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30 21:40
수정 : 2016.05.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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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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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어느 날의 이야기다. 당시 <한겨레>의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에서 쭉 일하다가 편집·광고·판매를 총괄하는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광고국 간부를 대동하고 국내 굴지의 한 재벌그룹을 인사차 방문했다. 그쪽 고위임원과 수인사를 나눈 뒤 우리들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시국 문제로 옮아갔다. 당연히 다년간 갈고닦은 ‘토론’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상대방의 관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거침없이 지적했다.
나는 꽤나 만족스럽게 회사로 돌아왔는데, 동행한 광고국 간부의 조심스러운 지적을 받고는 아차 하는 낭패감과 함께 전신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기자와 논설위원이었을 때 나는 주로 ‘갑’이었지만, 언론사에 대한 광고 배정권을 손에 쥔 그 임원 앞에서는 영락없는 ‘을’임을 미리 알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나는 사장을 비롯한 언론사 경영진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을’의 역할을, 품위를 지키면서 행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힘깨나 쓰는 수백명의 기자들을 거느리는 언론사 사장이니, 얼마나 기고만장일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언론 사주들이 ‘을’이 아니라, 권력과 유착하여 ‘슈퍼 갑’의 위치에 올라서고, 기업들과의 관계에서 거침없는 갑질을 통해 언론사 경영을 쉽게 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한때 학생 데모대로부터 ‘펜을 든 깡패’라고 성토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1989년 11월28일치 한겨레의 ‘신홍범 칼럼’은 언론사 사장이 권력과 손을 잡아가는 과정을 실감 있게 그렸다. <언론노보>를 인용하여 쓴 이 칼럼은 조선·동아·중앙·한국 등 당시의 4대 신문 사주들과 노태우 대통령이 가진 술자리 광경을 전했다. 언론사주 중 한 사람이 대통령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각하, 제 술 한잔 받으시죠”라고 말했고, 다른 사주가 이 행동을 비난하자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통에 술자리가 파흥이 되었다는 웃지 못할 코미디다.
조선일보사의 사장과 회장을 지내고, 최근 고인이 된 방우영 상임고문은 ‘신문인’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지면 제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뒷받침하는 등 신문의 바깥을 책임진 경영인”이라는 것이 그가 말한 신문인의 역할이다. 기자들은 권력과 기업을 비판하지만, 사장은 이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일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언론이 기업을 비판하면서도, 언론사의 생존을 위해 기업으로부터 받는 광고수입을 늘려야 하고, 권력을 비판하면서도 권력의 날선 보복의 칼날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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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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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그는 신문인의 역할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는 사장으로 있던 1975년 3월 권력에 대항하여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해 일어선 기자 33명을 해고한 당사자다. 한국 언론사의 가장 중요한 고비였던 그때에 보여준 그의 선택은 그가 말과는 달리, 기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권력 쪽으로 달려간 언론사주임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는 1980년 5·17 쿠데타 뒤 국보위에 위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문인으로서의 품위와 자존심마저 던져버렸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을’의 역할을 행하면서 신문과 기자들을 지키는 신문인의 길이 아니라, 권력의 일부가 되어 ‘갑’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자들까지 자기 손으로 잘라낸 신문 기업가의 길을 걸었던 셈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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