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22 19:55
수정 : 2016.02.22 19:55
한국 정부가 2월10일 개성공단을 무기한 가동 중단하기로 전격 결정하자 이에 맞서 북쪽이 다음날 공단을 폐쇄함으로써 남북이 11년간 함께 운영해온 유일한 경제협력 사업이 문을 닫고 말았다. 앞으로 남북 긴장이 높아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로이터 통신>도 “1990년대 햇볕정책으로 태동한 개성공단은 지난 10년간 남북한 화해의 마지막 유산인데 (남북관계가) 냉전의 최전선으로 회귀하게 됐다”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새누리당, 공영방송, 종편 등은 남·북 간 긴장 완화보다 국회에 계류중인 테러방지법 통과 촉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인상이다. 특히 긴장을 부추기는 정권의 정책에 영합하는 언론의 태도가 우려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남북긴장을 완화할 협상이나 대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대북제재가 “시작에 불과하다”며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대북 강경노선을 선포했다. 박근혜의 대북정책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제4조나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66조 3항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한 가지 사실은 개성공단 폐쇄 과정을 통해 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민낯을 드러냈고, 그가 자주 거론한 대북 신뢰 프로세스는 정치적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과 타협을 모색하기보다는 비타협적인 북한의 존재를 정권에 대한 보수세력의 결집 촉진제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한다.
국내 정치적인 계산 속에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유지하려는 박 대통령의 의도는 그가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달러화 노임이 북한 핵 개발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판명됐다”고 주장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하루 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토의에서 “증거는 없다”고 후퇴했는데도, 홍 장관의 입장을 다시 번복하게 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판명’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증거가 있고 없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로지 그런 사실이 있다고 주장해서 개성공단 폐쇄 조처를 후퇴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대북제재에 관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태도에 실망을 표시하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에서 미국의 입장에 전격 합류했다. 앞으로 사드 가입이 확정돼 중국이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게 하면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지금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다. 이병기 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비서진이 총동원돼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들을 접촉했다. 보수 언론과 방송도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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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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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경제 문제 등은 안중에 없는 국내 정치용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미 대선에 개입해서 민주주의를 웃음거리로 만든 국정원이 중추적 역할을 하는 테러방지법 아래서, 더구나 적대적 강성 북한 정권이 옆에서 계속 긴장을 조성할 때, 정권을 비판해야 할 언론이 정권을 옹호하게 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 이미 100년 전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 월터 리프먼은 이렇게 말했다. “정확한 의미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론의 위기다”라고. 한국 언론이 각성할 때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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