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5.11 20:08
수정 : 2006.05.1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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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 평화학교’ 학생들과 조진경 교사대표(왼쪽에서 네번째)가 학교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일정을 스스로 토론해 결정하는 등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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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조그만게…? 어린이 의견 표현은 그들 권리”
새터민·장애아등 학생 6명, 일과 스스로 결정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고, 어린이의 의견은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문제 및 결정 과정에 참작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어린이의 자기결정권이다. 하지만 “조그만 게…”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듯,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소홀히 취급되는 어린이 권리의 하나다. 경기 안성의 ‘아힘나 평화학교’와 스페인의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은 이 권리의 실현을 극단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학교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사례들이다.
경기 ‘아힘나 평화학교’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 평화학교’(아힘나 평화학교)는 취재 요청에 응하는 순서부터 남달랐다. 경기 안성시 삼죽면에 ‘아이들이 주체가 된 아이들의 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취재진이 조진경 교사대표에게 “학교와 학생들을 취재하고 싶다”고 연락하자 조 대표는 대뜸 “아이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는 일이니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다행히 회의에서 취재요청이 받아들여져 지난 10일 아힘나 평화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교사들이 준비한 점심을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잡곡밥과 나물 몇 가지, 학생들이 텃밭에서 기른 상추, 김치찌개를 각자 그릇에 덜어 모두 먹고 난 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그릇을 설거지하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중·고교 과정인 이 학교는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학생은 새터민, 장애아 등을 포함해 6명이다. 대부분의 일과는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대안학교 인가를 받지 못한 탓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느라 오전엔 시험 과목을 공부하지만, 오후엔 텃밭을 가꾸거나 닭을 기르거나 비디오카메라 촬영법을 배우는 등 자신들이 원하는 활동을 한다. 4월 초에는 제주도로 4·3 항쟁을 공부하러 가기도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는 한 주를 돌아보고, 다음주의 활동을 어떻게 할지 등을 정하는 자치회의 시간이다.
학생들은 지역신문인 <안성신문>의 청소년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9일과 어린이날에는 가까운 평택에서 ‘큰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대추리에 직접 가봤다. 김현철(16)군은 <안성신문>에 “우리 민족이 고통받는 것은 다른 나라로부터 억압을 받기 때문”이라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 미국이 우리 땅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썼다.
학생들은 이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임수진(14)양은 “이곳에선 누구도 공부를 하라거나, 숙제를 하라는 등의 강요를 하지 않는다”며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며 결론을 내리니 오히려 더 신나고 재밌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와 김종수 아힘나 운동본부 상임이사는 14년여의 대안교육 경험을 통해 어린이가 보호·교육의 대상이나 미성숙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김 이사는 “아이를 ‘위한다’는 단체는 많지만, 아이의 필요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어른의 시각에서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아이들은 금세 주체적인 능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성/글·사진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스페인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
어린이 시민회의 통해 공동체 운영 전세계 4만명 이곳서 시민권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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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에서 어린이들이 교육·노동·경제 등 모든 일상 문제를 결정하는 주민회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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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주 오렌세시에는 1956년 헤수스 세사르 실바 멘데스(73) 신부와 어린이 15명이 “어린이야말로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인공”이라는 신념으로 만든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가 있다. 벤포스타의 공식 명칭은 ‘벤포스타 나시온 데 무차초스’(어린이 나라 벤포스타)로, 전세계에서 온 어린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다. 50년 동안 4만여명의 어린이들이 이곳의 시민권을 획득했다.
어른들도 있지만 벤포스타의 주인은 어린이들이며, 이들은 시민으로서 권리를 갖고 공동체를 운영한다. 벤포스타는 행정구역 5곳의 시장과 부시장, 재정·보건·노동·관광부 장관으로 이뤄진 주민회의로 운영된다. 시장과 장관은 물론 어린이들이다. 실바 신부가 대통령이지만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다.
어린이 시민들은 날마다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주민회의에 참석해 토론을 하고, 중요한 일은 투표로 결정한다. 교사도 스스로 뽑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도 전체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다.
학교 수업은 물론 휴지 줍기 등 사소한 일까지 어린이들은 자신이 할 일을 선택하는데, 이런 활동의 대가로 ‘코로나’라는 벤포스타의 돈을 벌고 스스로 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벤포스타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노동이지만, 어린이들은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기 때문에 즐겁게 여기고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이나 우리나라 어린이헌장에서도 명시돼 있듯, 벤포스타의 시민은 잘 자랄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기아·전쟁·폭력 같은 나쁜 환경에 노출돼 있거나,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좋은 환경이라도 어른들이 짜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공부하고 생활하느라 아이가 누려야 할 즐거움과 권리를 향유하지 못한다. 벤포스타는 이런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권리를 누리며, 스스로 운영하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벤포스타의 어린이들을 보면 어린이들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잔소리’하는 어른이 없으며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행사한다. 이런 자발성의 힘이 벤포스타가 스페인을 넘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남아메리카로 확대되고, 어린이의 주체성과 관련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글·사진 이선영 〈어린이 나라 벤포스타를 찾아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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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이혼 부모 면접권 인정해야”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제는 이혼한 부모를 둔 자녀의 부모 면접권이다. 현재 정부는 두 차례 유엔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의 부모 면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린이가 전혀 참여하지 못한 채 이뤄진, 부모들만의 선택에 따라 어린이는 한쪽 부모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배경내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영국에선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당했을 때, 아이가 부모의 접근 제한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이혼한 부모 가운데 누구와 살지 아이가 결정할 수 없다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게라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두발 자유, 강제 보충수업 폐지를 비롯해 학교운영위원회의 학생 참가 문제도 학생·인권단체 등이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다. 민주노동당은 체벌 금지, 두발 자유, 학생회 법제화 등을 담아 ‘학생인권법’으로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열린우리당도 학생회 법제화를 명시한 개정안을 발의했고, 한나라당도 학생 대표의 학운위 참가를 뼈대로 한 법안을 준비중이다.
또 교육인적자원부는 11일 강제 이발이나 폭언 등 학생 인권 침해 실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10월까지 ‘학교내 학생인권보호 종합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정보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충분히 제공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은 문제부터 스스로 풀어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힘이 있다고 느끼며 자기존중감을 깨달아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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