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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1 16:30 수정 : 2007.03.02 17:01

우리후(五里湖), 리후(려-범려의 려-湖)라고도 한다.전설에 따르면 범려가 서시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사라진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20)

옛날에 두 사람이 아주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한 사람이 사칠은 이십칠이라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사칠은 이십팔이라고 바로 잡아주었다. 그런데 사칠이 이십칠이라고 한 사람이 자기주장을 끝끝내 굽히지 않자 다른 사람도 계속 싸우게 된 것이었다. 결국 고을 원님에게 가서 사실을 가리게 되었다. 그런데 고을 원님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사칠이 이십칠이라고 한 사람은 무죄석방하고, 사실이 이십팔이라고 한 사람에게는 곤장 수십 대를 치라고 판결을 내렸다. 나중에 곤장을 맞은 이가 이 판결에 대해 따져 물었다.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그러자 고을 원님의 답인즉, “사칠이 이십칠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멍청한 놈과 끝끝내 싸우는 사람이 더 멍청한 놈이니 널 때리지 않으면 누굴 때리겠느냐?”

문무 겸비하고 진퇴 알았던 이상적 인물 범려
패업과 부와 미인을 모두 얻어 ‘인생 삼모작’
치국(정치)으로 돈벌고 치가(경제)로 나라 다스렸다
그 둘을 관통하는 원리는 때를 잘 타는 것

예전에 중국의 한 잡지를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소화(笑話)이다. 1980년대에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중국의 저명한 작가 왕멍(王蒙)은 이 소화를 자신이 본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극찬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분석하였다.

첫째는 싸우지 않는 지혜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한 상식 문제를 두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싸운다면 바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씁쓸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건 바로 사칠이 이십팔이라고 주장하다가 도리어 매를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석궁사건’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이런 경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풍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칠이 이십칠이라고 한 자가 거꾸로 무죄로 석방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월왕 구천 도와 오나라 멸망시켜

나도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한바탕 웃었지만 나중엔 고개가 푹 숙여졌던 기억이 난다. 지나고 나면 별 것도 아닌 일에 나도 ‘목숨’을 건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경우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해야 할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최근 무죄로 판명났지만 인혁당 사건의 관련자들은 너무도 애통하게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무조건 예라고 하면서 명철보신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멀리 돌아왔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던 범려(范?)라는 사람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범려는 이런 험난한 삶을 잘 헤져나간 인생의 달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중국 사대부(지식인)의 이상이 구현된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다시피 그는 세 번 변신해서 모두 영예를 얻었다. 평생 한 가지 일에서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는 제 2, 제 3의 인생에서 모두 승리했다. 맨 처음 오월 지방에 패왕의 기운이 있는 천상(天象)을 보고 월나라로 들어가 월왕 구천을 도와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오왕 부차에게 당했던 ‘회계의 치욕’을 갚았으니 그는 유능한 정치가이며 병법에 능한 군사가였다.


그리고는 공성신퇴(功成身退). 오랜 고생 끝에 이룩한 승리를 거머쥔 순간에 “월왕의 관상은 턱이 길고 입술 언저리가 새처럼 뾰족하다. 이런 인물은 고생을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고 하면서 과감하게 그의 곁을 떠난다. 제나라로 가서 이름을 치이자피(소가죽이라는 뜻)로 바꾸고 장사를 해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다. 그러나 유명해지자 대부분의 재산을 친구들과 주변에 다 나눠주고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는 사통팔달한 도(陶)라는 곳으로 가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다시 이름을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그는 ‘경제’도 잘 아는 대상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분명한 상식 두고 싸우면 대거리하는 사람이 바보
정답이 되레 매맞기 십상 그렇다고 무조건 맞장구쳐야 하나
인생문제 어렵도다

주군인 구천을 잘 모셔 패업을 이룩하게 했으니 유가적 이상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적절한 때에 물러나와 토사구팽당하지 않았으며, 명성에 구애됨이 없이 은거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큰돈을 벌어 유유자적하게 살았으니 도가적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야사에 따르면 월나라를 떠날 때 오나라에 미인계로 보내졌던 절세미인 서시와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만당의 시인 두목(杜牧)도 “서시가 고소(姑蘇)에서 내려와, 배 한 척이 치이(범려)를 따르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범려는 커다란 공적도 이루었고 돈도 벌었으며 사랑하는 미인까지 얻은 인물이었으니 신파무협의 ‘천자’ 진용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그를 거론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우시(無錫)에 있는 리위엔, 범려의 정원이라는 말이다. 사진 왼쪽 아래에 있는 작은 조각상은 서시의 조각상이다.
그에게는 <노자>나 <장자>에 나오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과 유가의 시조 공자의 돈 많은 제자였던 자공의 면모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사실 지난 세기 말에 궈디엔(郭店)에서 발굴된 출토문헌에 따르면 유가와 도가의 사상적 거리가 후세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멀지 않았다. 아무튼 한의 장량과 촉의 제갈량으로 이어지는 인간형, 즉 문무를 겸비하고 진퇴를 알았던 이상적 인물의 전형이 바로 범려였다.

그렇다면 범려가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성공할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사기>의 ‘화식열전’에 보면 범려가 “계연의 계책이 일곱 가지에 있었는데 월나라가 그 중 다섯 가지를 써서 뜻을 이루었으니 이제 나머지 두 계책을 나의 집안에 써보리라”고 말이 나온다. 그리하여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결국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여기서 우리는 치국과 치가(治家)가 연결되고 있으며, 정치와 경제가 연결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하는 원리로 경제를 해서 돈을 벌었고 치국의 원리로 치가해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 바로 범려다. 요즘 ‘경제를 아는 대통령’을 두고 말들이 많지만 경제는 이처럼 원래 경세제민(經世濟民), 다시 말하면 정치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가 이코노미의 번역어로 둔갑되어 다시 수입된 말이다.

정치·경제는 분리될 수 없어

범려에게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었다. 그런데 양자를 관통하는 원리는 때를 아는 것이었다. 때를 알았기에 전쟁을 해서 승리했고, 또 돈도 벌었다. 그리고 정확한 때에 물러날 수 있었다. 범려의 스승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계연이 거대한 부를 이룩한 기본적 원리도 물건이 쌀 때 사서 잘 쌓아두면서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비싸지기 시작할 때 아낌없이 팔아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재화와 돈이 물처럼 잘 흐르게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때를 잘 아는 것(知時)이었다.

‘화식열전’에 거론된 또 다른 인물인 백규(白圭)도 때의 변화를 즐겨 관찰했다(樂觀時變)고 한다. 또한 “나는 이윤과 여상(강태공)의 계책, 손무와 오기의 용병술,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던) 상앙의 변법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그러므로 임기응변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자,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용기가 없는 자, (적절히) 주고 받을 줄 아는 인(仁)이 없는 자, 지킬 것을 지킬 힘이 없는 자들이 내 방법을 배우려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사하는 원리를 설파하는 것인지 정치의 비결을 말하는 것인지 병법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병법 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는 것인 중국사상의 하나의 특징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손자와 노자 같은 제가백가의 사상이 전쟁으로 점철된 시대에 탄생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며칠 전에(1월 24일) <와신상담>이라는, 중국 중앙텔레비젼(CCTV-8)에서 제작 방영한 드라마(40회)가 막을 내렸다고 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인 대작인데다가 <영웅>이라는 영화에서 진시황 역할을 담당했던 제왕 전문 배우 천다오밍(陳道明)이 월왕 구천을 분하는 등 인기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시청률은 기대에 그다지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무엇보다 범려(賈一平이 분함)를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했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그러나 <와신상담>의 주인공은 당연히 월왕 구천일 것이다. 그는 왕이었다가 한순간에 노예보다 못한 처지에 떨어져 보통 인간이라면 결코 참을 수 없는 굴욕을 참아내고 와신상담한지 22년 만에 마침내 복수에 성공한 특이한 임금이었다.

직접 보지 못했으니 뭐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이러한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혹시 빈부의 양극화가 날로 심해가는 중국에서 월왕 구천과 같은 초인적인 인내력을 갖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반증해주는 것은 아닐까. 잘못된 상상이길 바랄 뿐이다.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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