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20 20:10
수정 : 2012.11.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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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 릭 잭맨(33·안양 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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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스타 아이스하키 안양 한라 ‘NHL 출신’ 릭 잭맨
스탠리컵 우승 주전 멤버
한라 삼고초려 받아 입단
보디체크로 3명 기절 ‘괴력’
수비 넘어 공격 가담 변신도
“한국음식
얼음판을 누비며 다져진 근육질의 거구(188㎝·100㎏). 짧게 친 머리에 팔뚝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신이 가득했다. 만약 인적 드문 뒷골목에서 마주쳤다면 분명 공포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직한 풍채였다. 저 몸으로 빙판 위에서 돌진해 가속을 붙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상대 공격수를 온몸으로 저지하는 ‘보디체크’는 가히 살인적이다. 위력을 맛본 라이벌팀 하이원 선수들조차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그만큼 외모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프로 16년차이지만, 국내 무대는 ‘새내기’인 수비수 릭 잭맨(33·안양 한라)이 최근 막을 올린 2011~2012 한·중·일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에서 최고의 화제인물로 떠올랐다. 17일 하이원과의 개막전이 열린 경기도 안양 빙상장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주전 출신을 보기 위해 정원(1350명)을 훌쩍 넘긴 1776명의 관중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주말 첫 실전을 치른 그를 20일 안양 빙상장에서 만났다. 첫인사로 “미스터 보디체크!”라고 하자, 차가운 듯한 외모는 환하게 빛나며 순진남으로 돌변했다.
“스피드가 생각보다 빨랐다. 선수들의 투지도 대단했고 관중들 열기도 뜨거워서 경기 내내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한국 무대 데뷔 두 경기 승리 소감에 대한 잭맨의 평가다. 아시아리그라고 얕잡아보던 생각은 오산이었다는 뉘앙스다. 하긴 세계 최강 캐나다 대표팀에서 뛰었던 잭맨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1996년 댈러스 스타스에서 엔에이치엘에 데뷔해 피츠버그 펭귄스, 애너하임 마이티덕스 등을 거치며 231경기 출전, 19골58도움을 기록했다. 애너하임 마이티덕스가 2007년 스탠리컵(챔피언결정전)을 차지할 때는 주전으로 뛰었다. 그러나 아시아 선수 특유의 기동성과 조직력, 만만치 않은 관중 열기에 일단 고개를 내렸다.
그러나 스탠리컵 얘기가 나오자 달라졌다. “스탠리컵은 전세계 아이스하키인들의 꿈이다. 그 꿈을 이뤘다는 것이 영광이다. 지금도 우승 당시의 환희가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엔에이치엘의 문화도 들려줬다. “선수 간 충돌이 경기의 일부로 여겨진다. 상대 선수와 숱하게 싸웠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면 라커룸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웃으며 넘겼다.” 아시아무대에선 싸움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할 수도 있다. 잭맨은 “그래도 혹시 모른다. 상대가 먼저 주먹을 날리면 그냥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껄껄 웃었다. 엔에이치엘에서는 뭣 때문에 싸움을 했느냐고 묻자 “별것 있겠냐. 팀 사기도 있고 그냥 확 밀어붙이는 거지”라고 답했다.
잭맨은 지난해 슬로바키아리그에서 활약하면서 보디체크로 3명의 선수를 실신시켰다. 당시 현지 언론이 붙인 별명이 ‘인간 탱크’였다. 잭맨의 보디체크 때 받는 충격은 얼마나 될까. 잭맨은 “자동차 엔진의 순간 출력이 좋아야 스피드가 금세 올라가듯이 보디체크의 출력은 순간적 근육 파워에서 나온다”고 했다. 캐나다에서는 8~9살 때부터 보디체크 연습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러다 보니 습관처럼 거친 플레이가 나오고 요령도 생긴다고 했다.
물론 하이원과의 개막 2연전에선 잭맨 특유의 초강력 보디체크는 나오지 않았다. “매경기 보디체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 공격수의 위치, 경기 흐름 등 여러가지 상황이 맞아야 가능하다.” 수비의 달인 잭맨은 한라에 입단한 뒤 한국형 아이스하키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령탑은 유연한 플레이와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요구한다. 그는 “기회가 찾아오면 슛을 자주 쏘려고 한다. 공격적 플레이에도 더 신경을 쓸 계획”이라고 했다. 18일 하이원전에서는 1골2도움 활약으로 팀의 7-4 승리를 이끌었다.
잭맨은 아직도 엔에이치엘에서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스하키 불모지인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처음엔 몇번이고 거절을 했지만 내 가치를 인정해주는 한라 쪽의 진심이 보였다. 아시아무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며 한라쪽의 삼고초려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점차 확산되는 코리아 브랜드도 한몫했다. “아내와 딸이 한국에 오고 싶어했다. 한국 음식이 맛있어서 요즘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금세 또 들어가고 싶어진다. 삼겹살이 최고다.”
안양/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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