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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4 20:41 수정 : 2016.01.04 20:41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 탓을 국회나 민간단체, 그리고 언론에 돌리고, 이들을 나무라는 박근혜 대통령. 그가 이번에는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상징하는 소녀상을 두고도 자신의 고질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 그렇다. 이 ‘말씀’은 대통령비서실이 ‘창작’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바로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소녀상 철거 논란의 책임을, 논란을 일으키기는커녕 논란 자체의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언론에 돌리면서, “중요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조속히 설립하여,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삶의 터전을 일궈드리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기로 한 97억원으로 설립하는 재단으로 어떻게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될 수 있는지, 또한 이 돈이 아니면 이분들의 삶의 터전도 일궈낼 수 없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국가 예산으로는 왜 그것이 안 되며, 청년펀드도 만든 박 대통령이 이분들을 위한 펀드는 왜 만들지 못하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말씀’은 이어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와 사회혼란을 야기시키는 유언비어’를 공격하면서, ‘사실과 다른 보도’의 사례로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보도를 들었다.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는 주장이다. 청와대가 비판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전혀 다른 보도’가 아니라, 일본 언론들이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하여, 한·일 합의에 ‘소녀상 철거’라는 전제가 붙었다고 보도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한 한·일 정부의 입장을 보도하면서, 10억엔에 소녀상 철거라는 전제가 붙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에 있다. 또한 유언비어가 사회혼란을 야기시킨다고 비판했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다.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못해 정보에 대한 굶주림이 생기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그 증상으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이다.

‘소녀상 철거’ 논란에 대한 한·일 정부의 입장은 입을 맞춘 듯, “한·일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다. 지난달 28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과 한국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차례로 자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회견문 중 문제의 대목은 윤 장관이 밝힌 한국 정부의 입장, “일본 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한국 정부가 철거를 약속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철거와 관련해 아무런 약속을 한 것이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문맥이다. 일본 언론들이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소녀상 철거가 ‘전제’라고 보도하는 것은 이럴 경우 흔히 나타나는 관행적인 보도일 뿐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유언비어를 걱정하고 언론을 나무라기 전에 소녀상 철거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힘으로써 기자회견문 문맥에서 오는 혼란을 정리할 수 있다. “관련 단체가 반대하면, 정부가 이를 철거할 수도 없고, 철거를 강행하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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