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한 찻집에서 만난 최서윤 <잉여> 편집장은 잉여들이 만들어가는 대안적 삶의 방식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모두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경쟁에서 도태된 잉여들끼리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 그게 우리의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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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최서윤 월간 ‘잉여’ 편집장
“제가 대학을 안 다녔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시작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잡지 <잉여>의 창간자이자 편집장, 최서윤은 나이와 학번을 묻는 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언론고시(언론사 입사시험) 준비했었단 기사 읽었거든요. 대학 나와야 언론사 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안 그런 데도 있어요. <한겨레>처럼….”
최서윤은 학벌과 간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싫다고 말했다. 새까만 눈동자가 맑고 당돌했다. 거기다 대고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묻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1986년생. 만 27살, 미혼.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언론사 기자가 되려고 2년간 십여 군데 원서를 넣었으나 연거푸 낙방했다. 세상에 쓸모없이 남아도는 “잉여인간”이 돼가던 중, ‘아무도 날 안 뽑아주면 내가 직접 차려보겠다’는 오기로, 알바로 번 돈을 탈탈 털어 만든 것이 잡지 <잉여>다. 2012년 2월 무가(無價)의 월간지로 창간되어 현재 14호까지 나왔다. 지금은 80쪽 안팎의 격월간지로 권당 4800원에, 온라인서점이나 대학 인근 소규모 서점을 통해 판매된다.
사회적 소수자의 삶 깨닫게 한 해외연수
-언론사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든 건가? 경쟁률이 어느 정도 되나?
“허수까지 포함해 천 대 일까지 될 때도 있다. 워낙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누적되어 있고, 신입을 뽑는 언론사는 별로 없고 하다 보니….”
-혹시 독자적인 잡지 창간을 통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겠다, 그런 생각은 아니었나?
“이거(월간 잉여) 자체를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날 안 뽑아주면 내가 더 좋은 언론사를 만들어서 그걸로 (기존 언론사와) 경쟁을 하겠다’는 맘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언론사를 만들어서 언론환경이 변화되도록 기여하고 싶단 생각…. 내가 워낙 잘 ‘빡치는’ 성격이어서….”
-“빡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열 빡 받는다. 분노한다는 뜻….”
-세대간 통역을 위한 용어풀이 사전이 필요하겠다.(웃음) 원래 비판적 언론인이 되는 게 꿈이었나?
“꼭 그런 건 아니었다. 평범한 중간계급의 자식으로 자라면서, 대학 갈 때까지도 구체적인 현실세계에 부딪힐 기회가 별반 없었다. 전공도 언론 쪽이 아니고 경영학이었다. 1, 2학년 때까진 정치적 관심이 없어서…. 흑역사를 공개하자면, 예전에 한나라당을 찍은 적도 있다.(웃음)”
-흑역사?
“그걸 흑역사(黑歷史)라고 하는데 나의 어두운 역사…. 주변에서 다들 노무현 욕하니까 (노 대통령이) 잘못하나 보다 생각하고 2006년 지방선거 때, 내게 첨으로 투표권 생겼을 땐데, 가서 한나라당 찍었다. 사회 구조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3학년 때 해외에 어학연수 가서부터다.”
-해외연수 때 무슨 일이 있었나?
“2007년에 아일랜드 어학원으로 갔는데 틈나는 대로 친구들이랑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영국의 청소년들로부터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아본다든가, 유럽 남자들이 나한테 접근을 하는데, 순전히 타자화된 동양 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온다든가…. 굉장히 정물화된 대상으로, 힘없는 소수자로 산다는 게 무언지 처음으로 깨닫게 된 계기였다. 한편으로는 유럽 애들하고 만나면서 배운 점도 많다. 난 특히 스페인 애들이 좋았는데 스스럼없이 자기 집에서 재워주기도 하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계산하지 않는 호혜적 관계가 좋았다. 간판이나 배경에 신경 쓰지 않고 그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 어떤 삶을 살았는지로 판단하고. 흔히들 이십대는 정치적 관심이 없다고 할 때였고 나 역시 그랬는데, 프랑스나 스페인 애들을 보니 분명한 철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정치적 논쟁을 열띠게 벌이더라. 그러면서 멀리서 다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니 이명박이니 신정아니 해서 시대적 광기가 느껴졌다. 그때부터 제 역할을 못 하는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언론인이 되고 싶어졌다.”
기자 되려고 2년간 원서 넣다 연거푸 낙방 뒤 만든 월간 ‘잉여’
날 안 뽑아주면 내가 더 좋은
언론사 만들어 경쟁하겠다는
맘에 알바비를 몽땅 투자했다 잉여는 도태된 사람일 수도
경쟁 거부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실패가 없으면 공감능력 떨어져
운이 좋아 돈 많은 줄 모르고
자기 잘난 맛에 산다 30년 전 세대의 학생들이 농촌활동이나 야학을 통해서 가난을 학습했다면, 최서윤의 세대는 해외연수를 통해서 “알껍질을 깨는 의례”를 치른 건지도 모른다. 농촌이나 공장에서 “민중을 배운” 구세대에 비해 그들의 성인식이 안일하고 호사스러웠다고 폄하할 수 있을까. 그 구세대 역시, 전쟁과 기아의 참혹한 경험을 간직한 이전 세대와는 성장 환경이 판이하게 달랐는데. 시대는 변하고, 젊은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방식도 변한다. -해외연수 간 보람이 있었네. “결과적으론 그렇지만, 나도 부모 등골 빼먹으면서 해외연수 보내달라고 징징거린 애였다. ‘내 주변에서도 다 하는데 나도 하고 싶어요’ 하고, 철없는 마음에.” -그게 왜 철없는 소린가? “비교를 하는 거니까,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고 남들하고 비교해서 해달라고 하는 게…. 그땐 부모님도 경제적으로 좀 괜찮은 편이셔서, ‘아버지 어머니 잘사시니 나한테도 투자를 해달라’고…. 먹튀, 먹고 튀는 어학연수를 한 셈이다. 부끄러운 짓이다.”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물어봐도 되나? “예전에 부동산 과열로 이익이 날 때 차익을 남겼다고 알고 있다. 부동산으로 흥했다가 부동산으로 망하신 분들이다.” -부모가 경제적 여력이 있으면 자식에게 그 정도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지 않은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부모의 기대대로 살려고 하고. 부모 역시 자기 인생을 살기보다 자식에게 기대하는 경우가 많고. 양쪽 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게 건강한 건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때는 부모라면 해줘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15호 준비 중인데 16호 낼지 계획 없어” -요즘 생활비는 어떻게 버나? 잡지 팔아 생활비가 나오나? “아니다. 그저 근근이 제작비만 건지는 정도다. 미래를 위한 저축을 별로 하지 않고. 적게 벌고 적게 쓴다는 원칙인데. 직거래로 책도 팔고, 친구가 모과차·레몬차를 홈메이드로 하는데 그거 도와주기도 하고, 캐리커처도 그리고 그때그때 일을 한다.” <격월간 잉여>가 빈곤한 재정에도 운영될 수 있는 비결은, 제작에 필요한 고료나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상근자도 사무실도 없이 ‘잉집장’(<잉여> 편집장) 최서윤이 혼자서 기획과 인터뷰, 편집, 교열을 모두 맡고, 다양한 분야의 필진이 고료 없이 원고를 “투척”한다. 원고의 주제와 영역도 다양하다. 정치, 문화, 연애와 결혼, 가족과 이웃, 취업준비생의 고단한 일상까지 아우른다. ‘안철수는 국회 잉여 안될랑가 몰라’ ‘개성공단, 귀환과 존엄 사이’ ‘이웃을 호구잡지 않으면서 가난하기’ ‘500만원으로 결혼하는 법’과 같이 톡톡 튀는 기사가 실린다. 필자들은 대개 20~30대 젊은층으로 취업준비생이거나 대학생인 경우도 있고 이미 취업을 한 기자, 출판인, 만화가도 있다. 필자들이 스스로 작성한 자기 프로필에는 잡지 <잉여>를 만드는 이들의 “잉여스러움”이 묻어난다. “요즘 핫하다는 상수동에 살면서 다채로운 배달음식에 흥분하는 칩거형 잉여” “복학이 두려운 휴학잉여”도 있고 “잠, 겜(게임), 책, 세 가지를 사랑하는 메타 오타쿠” “원래 잉여였으나 최근에 기자가 되어 잉여롭지 않은 인물”도 있다. -자발적 참여로 구성된 독자위원회가 편집위원회 비슷한 역할을 하던데, 수시로 구성원들이 들고 나는 게 보였다. 그렇게 들쑥날쑥하면 안정적으로 일이 되나?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게 삶이 아닌가? 이번에 15호를 준비 중인데 16호를 낼지 계획이 없다. 원하는 사람 있으면 내는 거고, 이미 할 말 다 했다 싶으면 안 낼 수도 있는 거고.” -왜 돈이 덜 드는 온라인매체를 하지 않고 종이매체를 고집하나? 잡지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퇴조해가는 산업 분야인데. “내게 아날로그적인 ‘덕후’ 기질이 있다. 종이의 물성(物性)을 좋아하는 덕후스러움. 또다른 덕후들이 그걸 알아보고 수집을 할 거란 생각을 한다. 책을 읽을 때 온라인으로 파편화된 글을 읽는 것과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콘텐츠를 읽는 것은 다르지 않나.” -‘덕후’가 일본말 ‘오타쿠’(전문적 식견을 가진 마니아)에서 온 은어란 건 나도 안다. ‘덕후’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까?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 자신만의 경험을 갖고 싶어서 돈을 더 많이 쓰는 존재? 지난 12호에서 내가 덕후 중 상덕후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에반겔리온 덕후.’ 제작사가 영국, 프랑스, 중국에 부스를 설치해 스탬프를 찍어주는 ‘스탬프 랠리’를 하는데, 일본인도 못한 그 랠리를 완주한 한국인이었다. 랠리 비용도 한 천만원 들었다는데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냐 하는 욕망. 내 돈 쓰고 내 시간 쓰면서 그걸로 자존감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런 잉여들이 정보자본주의의 토대라는 주장도 있다. 주체성을 지닌 문화생산자가 아니라 정보자본주의의 이윤 창출을 위한 만만한 먹잇감.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그걸 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 그런 틀에서 자존감과 재미를 얻는 사람들이 있는 거니까.” -왜 그런 걸로 자존감을 찾으려 할까. 긍정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은 일로 혼자서 자위하는 꼴 아닌가. 좀더 세상에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자존감을 찾을 순 없나?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일 것이다.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책을 보면, 산업화 시대에는 개인의 성취와 국가적 성취가 병행되는 게 가능했다. 지디피 성장, 국가의 해외진출과 더불어 내가 성장하고 성취하는 느낌이 들면서 자존감을 찾았는데. 이제는 사회가 ‘내려가는 사회’다. 예전엔 학생운동이나 산업화의 역군이 되는 것이 자존감을 얻는 방법이었겠지만, 지금은 기업에 들어간 사람 중에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간의 역량엔 한계가 있는데 아침 9시부터 야근까지 에너지를 다 빨리고 나면 다 닳은 영혼으로 좀비처럼 집에 와서 멍때리고 있고, 주말에 몰아서 술 마시거나 잠만 자고. 그런 생활에서 자존감을 느낄 여지가 있나?” “촛불집회 이젠 지겨워…다른 방식 고민하자” -잉여의 개념이 모호하다. 자조적 의미지만 그 위에 유유자적하는 긍정적 에너지를 덧입혔달까. 잉여는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인가, 경쟁을 거부하는 사람인가? “둘 다 포괄한다. 구직시장에서 회사들이 다 퍼가고 도태된 사람들이 잉여일 수도 있고, 아예 그런 경쟁구도를 거부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잉여일 수 있다.” -그런 잉여끼리의 인간관계는 경쟁인가, 공생인가? 서로 피 터지게 경쟁하다가 떨어지면 공생인가? “그게 모순이라는 말은 인정한다. 하지만 도태된 공동의 경험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기회다. 천연두 백신을 맞으면 천연두에 안 걸리는 것처럼 도태된 경험이 백신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도태되고 공감을 하면서부터 성 소수자를 이해하는 백신,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백신이 생성된다. 거기서부터가 중요한 것 아닌가.” -‘도태’가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라는 뜻인가?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람은 실패를 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공감능력 떨어지고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운이 좋아 돈이 많고 아이큐가 높은 건데, 그건 인정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살고…. 그러면 정말 빡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잉여라는 개념 자체가 ‘수동형’이다. 내가 스스로 잉여가 되기를 소망하거나 계획한 게 아니란 뜻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체제에 스카우트가 되면 언제든 변할 수 있을 걸로 생각된다. 당신도 이런 인터뷰에 나오다 보면, “당신 말 잘하고, 인물 좋더라. 우리 종편에 나와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진행자로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어쩔 건가? “가지 않을 거다.(웃음) 거부할 것이긴 한데…. 그 대목에서 손석희씨도 고민했겠지. 손석희씨도 고민한 마당에 나도 고민은 할 것 같다.” 최서윤은 그러나 “잉여 코드” 중에서 발굴된 몇몇 개인의 사례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결국 성공한다”와 같은 주류 성공신화로 포장되는 세태를 신랄히 비판했다. 어차피 잉여는 점점 늘 수밖에 없는데 그걸 개별적 돈벌이로 돌파할 수는 없다고. 최서윤은 그보다 더디고 먼 길을 꿈꾼다. “1차 산업에 뿌리를 둔 마을공동체,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텃밭을 가꾸면서 자존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 아직 그 구상은 덜 여물어 보였으나 “함께 간다”는 원칙만은 분명해 보였다. -20대가 정치적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청년유니온에 모든 잉여가 가입하는 것도 아니고, 촛불집회나 시국선언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방식의 참신하고 발랄한 시위를 개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과거의 추억에 갇혀서 ‘대학생이면 이래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현재를 사는 건데, 1세대 아이돌들의 추억팔이는 꼴사납지 않나. 달라진 시대엔 다른 방법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시국선언도 엘리트적인 운동방식이다. 명문대생들의 시국선언에 언론들이나 어른은 우쭈쭈~ 하지만 타대생들은 관심 없다. 촛불집회 때 ‘너네 왜 안 나오냐?’ 그러는데 촛불집회 이젠 지겹다. 다른 방식을 개발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냐. 이런 걸로 세대끼리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자기를 제일 불쌍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남을 가해자로 만들고 같이 있으면 피곤하고 짜증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좋겠다.” -세대적 소통이나 공감이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 참 중요한 일인데, 왜 잘 안될까. 다른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 뭐가 필요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는 되바라짐? ‘싸가지’ 없는 말일 수 있는데 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나도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외피만 다르지, 동등한 영혼과 영혼의 부딪침이라고 생각한다. 선입견 없이 백지상태에서 그 사람 자체를 알려는 노력. 만날 때마다 그 개인에게 집중하는 것.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 ‘되바라진’ 영혼을 자처하는 최서윤은 그러나 결코 무례하지 않았다. 카페를 나설 때 밤은 깊었고 좁은 골목을 훑고 지나는 겨울바람은 날카로웠다. 헤어지는 길목, 최서윤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몇 번씩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넸다. 그 미소의 따뜻함이 인간에 대한 예의로 느껴져서 나 역시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 언 손을 녹이고 백욱인이 엮은 논문선 <속물과 잉여>를 펼쳐 들었다. “잉여. 속물대열에 가담하여 속물지위를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자들 가운데 속물 되기를 유예하고 있는 존재들 … 수동적 아웃사이더이자 실업자이자 불안정노동자다. … 물론 잉여의 지속적 유예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논리와 주장이 만들어질 경우 잉여는 하나의 대항적 흐름으로 커 나갈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난 오늘 그 “가능성”의 일단을 본 것 같다. 녹취·진행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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