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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9 09:53 수정 : 2018.04.29 17:28

중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마주보고 있는 남한과 북한의 GP. 오른쪽 남한 GP는 얼룩무늬의 성채 같은 모습이다. 왼쪽 끝 북한 GP는 봉우리 위에 작은 초소만 보인다. 하지만 그아래 지하에 시설이 구축돼있다. 서재철 제공

[토요판] 특집
비무장지대 GP를 말한다

‘통문’ 지나면 외길 따라 지피로
남한 지피는 견고한 성채 같은 모습
북은 작은 초소 아래 지하에 시설

남북한 모두 병력·중화기 배치해
우발적 충돌 일어날 가능성 높아
정전협정 위반 중무장 해소해야

중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마주보고 있는 남한과 북한의 GP. 오른쪽 남한 GP는 얼룩무늬의 성채 같은 모습이다. 왼쪽 끝 북한 GP는 봉우리 위에 작은 초소만 보인다. 하지만 그아래 지하에 시설이 구축돼있다. 서재철 제공

4·27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는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평화지대화’가 포함됐다. 비무장지대는 이름과 달리 남북한의 병력 6천여명이 전방초소(GP) 200여곳 안에서 기관총, 박격포 등 중화기로 무장하고 상주하고 있다. 언제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피를 철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직접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지피 현황을 조사해온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지피의 실체와 지피 철수의 의미를 말한다.

길은 하나뿐이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하구부터 강원도 고성군 동해안까지 248km 남방한계선의 지오피(GOP·일반전초) 철책선에서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는 길은 모두 정해져 있다. 비무장지대로 진입하면 목적지는 지피(GP·전방초소) 뿐이다.

지피는 출입문부터 외길을 따라 들어간다. 지오피 철책선 중간 중간에 평소에는 철책처럼 잠궈 두지만, 진입할 때는 문을 열 수 있는 ‘통문’이 있다. 이 문을 열어야 비무장지대의 지피로 들어간다. 통문은 비무장지대 내부에 있는 지피와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곳이다. 통문을 통과하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통문은 트럭 한대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크기다. 평소에는 겹겹의 자물쇠로 잠가둔다.

비무장지대 통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한명이 들어가든, 열 명이 들어가든 반드시 실무장을 한 경호병력이 따라 붙는다. 비무장지대 수색정찰과 지피 근무 목적 이외의 모든 출입자에게 적용된다. 군인이라도 별도의 경호병력이 동행해야 한다. 비무장지대 작전 규정에 따른 것이다.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방탄모와 방탄조끼를 착용해야 한다.

경호병력은 주로 수색대에서 담당한다. 20대 초중반의 제법 긴장한 눈빛과 엄격한 자세의 병사들의 인솔을 받는다. 경호병사들의 방탄조끼 앞쪽 가슴에는 두발의 수류탄이 달려 있다. 소총에 삽입하는 탄창에도 금빛 실탄이 꽉 차 있다. 이 자동화기와 수류탄이 비무장지대의 실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비무장지대는 남방한계선 일대의 GOP 철책선 곳곳에 있는 통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실무장한 민정경찰(GP 에 근무하는 한국군)이 트럭을 타고 들어가고 있다. 서재철 제공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통문 앞에 대기시켜 놓은 방탄조끼와 방탄헬멧.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이를 착용해야 한다. 서재철 제공
대부분 GP 산봉우리에 위치

지피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와 과정도 엄격하다. 국군 기무사의 신원조회를 거친 후 유엔사의 출입증이 발급돼야 들어갈 수 있다. 이등병부터 사단장까지 동일하다.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이 방문해도 유엔사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전시와 대형 총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출입증 없이 들어갈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출입 허가권은 유엔군 사령부에게 있다. 한국 정부는 의견은 제시하지만 결정권은 없다. 비무장지대의 물리적 현장 관리는 국군이 하지만 출입하는 모든 인원과 병력에 대한 통제권은 유엔사 소관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유엔사이기 때문이다. 지피가 유엔사의 시설이라는 의미다. 실제 지피는 유엔사 관할구역이며 주변 구역, 즉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대한 배타적 결정권도 유엔사가 지니고 있다.

지피가 대한민국의 주권 지역이 아닌 이유는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 남한이 빠졌기 때문이다. 1953년 이승만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북한은 중국과 함께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1958년 한반도에서 철군하면서 정전협정에 관한 사항을 북한에게 위임했다. 그래서 평화협정의 체결의 당사자도 북한과 미국이 되는 것이다.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려면 유엔군사령부가 발급한 출입증이 있어야 한다. 한쪽은 영어 다른쪽은 한글로 쓰여있다. 전투개시와 대형 총기사고 때를 제외하고는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모든 출입자는 이 증서가 있어야 한다. 서재철 제공
비무장지대 내부는 대부분 자연과 산림이다. 인간의 손길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지피와 지피 진입용 도로뿐이다. 비무장지대에서는 도보로 이동할 수 없다. 전방사단 수색대가 비무장지대 내부 정찰을 위해 들어가는 경우에만 도보로 이동한다. 제설작업, 산사태로 진출입도로가 끊어진 경우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군사 목적의 군인들도 차량으로 이동한다. 비무장지대에는 군인들도 출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민간인이 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들어가는 민간인은 대부분 지피 시설 공사와 관련된 경우다.

군 당국은 2005년 ‘530지피 사건’ 이후 지피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진출입도로부터 정비했다. 장병들의 생필품과 군수물자의 원활한 보급을 위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지피가 산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어 진출입 자체가 어려웠다. 2006년부터 포장공사가 시작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지피까지 콘크리트 포장이 돼있다. 동부전선 지피 중에는 지오피 철책선에서 직선거리로는 1km지만 실제지형의 거리는 2~3km인 경우도 있다. 1960년대에 조성돼 험산준령을 따라 파고든 길이다.

지피는 먼발치에서도 알아 볼 수 있다. 외형 자체가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듯한 모습이다. 철옹성 같은 견고한 구조물에 긴장감이 감돈다. 3중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대형 콘크리트 건물이다. 50~100cm 두께의 방어진지로 둘러싸인 작은 학교 운동장 절반 정도 크기다. 콘크리트 블록의 대형 벙커 같은 시설이다. 실제 지피는 웬만한 대포에도 버틸 정도로 견고하다. 지피 내부의 침실, 식당, 취사장, 상황실 등 모든 공간 구조는 구불구불 미로에 가까운 폐쇄형이다. 보통 지하 2층 깊이로 들어가 있다. 국군(남한) 지피는 1950년대부터 설치됐다. 당시에는 방어진지로 둘러싸인 막사 형태였다. 보통의 작은 군부대 건물에 울타리만 두껍게 흙으로 다져 참호나 진지처럼 구축했다. 현재의 모습대로 구축된 것은 1983부터였다. 비무장지대 방어시설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롭게 지었다.

‘530GP 사건’으로 실상 알려져

지피는 비무장지대 안에 떠있는 섬과도 같은 곳이다. 지피는 한국전쟁 때의 불발탄과 미확인지뢰지대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해진 진출입로와 인근에 연결된 수색로를 빼놓고는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위험지대다. 지피는 민간인은 물론이고 군인들도 근무 경험이 없으면 구조나 생활문화 등을 알기 어렵다. 지피에 관한 내용은 직업군인들 사이에서도 일부만 경험하고 이해하고 있다. 사병들은 물론이고 장교나 부사관도 근무해 보지 않으면 짐작이 어려운 곳이다.

지피에는 30여 남짓한 장병들이 근무한다. 2~3개월에 한 번씩 부대교체를 한다. 적어도 1년에 5천명 이상 장병들이 바로 교전으로 돌입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다. 거의 전투 대기에 준하는 상황이다.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고립돼 있는 탓에 지피의 병사들과 간부 모두 심리적 긴장감이 팽팽하다. 그래서 지피는 보급품이나 군수지원에서 최우선이다. 에어컨부터 헬스기구까지 지오피 철책선보다 먼저 설치된다.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장병들은 반토막 농구대에서 농구를 즐기거나 간이 족구를 한다. 공간이 좁아서 온전하게 족구장을 확보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중부전선의 남한GP. 대부분의 GP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고지나 봉우리에 들어서 있다. 지형의 특성에 따라 규모는 차이가 있다. 대부분 콘크리트 구조물에 감시탑이 2~4개 서있는 구조다. 항상 유엔기와 태극기를 함께 걸어놓는다. 서재철 제공
남한 지피는 비무장지대를 따라 이어진 철책선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비무장지대 전망대 관광지 중 몇 군데에서는 지피가 보인다. 노출된 고지나 봉우리 등에 솟아난 듯 콘크리트 구조물이 성채처럼 드러나 있다. 항상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반면 북한 지피는 구분이 어렵다. 형태도 남한 지피와 많이 다르다. 북한지피는 봉우리나 언덕 위에 초소 하나 달랑 있는 경우가 흔하다. 크기도 남한의 아파트 경비초소 정도로 작다. 간혹 콘크리트 구조물로 되어 있는 경우도 2~5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초소 하나만 외부로 드러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소의 모양도 인민군 사단마다 다양하다. 과거 통독 이전 동서독의 장벽에 설치된 동독군의 2층짜리 사각박스형 초소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초소 아래 지하에 견고하게 지피 시설이 구축되어 있다. 막사를 비롯해 무기와 장비도 다 지하에 배치되어 있다. 생활도 대부분 지하에서 한다. 1950년대부터 지하 벙커로 구축됐다고 한다. 지금도 견고함에선 국군 지피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군 지피보다 지하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있고, 공간도 국군 지피보다 좁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부전선의 남한GP. 대부분의 GP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고지나 봉우리에 들어서 있다. 지형의 특성에 따라 규모는 차이가 있다. 대부분 콘크리트 구조물에 감시탑이 2~4개 서있는 구조다. 항상 유엔기와 태극기를 함께 걸어놓는다. 서재철 제공
인민군의 지피는 민경대라는 특수부대원들이 담당한다. 북한 체제에 충성도가 높은, 당과 군에서 요직을 차지하는 집안의 자식들이 주로 배치된다고 한다. 소위 출신성분이 좋아야 올 수 있는 보직이다. 그래서 인민군은 지피 근무를 마치고 제대하면 대학과 취업에서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인민군의 비무장지대 근무는 지피도 철책선도 힘겹다. 군복무 기간이 10년인데 공식적인 휴가도 없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비무장지대 지피나 북방한계선 철책선에서 10년을 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 지피의 관측 장비에서 확인되는 북한 지피의 인민군 병사들은 근무 기강이 다소 헐렁하다고 한다. 초소에서 졸거나 담배를 피우고, 따듯한 봄에는 초소 근처로 나와 앉아서 있는 모습이 수시로 보인다고 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비무장지대에는 남한 지피가 60개 가량, 북한 지피가 160개 가량 있다. 병력은 국군은 2000명 이하, 인민군은 4000명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지피는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군사시설이다.

북한 GP와 인민군. 북한 GP는 지상에는 다양한 모양의 작은 초소만 보이고, 대부분 시설은 지하에 있다. 서재철 제공
지피는 남과 북 모두 군사분계선에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적이 넘어오는지 감시하고 관찰’하기 위해서다. 또한 상대 지피의 움직임과 동향을 파악하는 목적도 있다. 그래서 군사적으로 조망이 좋은 곳이면 군사분계선 가까운 위치라도 지피를 설치했다. 북한 지피의 경우는 군사분계선 몇십미터 거리에 설치된 곳도 있다. 요즈음은 감시 장비가 좋기 때문에 맞은편 지피에서 뭘 하는지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남북은 모두 지피에 상당한 무장력을 배치해 놓았다. 애초 정전협정에서는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민사행정 및 구제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한정했다. 또한 ‘출입자는 양쪽이 각각 1천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민사행정경찰(=민정경찰. 비무장지대안에 들어가는 군인들은 모두 ‘민정경찰’이라고 부름)의 무장도 반자동소총으로 제한했다. 이는 ‘비무장지대 안쪽에서는 권총과 연발사격이 되지 않는 단발사격만 가능한 보총만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대규모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자동소총을 소지하면 교전하는 과정에서 서로 피해가 증폭되고 공격이 쉬워진다.

인민군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950년대 후반부터 비무장지대 안에 근무하는 ‘민경대대’ 병사에게 소련제 AK자동소총을 지급했다. 국군도 1960년대 말부터 M-16자동소총으로 무장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으로부터 지급받은 것을 동부전선 비무장지대부터 배치한 것이다. 1970년대 냉전이 깊어지면서 남북은 지피에 자동소총을 완전 보급했다. 뿐만 아니라 수류탄과 크레모아(격발식수류탄), 기관포와 박격포 등 중화기를 배치했다. 인민군은 82mm비반충포, 박격포 등을 배치했다. 국군도 K-6중기관총, K-4자동유탄발사기 등을 배치했다. 이런 상황은 1970년대 이후에도 계속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남북 모두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인은 거의 모르던 지피의 실체를 세상에 알려준 것은 ‘530지피 사건’이다. 2005년 6월 19일, 서부전선 연천 비무장지대 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530지피의 김동민 일병이 저지른 사건이다. 김일병이 같이 지피근무하던 동료들을 소총으로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무참히 살해했다. 530지피사건은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김일병은 상급자 및 선임과의 불만이 폭발해 사건을 저질렀다. 소대장인 지피장을 비롯한 동료 8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했다. 군총기범죄 중에서도 끔찍한 사고로 기록된다. ‘530지피사건’으로 지피의 근무인원과 근무방식 등이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지피의 정전협정 위반'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지피의 근무환경 개선부터 비무장지대 관련 정전협정 준수까지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 GP와 인민군. 북한 GP는 지상에는 다양한 모양의 작은 초소만 보이고, 대부분 시설은 지하에 있다. 서재철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로 철수 제안

지피의 철거가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에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피 철거 제안’이었다. 노대통령의 제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감은 하나, 인민군들의 우려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고 더 진전되지 못했다. 남한의 언론이나 시민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비무장지대의 실체를 아는 군 관계자나 남북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파격적이고 의미 있는 제안’으로 받아들여졌다.

27일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는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피의 철수가 필수적이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태동부터 지금까지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대규모의 국제전을 치르다가 중지 상태로 돌입한 곳이다. 20세기 이후 국제사회의 많은 분쟁 지역 중에서도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된 이후부터 최근까지 비무장지대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과 긴장의 현장이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무수한 교전과 응전이 있었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무력충돌이 있었다. 특히 1965년부터 1969년까지는 결전 전야를 방불케하는 교전도 발생했다. 다만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1970년대부터 충돌은 줄었지만 일촉즉발의 대치는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그 정점에 바로 남과 북이 설치한 지피가 있었다.

북한 GP. 북한 GP는 지상에는 다양한 모양의 작은 초소만 보이고, 대부분 시설은 지하에 있다. 서재철 제공
지피 철거가 실행되면 한반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된다. 그만큼 지피의 군사적 의미는 크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놓고 서로 간에 많은 도발과 보복을 자행했다. 모두 정전협정의 위반이다. 위반 중에서도 가장 명백한 위반이 바로 지피를 통한 비무장지대의 중무장화였다. 지피 철거는 한반도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진입하는 실질적인 첫걸음이다. 확성기 중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명실상부한 평화의 진전이다.

서부전선에서 전방사단장을 역임한 한 예비역 장성은 “지피 철거는 간단하다. 각 지피마다 일주일이면 비무장지대 밖으로 철수 가능하다. 인민군도 비슷할 것이다. 문제는 상호간에 지속적인 검증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군사적으로 우리 쪽이 손해 날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관측과 탐지에 있어서 장비와 기술이 월등하다”고 말했다.

지피는 비무장지대를 중화기의 군사력이 응집된 곳으로 만들었다. 남과 북은 전쟁을 거치면서 증오와 적대를 풀지 못했고, 서로 물러서거나 양보할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비무장지대는 항상 긴장이 이어지는 대결의 공간이 됐다. 전쟁 지역 말고는 국제적으로 군사적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이다. 실수로 인한 충돌이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최고조인 곳이다. 그래서 지피 철거는 남북대결의 현장인 비무장지대에서 실질적인 충돌 위험을 줄이는 일이다. 한반도 평화의 실질적 접근이며, 평화체제로 진입하는 분명한 첫걸음이다. 대화는 가까운 것이 좋고, 군사력은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 군사적 대치에서 화해와 평화로 가는 길이다. 실탄과 총기를 거두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신뢰구축은 없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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