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전망대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신기하고 의아하겠지만, 과거에는 방송사마다 ‘전속제’라는 것이 있었다. 제아무리 국민배우로 인기가 있어도 <문화방송>(MBC) 전속 탤런트로 활동하던 김혜자나 최불암은 이 방송에만 출연하는 식이었다. 언제적 얘기냐고 웃어넘길 에피소드 같지만 방송사에 여전히 전속제로 운영되는 분야가 남아 있다. 바로 기자나 피디 같은 저널리즘 영역이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많아 유명 방송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특정 언론사의 울타리를 벗어나 활동하는 언론인이 매우 드물다. 퇴직 후 다른 언론사로 옮기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현역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미디어를 넘나드는 언론인은 거의 없다. 사실상 전속제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귀를 붙잡는 소식 하나를 들었다. <김현정의 뉴스쇼>를 진행하는 <시비에스>(CBS) 김현정 피디가 10월 말에 <티브이엔>(tvN)에서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본격 뉴스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한 방송사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다른 방송사의 유사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신선했다. 소속 언론사의 명성보다 자신의 브랜드 파워를 키운 스타 언론인이기에 가능한 시도였을 것이다. 이번 시도가 저널리즘 생태계에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탈언론, 탈조직, 탈제도화의 흐름을 촉진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정 언론사에 소속된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저널리즘을 이끌던 프로페셔널리즘 시대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저널리즘사회학자인 마르크 되저는 이처럼 진본 소멸, 전문직주의의 종언, 단계별 ‘게이트 키핑’(뉴스 결정자가 뉴스를 선택하는 과정)에 따른 조직적 생산 메커니즘의 붕괴가 가속되는 미디어 환경을 ‘유동저널리즘’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도 출처에 상관없이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고,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는 1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한편 기존 언론사의 신뢰도는 지속해서 하락하는 현상이 맞물려 유동저널리즘이 이미 본격화한 상태다. 그러나 유동저널리즘 생태계는 그에 맞는 조정 메커니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의 범람,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콘텐츠의 무분별한 확산, 고도로 상업화된 콘텐츠가 압도하는 파괴적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지점에서 역할과 위상이 축소되는 정통 언론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변화하는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강력히 요청되는 조정자 역할에 최적화된 주체이기 때문이다. 가령 유동저널리즘은 탈조직적 개방 생산이라는 민주적 작동 방식 때문에 자칫 책임성이 결여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취약점이 있다. 또 전문직주의가 훈련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직업윤리가 형성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다. 훈련받은 전문 조직이 이들과 공존하며 상호 보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정통 언론이 경직적이고 위계적인 생산 방식과 조직문화를 벗어던진다면 가능성은 의외로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저널리스트 개인적 차원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접촉하면서 자신의 브랜드 파워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또 조직적 차원에서는 이들의 광범위한 활동을 너그럽게 보듬는 유연한 조직문화와 의사 결정 구조, 폐쇄적인 출입처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거대한 유동저널리즘 파도에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한국방송>(KBS)에 손석희 앵커가 출연하는 것을.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