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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8 20:28 수정 : 2012.11.20 10:26

[별별 스타] 농구 챔피언 오른 이상범 인삼공사 감독

소리를 어찌나 질렀는지 이틀이 지났는데도 쉰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이상범(43) 안양 케이지시(KGC)인삼공사 감독은 헛바람이 새나오는 입으로 “살다보니 나한테도 이런 순간이 다 있네요”라며 꿈꾸는 듯 말했다.

6일 정규 1위 동부를 4승2패로 꺾고 2011~2012 프로농구 챔피언에 오른 순간, 이 감독은 복받치는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팀의 전신인 에스비에스(SBS) 창단 멤버로 1992년 입단한 뒤 20년째 선수, 코치, 감독을 했지만 늘 음지였다. 만년 중하위권 팀으로 챔피언은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당당히 ‘챔피언전 우승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만 “자꾸만 힘들었던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팬들 눈이 부담스러워서 가족 데리고 안양 시내에서 쇼핑도 못해봤어요. 우승 순간 딸아이가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줬는데 짠하더라구요.”

선수 다독이는 ‘허허 리더십’
만년 하위팀, 패기 넘치게 해
막강 동부 예상밖 침몰시켜
“노장들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2008~2009 시즌 감독대행으로 시작한 지도자의 길은 험난했다. 2010년 정식 감독이 됐지만 두 시즌 성적은 8, 9위. 선수들은 의기소침했고 “물러나라”는 주변의 비난도 있었다. 그러나 구단은 이 감독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 이 감독은 드래프트와 영입으로 전력을 다진 뒤 챔피언 대박을 터뜨렸다.

이 감독의 우직함과 ‘허허 리더십’의 힘이 가장 컸다. 선수를 몰아치는 기관차형이 아니라, 뒤에서 다독거리면서 함께 간다. 사소한 실수가 나와도 ‘허허’, 위기에 놓여도 ‘허허’하며 여유를 찾는다. 이런 낙천적 분위기 때문에 선수들은 큰 점수 차로 뒤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챔피언전 6차전 3쿼터에 동부한테 17점 차로 뒤졌지만, 4쿼터에 판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인삼공사 선수들은 젊고 패기가 넘친다. 너나 할 것 없이 알아서 열심히 뛴다. 이 감독은 “사람들은 물러터졌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지더라도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호통만 치는 게 카리스마는 아닐 것입니다. 이 부분만큼은 양보 못해요”라고 했다.

거리감 없는 소통과 솔직함을 통해 형 같은 감독과 선수 사이에 끈끈한 우애가 만들어졌다. “선수들에게 무엇이든 모르면 물어보라고 얘기하고, 나도 모르는 게 있으면 선수들에게 물어봅니다.” 오후 팀 훈련이 끝나도 최고참인 김성철(37), 은희석(36) 등은 저녁 먹고 다시 야간 코트에 나갈 정도다. 이런 팀 분위기가 챔피언을 만든다.

이 감독은 “성철이와 희석이가 없었다면 이런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며 두 노장 선수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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