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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9 08:19 수정 : 2006.05.10 09:45

집중비교 삼성 vs 현대차 ② 편법 승계

[집중비교] ②편법 승계 같은 수법에 다른 법잣대


2002년 6월 초 정의선 기아차 사장(당시 현대차 전무)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찾았다. 경제 민주화 운동의 주역인 장 교수는 정 사장이 가끔 도움말을 청하는 대학 은사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정 사장이 대주주인 본텍을 현대모비스와 합병시키려다, 편법 경영권 승계라는 여론의 반대에 부닥쳤다. 장 교수는 “재벌 2·3세들이 편법 승계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만류했다.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니, 아버지(정몽구 회장)에게 당당히 말하라”는 장 교수의 충고를 뒤로하고 정 사장은 돌아왔다. 다음날 현대모비스는 합병계획을 취소했다. 하지만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아들에 대한 편법 재산물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글로비스, 엠코, 이노션, 오토에버시스템즈 등 제2, 제3의 본텍을 잇달아 만들었다.

비상장사 몰아줘 지배자금 마련
삼성 써먹은뒤 현대차 따라하기

정 회장의 경영권 편법 승계 방식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총수 일가가 직접 작은 기업을 세워서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지원을 받는 수법으로 초고속 성장을 시킨 뒤, 주식가치가 높아지면 주력기업과의 합병이나 상장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핵심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빨대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마치 ‘흘러가는 물에 빨대를 꽂아 마시는 것’처럼 쉽다는 뜻이다.

하지만 ‘빨대 비즈니스’도 알고 보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미 사용한 방식이다.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씨에게 10년 만에 투자원금(15억2천만원)의 30배에 달하는 차익을 안겨준 서울통신기술이 대표적이다. 이재용씨가 4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서울통신기술은 사업전망이 좋은 홈네트워크 사업을 삼성전자로부터 양도받은 뒤 타워팰리스, 래미안아파트 등 삼성건설이 짓는 주택에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거의 독점공급하며 급성장했다.

이 회장은 1995년 말부터 자식들에게 그룹의 비상장사 주식을 헐값에 넘기고, 상장 뒤 주가가 많이 오르면 되팔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주력 계열사 주식을 확보하도록 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처럼 아예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핵심지분을 넘겨주기도 했다.

이런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에 대해 이 회장이나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는 것을 ‘코미디’라고 말한다. ‘1996년 12월3일에 삼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삼성 계열사들의 전환사채 인수 포기 → 이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이건희 회장 자녀들에게 배정 → 이 회장도 같은날 48억3천만원의 거액을 세 딸에게 인수자금으로 증여 → 이 회장 자녀들이 이 돈으로 전환사채 인수. 이 모든 일들이 하룻사이 불과 몇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 회장이 직접 결정하고, 구조본이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우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만약 월급쟁이 사장들이 이 회장 몰래 주도한 일이라면 쿠데타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검찰도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있고, 증거까지 확보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재수사에 착수한 지 6개월이 넘도록 눈치보기만 하고 있다. 현대차와 삼성의 수사 형평성 시비가 불거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 구조본, 총수 대신 처벌 감수
적은 지분으로 세습 ‘고리 끊을때’

삼성의 경영권 편법 승계는 구조본 소속 핵심 임원들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구조본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핵심인물로 꼽힌다. 김 사장은 에버랜드 건이나 e-삼성 등에 대한 세부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구조본에서 이 회장 일가의 재산관리를 담당하는 부서는 재무팀에 속한 관재팀인데, 김 사장은 재무팀장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이 97년 임원으로 승진한 뒤 거의 매년 한단계씩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것도 그 공로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부인인 홍나희씨도 경영권 승계를 두고 처음에는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으나 아들에게 주식이 다 넘어간 것을 보고 흡족해했다고 한다.

삼성 쪽은 이런 시각에 펄쩍 뛴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작업이 진행됐을 때는 이 부회장 등이 구조본에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도 제시한다. 그럼에도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의 관계가 단순한 그룹 총수와 충직한 가신 사이 이상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김 사장은 이 회장 일가의 재산 관리는 물론 승계작업까지 책임지고, 문제가 생겨도 조사와 처벌까지 대신 받는 운명공동체”라며 “이 회장이 두 사람에게 삼성전자 스톡옵션 등을 통해 각각 천억원대 안팎의 재산을 안겨준 이유도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학수 부회장은 사석에서 “내가 할 마지막 과제는 재용씨가 국민의 축복 속에 삼성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하는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주식평가 기관들의 집계로, 정의선 사장이 갖고 있는 주식의 평가액은 올해 1월 말 현재 9252억원으로 국내 주식부자 중 8위다. 이재용 상무의 주식평가액은 1조7940억원으로 그 갑절이다.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은 모두 완벽한 세금없는 대물림을 꿈꿨고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구속됐고, 이 회장은 형평성 시비에 시달리고 있다. 아들들도 30대에 대한민국 최고부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론의 따가운 눈총 속에 경영권 승계 문제로 사법처리를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불안한 황태자’ 신세다. 이재용씨는 사석에서 “비자금이니 편법 승계니 하며 삼성을 비난하지만 사실 남들도 다 하는 것 아니냐. 왜 나만 갖고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재계에서는 재벌 총수들이 적은 지분만 갖고도 대를 이어 회사를 계속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이런 비극은 종식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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