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스타] 농구 챔피언 오른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
소리를 어찌나 질렀는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쉰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이상범(43)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 감독은 헛바람이 새나오는 입으로 “살다보니 나한테도 이런 순간이 다 있네요”라며 꿈꾸는 듯 말했다.
6일 정규 1위 동부를 4승2패로 꺾고 2011~2012 프로농구 챔피언에 오른 순간, 이 감독은 복받치는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팀의 전신인 에스비에스(SBS) 창단 멤버로 1992년 입단한 뒤 20년째 선수, 코치, 감독을 했지만 늘 음지였다. 만년 중하위권 팀으로 챔피언은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당당히 ‘챔피언전 우승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자꾸만 힘들었던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팬들 눈이 부담스러워서 가족 데리고 안양 시내에서 쇼핑도 못해봤어요. 우승 순간 딸아이가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줬는데 짠하더라구요.”
선수 다독이는 ‘허허 리더십’만년 하위팀, 패기 넘치게 해
막강 동부 예상밖 침몰시켜
“노장들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2008~2009 시즌 감독대행으로 시작한 지도자의 길은 험난했다. 2010년 정식 감독이 됐지만 두 시즌 성적은 8, 9위. 선수들은 의기소침했고 “물러나라”는 주변의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구단은 이 감독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 이 감독은 드래프트와 영입으로 전력을 다진 뒤 챔피언 대박을 터뜨렸다. 이 감독의 우직함과 ‘허허 리더십’의 힘이 가장 컸다. 선수를 몰아치는 기관차형이 아니라, 뒤에서 다독거리면서 함께 간다. 사소한 실수가 나와도 ‘허허’, 위기에 놓여도 ‘허허’하며 여유를 찾는다. 이런 낙천적 분위기 때문에 선수들은 큰 점수 차로 뒤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챔피언전 6차전 3쿼터에 동부한테 17점 차로 뒤졌지만, 4쿼터에 판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인삼공사 선수들은 젊고 패기가 넘친다. 너나 할 것 없이 알아서 열심히 뛴다. 이 감독은 “사람들은 물러터졌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지더라도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호통만 치는 게 카리스마는 아닐 것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양보 못해요”라고 했다. 거리감 없는 소통과 솔직함을 통해 형 같은 감독과 선수 사이에 끈끈한 우애가 만들어졌다. “선수들에게 무엇이든 모르면 물어보라고 얘기하고, 나도 모르는 게 있으면 선수들에게 물어봅니다.” 오후 팀 훈련이 끝나도 최고참인 김성철(37), 은희석(36) 등은 저녁 먹고 다시 야간 코트에 나갈 정도다. 이런 팀 분위기가 챔피언을 만든다. 이 감독은 “성철이와 희석이가 없었다면 이런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며 두 노장 선수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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