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천변의 억새는 내게 좋은 풍향계다. 억새가 꺾인 각도를 보고 풍속과 풍향을 판단한다. 사진의 억새 정도면 풍속 2, 3m/s, 시속으로 환산하면 7, 8킬로미터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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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고 교통수단이 운행 안하는 법 있나?
우비를 입었다, 흙 범벅 물 범벅 망가졌다
우중 라이딩은 서울이라는 큰 놀이터에서 노는 것 자전거 출퇴근하기 전까지 나는 일기예보가 이렇게 안 맞는지 몰랐다. 기상청을 탓하려 고 이 글을 쓰는 거 절대 아니다. 사실 일기예보에 이렇게 신경쓰게 될 줄 몰랐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전에도 바람이 불었고 눈과 비는 내렸고 고, 저기압이 교차했을 테고 일기예보관은 때로 정확하지 않은 예보를 날렸겠지만 내게는 큰 상관 없는 일이었다. 자전거 타기는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이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과 같은 자연스런 몸짓이다. 하지만 본질은 도구를 이용한 공간이동. 사자의 이빨이나 곰의 덩치, 늑대의 날렵함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인간이 생태계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도구의 도움이 필요했다. 레슬링 경기할 때보면 링 위에 병따개나 송곳 같은 것을 숨겨 들어온 반칙왕과 같다고 보면 된다. 너무 반칙을 심하게 하다 보니 사자, 호랑이를 죽이는 것을 넘어서 링조차 파괴하는 자학적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전거는 자연에 손길을 다시 내밀어 친구가 되자고 하는 도구다. 그 말은 바람 불면 같이 흔들리고 비 오면 대지와 함께 젖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엔 머뭇거렸다. 비 오는 날에는 얌전하게 지하철 타고 통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틀 연속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되자 몸이 불편해서 견디지 못했다. 10시간 이상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야 했던 미국 횡단 여행을 기억해냈다(놀라운 일이다. 불과 일년 전의 일인데 기억을 더듬어야 하다니.) 무엇보다 자전거가 교통수단이라고 한다면 비가 와서 운행 못하는 교통수단이 있을 수 있는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우비를 입었다. 2006년 4월10일이었다. 황사를 씻어내리는 비를 맞고 질주했다. 한강변에 사람이 없어 거칠 게 없다. 장충동으로 넘어와서부터 빗줄기가 굵어져 웅덩이에 물이 찰랑찰랑 고였다. 자동차들이 물을 밟고 가면서 뿌리는 물보라를 그대로 맞았다. 옷이 흙 범벅이다. 이게 노는 거다. 일상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는 것이다. 망가지는 것이다. 출근길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큰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여성 경찰관도 이날은 노란 우비를 입고 있었다. 마치 무채화 속의 유채꽃 같다. 우중 라이딩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오후에는 날이 환하게 개는 것. 젖은 우비를 벗고 마른 옷으로 퇴근할 수 있다. 이날 말끔하게 황사가 가신 하늘을 보며 집으로 달리는 자연의 축복을 입었다. 우중 라이딩이 위험한 게 사실이다. 시계는 줄어드는데 제동거리는 늘어나니 평소보다 네 배쯤 주의 집중이 필요하다. 길가에 뾰족한 것들이 더 뾰족하게 튀어나오고 움푹 패인 곳은 더욱 깊게 패여 고장도 잘 난다. 자전거가 빗물에 녹슬 수 있기 때문에 우중 라이딩을 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부정적인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지 않아 녹슬 내 몸에 더 신경 쓰는 편이다. 그럼 비가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일 텐데 왜 일기예보에 민감해지느냐면 출발 상황에서는 날씨를 판단하기 어려운 날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6월29일의 일이다. 퇴근할 때 남쪽 하늘에 시커먼 구름을 보면서 설마 비가 오랴 싶었는데 퇴계로 5가에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이 잽싸게 우비를 입었는데 만약 이 때 입지 않았다면 바로 쫄딱 젖을 뻔했다. 비는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동호대교를 넘어서 한강을 돌아 탄천까지 갔을 때는 이미 자전거 도로 일부가 침수됐다. 겁이 더럭 났다. 비는 수직이나 빗금으로 내리지 않고 화살처럼 수평으로 날아와 눈에 꽂혔다. 눈알이 빨개졌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방법은 전날 9시 뉴스를 보거나 아침에 먼저 일어난 아내에게 날씨를 물어보는 것이다. 아내는 한번도 날씨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해본 적이 없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면 폭우가 올 듯이, 황사가 끼일 것 같다면 하늘이 샛노랗다고 말하는 식이다. 심지어는 부엌에 난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내 등뒤로 자신의 과장된 예보를 그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자전거로 출퇴근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거다. 그래서 조간신문의 날씨란을 최종 판단자료로 삼는데 이게 번번이 빗나가는 걸 알게 된 것.
남산 중턱 용산동을 가득 메운 주택들과 교회. 80년대에는 가장 전형적인 서울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들에 밀려나고 있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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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바람은 제멋대로다
라이더는 갈대보다 더 흔들리는 존재
꺾인 각도로 풍속·풍향 가늠
기상청 예상보다 낫다 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에스키모한테 눈에 관한 단어들이 많듯 다습한 우리나라의 기후를 반영해 비에 관한 단어만 1백 가지가 넘는다. 빗방울의 굵기에 따라 보면 가는 쪽으로는 안개비, 는개, 이슬비(보슬비), 가랑비가 있고 세찬 쪽으로는 억수, 장대비, 작달비 등이 있다. 우비를 입고 라이딩을 하려면 최소한 이슬비급 이상의 굵은 비가 내려서 몸을 식혀줘야 한다. 안 그러면 속에서 흘리는 땀의 양이 옷에 묻는 빗물보다 더 많다. 꼭 비를 안 맞아도 기분 좋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비와 관련한 속담 한 편은 여름 비는 소 잔등을 가른다는 말. 비가 왔는데 소의 이쪽 잔등은 젖었는데 저쪽 은 말짱했다는 얘기. 여름 소니기는 국지적이라는 뜻이다. 비를 한 방울도 안 맞고 퇴근했는데 집 동네에는 세찬 비가 지나갔을 경우 괜히 기분이 좋다. 직장과 집은 불과 22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한 여름에는 일기가 딴판일 때가 있다. 폭우·대설·강풍이 불지라도… 그래서 기상청의 사정이 이해가 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좁은 계곡과 산맥, 강들이 즐비한 한반도의 기상을 관측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변화가 심한 기상에 대해서는 더 관측하기 어려울 거고 한번 틀릴 경우 훨씬 더 큰 불신을 사게 된다. 그걸 요약해서 ‘황호태대’라고 한다. 황사, 집중호우, 태풍, 대설. 이 4가지만 잘 관리해도 별탈 없이 넘어가는데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비 다음에 내가 눈여겨보는 바람의 예보만 해도 그렇다.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여름에는 남동풍, 겨울에는 북서풍의 계절풍이 불어야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겨울에도 남동풍이 불고 여름에도 북서풍이 분다. 아니면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맞바람만 불거나. 그것은 라이더들이 갈대보다 더 바람에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갈대나 억새풀이 전혀 미동하지 않는데 우리는 바람의 저항을 느낀다. 더 민감하다. 나는 탄천변의 억새풀이 바람에 꺾이는 것을 보고 풍속을 짐작하곤 하는데 억새풀이 10도 정도 흔들리면 시속 7, 8킬로미터의 바람이 분다고 가정한다. 억새풀이 60도 정도 흔들리면 마구 흔들리는 것이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IRA(아일랜드공화군) 독립투사들이 매복한 보리밭에서 보리 잎들이 흔들리면서 투사들의 얼굴을 스치는 각도다. 시속 15킬로미터 안팎이라고 보면 된다. 시속 5킬로미터 이하의 풍속이라면 억새풀은 끄떡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전거의 속도는 크게 영향을 받는다. 억새풀들은 보통 전에 불었던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마치 바람의 화석처럼. 10월23일 나는 이 억새풀이 고개를 남동쪽으로 숙이고 있어 이제 겨울이 시작됐다고 판단한 적이 있었다. 전날 밤 북서풍이 불었고 겨울을 재촉하는 찬비가 내렸다. 비행기가 기수를 돌린 것과 같은 극적인 사건으로까지 여겼다. 지금부터는 북서풍이겠지 하는 예단이 틀린 것으로 밝혀지는 데는 불과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바람은 제멋대로다. 내가 최근에 경험한 가장 센 바람은 12월28일 밤이었다. 분명 억새풀이 90도 이상 흔들렸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였을 것 같다. 탄천변 서울 공항 부근의 벌판을 지나가는데 앞 기어를 2단으로 내리고 뒤 기어를 3단, 4단으로 내려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자전거는 휘청거리고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집에 돌아와 세면 거울을 보니 순전히 바람만으로 눈알이 빨개졌다. 분명 태풍의 속도인 초속 17미터(시속 61킬로미터)는 됐을 거라고 생각해 기록을 찾아보니 고작 초속 4.6미터. 시속으로 환산하면 불과 16.56킬로미터다. 그날 평균 풍속이니까 이것보다는 강했겠지만 그래도 태풍급에는 미치지 못한다.
홍은택/〈아메리카 자전거 여행〉〈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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