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08 17:10
수정 : 2016.10.17 14:08
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뇌물, 로비, 접대, 향응, 청탁, 그리고 이른바 ‘스폰서’. 한국 사회를 점령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어휘의 핵심 고리는 돈과 권력이다. 검사장, 부장판사에 이어 부장검사까지, 가진 권력을 빌미로 부도덕한 돈을 받아 챙기며 살아온 이들의 민낯이 줄줄이 폭로되고 있다. 장관 후보 청문회에선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편의’를 제공받아 아파트도 사고 전세도 살았던 한 고위 공무원의 존재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것들이 최근 들어 생긴 현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속속들이 썩은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죽하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기 전까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내세우며 뻔뻔함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특혜인 줄 몰랐다거나 관행을 들먹인다. 심지어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로 판명돼도 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며 온 국민의 분노와 상관없이 굳건히 버티기도 한다. 역시나 보통사람들과는 낯의 두께가 달라야만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언론인 역시 ‘스폰’을 받았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특정 대기업과 그렇게도 깊숙하게 얽혀서 언론인으로서의 권력을 여러 차례 부적절하게 행사했던 그가 내놓은 첫 해명 역시 ‘기업 초청을 받은 통상적 출장’이라는 것이었다. <한국방송>(KBS)에 대한 강압적 보도 개입이 청와대 홍보수석의 ‘일상적 업무 수행’이라고 했던 변명과 묘하게 겹친다. 묵은 관행이었던 촌지가 어렵사리 자취를 감추면서 외유성 취재여행과 골프 접대 등이 성행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가장 힘있는 언론인 중 한 명이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은 언론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 없는 입장에서 정말이지 충격으로 다가온다. 폭로의 맥락이 또 다른 권력형 비리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선뜻 믿기 어려웠는데,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셈이다.
이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인가? 사회 정의를 위해 불철주야 현장에서 땀 흘리는 기자를 만나기란 무망한 것인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지금도 꿋꿋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위해 힘든 길을 가고 있는 언론이 있음을,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촌각을 다투며 취재하는 기자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한 언론의 신뢰와 더럽혀진 언론인의 명예를 회복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음도 잘 알고 있다.
오늘은 <한국일보>의 김주언 기자가 <말>지를 통해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 유린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한 세대가 바뀌는 세월이 흘렀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언론의 모습은 정치와 마찬가지로 퇴행적이다. 스폰서 문화가 문제적 검사 한둘의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조직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면, 언론 역시 이번 일을 특정인이나 특정 언론사의 개별 사례로 축소하고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인 모두가 나서서 ‘나와 우리’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문제가 되는 취재 관행과 조직문화 전반이 무엇인지 뼈아프게 돌아보고 실천적인 개선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사회를 바꾸려는 언론은 자신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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