지경이었다. 근데 바로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있었다. 앞바다에 양식장을 갖고 계셨고. 그걸 가로질러 매립하고 쓰레기소각장도 지을 예정이라고 하니, ‘생계수단 다 버리고 어딜 가서 살란 말이냐?’고 항의를 하신 거다.”

-그런 사연은 어떻게 알게 됐나? 주민들이 시위하는 이유를 상관이 설명해주나?

“그런 거 없다. 내가 아는 얘기는 다 집회 현장에서 들은 거다.”

-전경들이 집회 현장에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 이 사람들이 뭘 듣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이 안 되던데, 그런 얘기가 다 들리나?

“다 들린다. 집회를 하러 삼삼오오 모일 때까지는 적대감도 없고 손자 같다고 ‘여름인데 힘들지?’ 하면서 물도 주시고 과자도 주시던 분들이다. 그러다 어느 날 진압을 굉장히 세게 한 날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팔다리 잡아 들어내고 밀치고… 그 과정에서 그분들도 화가 많이 나셨다. 우리를 향해 벽돌을 던지고 차를 몰고 돌진해 오기도 했다. 다정했던 분들이 갑자기 살기 띤 눈빛으로 바뀌는 걸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저분들이 왜 이렇게까지 저항을 할까, 저렇게까지 저항을 하는데 관청이란 곳이 이걸 막고 있는가?’ 심각한 고민이 들면서 군대 갔다 오면 그런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대 후 알바를 시작했다. 정보통신 분야가 취업이 잘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정규직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점이었다. 동기들 대부분 계약직으로 입사를 했고 지금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직장을 옮겨 다닌다. 먹고살기 위해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비정규직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알바 문제를 제대로 제기해 보자 마음먹었다. 스스로 ‘알바생’이 아니라 ‘알바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뜻이 맞는 동료들과 알바연대를 만든 데 이어 7월엔 알바노조를 만들고 초대위원장이 되었다.

알바들이 무책임하다고? 이면을 보라

-알바노조에서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뭔가?

“두가지다. 하나는 최저임금 일만원으로 인상하기 운동, 또 하나는 맥도날드의 부당한 노동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다. 맥도날드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극단적으로 발달됐을 때의 형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예를 들면 ‘호출근로’ 같은 방식이 그렇다.”

-호출근로가 뭔가?

“맥도날드가 내세우는 게 ‘우리 회사는 노동자들이 와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는 건데 말이 안 된다. 실제로는 인력 풀을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부른다. 매니저 눈에 안 들면 일주일에 2~3시간밖에 못 하기도 한다.”

-근로계약서에 근무시간을 명기하도록 되어 있지 않나?

“그걸 공란으로 비워놓는 경우가 많다. 불법이다. 또 매장별로 레이버콘트롤(labor control)이라고 해서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을 정해놓는다. 매출이 떨어지면 인건비도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서 점심·저녁엔 붐비고 오후 3~4시쯤엔 손님이 없으니까 중간에 알바들을 집에 보낸다. 그만큼의 시급을 깎으려고. ‘꺾기’라고 해서 초과근로수당을 안 주려고 근무시간표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어제 10시간, 오늘 4시간 일했으면 어제 8시간, 오늘 6시간 한 걸로 바꿔서.”

1993년 사회학자 조지 리처가 지적한 맥도날디제이션(McDonaldization)은 지구화시대 경영 패러다임이다. 효율성과 측정가능성, 예측가능성, 그리고 고용 통제를 특징으로 한다. 규격화된 제조 공정과 판매 전략, 일률적인 맛과 가격, 그러나 인간은 규격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2013년 5월, 국제식품노동자조합(IUF)의 26개국 대표들은 맥도날드의 저임금과 노조탄압에 반대하며 맨해튼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1월, 알바노조의 이가현 조합원도 한국 맥도날드의 부당관행을 폭로한 뒤 해고되었으나 맥도날드는 적법한 절차에 의한 것이었다며 알바노조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최저임금 일만원’이란 구호를 처음 제기한 게 알바노조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영세 자영업자들도 반발할 것 같은데.

“노동자들 스스로 시급 만원이 과한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장벽이다. 그런데 시급이 실제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적자를 보면서 억지로 자영업을 꾸려나갈 이유가 없지 않나? 이제 알바는 하나의 직업이다. 이게 현실이다. 알바를 뭔가 비정상적인 상태, 벗어나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는 건, 명백한 현실 부정이다. 알바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확보돼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노동생산성도 높아진다.”

2015년 최저임금 5580원은 전년도에 비해 370원 인상된 수준이다. 현재 한국의 최저임금액은 오이시디(OECD) 국가가운데 상위권인 오스트레일리아, 룩셈부르크 등의 3분의 1에도 미달한다. 일인당 지엔피(GNP)가 우리(2만5977달러)보다 낮은 슬로베니아(2만3289달러)의 최저시급 6.0달러보다도 낮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알바노동자들에 대해서 ‘너무 무책임하다,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 망하든 말든 신경 안 쓴다’고 얘기하는 사장님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알바도 있다. 알바도 사람인데 나쁜 사람이 왜 없겠나. 근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세상이 알바노동자를 그렇게 막 대하기 때문에 알바노동자들도 막 일하는 거다. 알바는 값싼 인간들, 5580원짜리 인간들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히 알바들의 지갑을 더 채우자는 게 아니다. 다수의 알바노동자들을 이 사회가 어떻게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사람 대접을 할 것인지 따져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지 며칠 뒤, 알바노조가 맥도날드에 공개 경고장을 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진순 언론학 박사
“매장점거 경고장: 귀 회사는 부당해고, 불법적인 꺾기, 최저근로조건 등에 대해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는바, 2월7일 저녁, 매장 점거를 경고하는 스티커를 발부합니다. 알바노조.”

2월7일 저녁 알바노조가 선전포고한 점거 장소는 맥도날드 신촌점과 연세대점이다.

녹취 함규원(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 이진순 언론학 박사. 전직 교수. 살림하고 애 키우는 오십대 아줌마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열혈시민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와 럿거스대 커뮤니케이션스쿨을 졸업했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조교수로 인터넷 기반의 시민운동을 강의했고 그 전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다큐멘터리 작가로 다양한 인물을 취재했다. 세상의 새 지평을 여는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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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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