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01 18:53
수정 : 2012.06.04 13:4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정치부 기자 성연철입니다. 문득 “모든 신문기사는 중학교 2학년이 읽어도 다 알 수 있도록 쓰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친절한 기자’란 꼭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기사들이 친절하지 않다는 방증인 듯 싶습니다. ‘구타 근절’이란 푯말이 구타의 존재를 증명하듯이 말이죠. 여하튼 ‘친절한 기자’ 꼭지가 사라지는 날까지 평소에도 쉽고 친절한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번 주제는 “대선 주자는 왜 각종 사조직을 만드는가”입니다. 대선 주자 사조직이 많습니다. 자, 볼까요? 먼저 새누리당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희망포럼’이란 조직이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박사모’를 비롯해 ‘호박가족’ ‘근혜사랑’ 등 온·오프라인 외곽 조직이 부지기수입니다. 원로 그룹 모임이라는 ‘7인회’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모임인 ‘오래포럼’ 등 박 전 위원장과 직접 대면하는 조직도 있습니다.
같은 당의 정몽준 전 대표는 싱크탱크 ‘아산정책연구소’와 ‘해밀을 찾는 사람들’ 등의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이재오 의원은 ‘평상포럼’ ‘푸른한국’ 등의 조직과 모임이 있습니다. 김문수 경기지사에겐 ‘대통합국민연대’가 있습니다. 야권의 경우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겐 ‘담쟁이포럼’과 ‘문재인의 친구들’이 있고, 손학규 전 대표는 ‘동아시아 미래재단’, 김두관 경남지사는 ‘지방자치분권 연구소’ 등을 두고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도 대선 주자 시절 어김없이 사조직을 유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선진국민연대’가 있었지요. 거슬러 올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도 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 전직 의원은 “일본 사람들을 이코노믹 애니멀이라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폴리티컬 애니멀이라 할 만하다”며 “내외곽 사조직은 한국의 독특한 선거문화로 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대체 왜 이렇게 정당 밖의 외곽 조직이 많은 걸까요? 한 대선 주자의 측근은 “명색이 대선 주자쯤 되면 전국적으로 지지자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들은 당보다는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하기 때문에 지휘를 받고 체계가 있는 정당에 가입하기 싫어하고 기존 정당 역시 자발성이 강한 이들을 수용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또다른 대선 주자의 참모는 “자발적인 사람의 지지를 모아주지 않으면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잘 관리하면 스스로 세를 불리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대선 주자 입장에서 이들은 고마운 존재입니다. 모두 소중한 표를 주겠다고 제 발 벗고 나선 사람들이니까요. 또 대선 주자의 몸은 하나입니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은 수천만입니다. 이른바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 꾸려진 핵심 외곽 조직은 대선 주자를 대신해 사람들을 만나 지지를 넓힙니다. 대리인 구실을 하는 셈이지요.
이 ‘자발적’ 모임의 기원을 우리나라의 독특한 연고주의 문화에서 찾는 분석도 있습니다. 혈연·학연·지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사회에서 특정 후보 모임의 회원이라는 것은 든든한 백이나 연줄로 여겨진다는 겁니다. 대리만족 내지는 심적으로라도 기댈 데가 필요하다는 거죠. 외곽 사조직 가운데 힘있는 조직의 우두머리들은 정권교체에 따라 ‘한자리’ 차지하기도 합니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움직였던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은 청와대나 정부 산하단체 등 주요 공직에 많이 진출했습니다.
이런 사조직은 ‘양날의 칼’이기도 합니다. 당이라는 공적 조직이 아닌 비선 조직인 탓에 지휘 계통을 무너뜨리고 후보의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한다는 의혹을 사기도 합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의 7인회 논란이 빚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거죠.
자발적·열성적 조직이기 때문에 회원 개개인의 돌출 행동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자리를 얻고 후광을 등에 업으려는 다채로운 군상들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 대선 후보 특별보좌관’ 명함이 넘쳐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사조직은 관리를 해도 사고가 나고, 안 해도 사고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대선 후보의 참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외곽 조직에 모이는 사람의 성향은 후보의 생각과 비전에 매료돼 오는 사람과, 뭔가를 바라고 오는 사람으로 나뉜다. 전자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주자의 부침에 따라 줄고 는다.” 사조직. 필요악이자 계륵 같은 존재 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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