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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11 20:04 수정 : 2016.01.12 09:58

박정희 정권 시절 언론 탄압에 저항하다 해직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기자 1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지난달 승소했다. 40년 만에 처음 이긴 것이라 그만큼 영광스런 일이라고만 말하기에는 가슴이 아리다. 이들을 인터뷰해 논문으로 쓴 김세은 강원대 교수는 해직 당시 30대 초반이던 기자들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거리의 언론인” 혹은 “문간방 나그네”로 살며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 생생히 보고한다. 세월을 훌쩍 넘어 이명박 정부 이후에도 언론인 20명이 같은 문제로 해직됐다.

이들 해직 언론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친정부 언론인’의 삶이 있다. 이들은 정권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써주거나 빼주며 회사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정부 고위직으로, 또는 국회의원으로 불려간다. 수습기자로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이 어쩌다가 다른 길을 가게 됐을까? 친정부 언론인들을 이해할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해 본다.

첫째는 애국심이다. 구한말 이후 언론인의 사명은 외세의 침탈을 막고 선진국을 추격해 국가 발전을 이루자고 계몽하는 일이 됐다. 정부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는 것이 개인의 자유보다 중요하다는 국가관이 한국 언론인의 혈통으로 자리잡았다. 공익에서처럼 ‘공’(公)은 좋은 것이고 사통(私通)에서처럼 ‘사’(私)는 나쁜 것이다. 이들에게 ‘공’은 곧 국가다. 따라서 국가의 과오 정도는, 또는 일반 시민의 손해는 눈감을 수 있다. 국가수반인 대통령이나 정부의 생각을 널리 알리는 것, 즉 ‘공보’가 곧 계몽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 한국방송(KBS)의 한 간부는 자기 방송사가 “국민이 선택한 정부와 대통령이 제대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둘째는 애사심이다. 자신이 속한 언론사를 위해 권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언론의 핵심 자원인 기사 정보를 제공해주는 한편, 광고 및 협찬 등의 물질적·정책적 특혜를 준다.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는 ‘자원의존이론’을 이용해, 언론사가 대기업에 기사와 광고라는 생존 자원에 의존함으로써 “비판기능 수행에 장애”를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정부도 언론의 자원의존 대상이다. 애사심을 지닌 선배들에게는 무한경쟁으로 회사가 존폐 위기인데도 철없이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후배들이 무책임하거나 ‘정치적’으로 보인다.

셋째는 입신양명 정신이다. 한국인은 입신양명, 즉 출세해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것을 큰 효로 여긴다.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이 정신은 ‘출세해 가족과 친족 및 친지들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 도리’라는 출세주의로 변모했다. 언론계에도 직업 자체가 주는 쾌감을 즐기지 못하고 ‘자기희생적으로’(?) 출세의 디딤돌 밟기에 성실한 안타까운 인물들이 많다. 사내에서 한 단계라도 오르기 위해서는, 그리고 밖으로 불려 나가 고위직에 앉기 위해서는 권력과 가까이하는 것이 당연하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그런데 이런 애국심, 애사심, 입신양명 정신 등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은 건전한 시민의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자칫 ‘자기편에게만 사람 같은’ 괴물을 만들어낼 우려가 크다. 강명구 서울대 교수는 한국 언론인의 특성을 분석한 논문에서 “국가와 개인의 이해가 충돌할 때, 혹은 그것이 인간·사회·자연의 본원적 질서와 충돌할 때 애국주의는 억압이 될 수도 있고, 반인간·반자연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친정부 언론인이 꼭 돌아보길 권하는 문제점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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