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28 20:16
수정 : 2016.03.28 20:16
선거를 통해 시민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선거는 한 국가가 안고 있는 정책적 현안이 드러나고, 이를 두고 다양한 입장이 충돌하는 장이다. 그렇기에 이 과정은 공공 문제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높이고, 토론과 투표 같은 참여를 일으키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책은 사라지고, 여야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전략론이 가득하다. 경선 과정은 어떤 정치세력이 더 이득을 보았는지를 따지는 셈법만이 난무하다. 언론의 선거보도는 무협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특히 ‘정치평론가’들이 대거 출현하는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매거진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자면 동네 장기판 훈수꾼들의 말싸움을 보는 것 같아 낯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언론의 품위가 사라져 버렸다.
여야 경선 정국에서 보여준 계파 간 이해득실을 중심으로 다루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정치 참여의 효능감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선거의 구경꾼으로 내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심리학적으로는 정치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회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이슈를 이해할 때 개인이 아닌 집단의 성원으로, 즉 집단정체성에 기반을 둬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에서 집단 간의 이해충돌을 다루게 되면 수용자들은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는가를 스스로 범주화한다. 언론 보도가 수용자들에게 사회적으로 범주화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집단 내에 다양한 이슈와 의견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어떤 계파나 집단과 정체성을 공유하느냐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된다. 일단 집단의견에 동조하게 되면 수용자들은 그 의견을 검증하기보다 의견을 확신하고 방어하기 위해 뉴스를 습득하고 토론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선택한 집단규범을 내면화하고 그 집단의 이익을 받아들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 그 집단과 자신이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불일치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런 현상은 집단 간 의견 분열을 더 악화시킨다. 또한 언론 보도를 바라볼 때, 집단규범에 입각해서 보는 지각적 편향을 불러온다. 이를 ‘적대적 매체지각’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집단정체성과 다른 언론 보도에 적대감을 갖고 극단적인 의견을 산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사 내용과 관계없이 언론사의 댓글 등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적대 표현의 심리적 배경이 된다. 매체와 수용자의 정파성이 두드러지는 경우 이런 양극화와 적대적 지각은 더 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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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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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회심리적 과정은 현대 미디어 정치에서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무엇이 집단정체성을 구분짓는가는 중요하다.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체계와 사회·경제적 조건에 맞는 정책을 통해 자신의 집단정체성을 선택한다면 합리적 투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다. 합리적인 언론 보도는 선거 과정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는 정치집단을 선택하고 범주화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정치엘리트들의 이해관계 싸움이 모호한 사회정의 논쟁으로 포장되어 보도된다면 국민들의 사회적 범주화는 실패하고 혼란을 겪게 된다. 그렇기에 언론은 누가 어떤 갈등을 벌이는가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런 갈등이 시민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로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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