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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07 20:32 수정 : 2015.12.08 08:41

지난 5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제2차 민중 총궐기 집회를 단어 하나로 요약하면 무엇이 될까? 언론은 이를 ‘평화시위’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없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시위대는 으레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고, 경찰은 청와대 입구가 아니라 광화문 네거리에서부터 차벽을 세워 이를 막아, 결국 둘 사이의 충돌로 이어졌던 과거에 비해 이번 시위는 확연히 달랐다. 그런 점에서 ‘평화시위’는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 시위의 겉모습에 초점을 맞춘 보도로는 5일 시위의 전모를 다 전달했다고 할 수가 없다. 이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가, 이들이 이날 오후 2시부터 밤 8시가 넘도록 거리에서 무슨 주장을 하고 있었는가를, 거리에 나오지 않은 시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렸어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온통 충돌 없는 평화시위 이야기로만 들떠 있다. 서울광장에서부터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는 농민 백남기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 앞 대학로에 이르는, 긴 시위행렬은 평화로운 행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봇물 터지듯 거리로 쏟아져 나온 거센 분노의 물결이기도 했다.

시위대는 저마다 자신을 알리는 온갖 깃발, 그리고 각자의 다양한 주장을 밝히는 펼침막과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의 글귀는 백인백색이었지만, 시위를 지켜본 이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었던, 거리를 관통하는 뜨거운 흐름이 있었다. 시위대를 ‘복면 쓴 아이에스(IS)’에 빗대어 비판하면서 ‘복면금지법’ 입법을 강행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강한 불신과 거부였다. 언론은 ‘민중 총궐기’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민중’이 무엇을 요구하면서 ‘총궐기’를 했는지를 시민들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절박한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만들고, 권력의 횡포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집단 시위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평소에 이들의 주장을 충분히 전달했다면, 이들은 추운 겨울에 물대포를 맞아가며 거리에 나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완강한 차벽 앞에서 시위대가 조용히 흩어졌다면, 11월14일 집회조차 신문의 1단 기사로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은 채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보자. 국정화 반대 여론이 압도적임에도(11월3~5일 한국갤럽 조사 반대 53%, 찬성 36%), 언론의 압도적 다수가 찬성 쪽에 서 있다. 국정화 반대 논리는 이들에 의해 묵살당하고 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따라서 이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폭력이냐 아니냐만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의 보도태도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만일 대다수 언론이 시위에서 대통령에 대한 깊은 불신이 얼마나 강하게 표출되었는지를, 그런 불신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사실보도의 원칙에 따라 보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통치하기는 어려워지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야 할 일도 줄어들 것이다. 언론은 자신의 엄청난 힘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왜소해짐으로써, 변화를 추동하는 자리가 아니라, 변화를 가로막다가 결국 자신도 변화를 당하는 자리에 들어서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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