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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2 20:18 수정 : 2015.11.02 20:18

“물론 국민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을 (전쟁을 원하는) 지도자처럼 생각하도록 끌고 갈 수 있고, 그렇게 하기는 쉽다. 국민에게 우리가 공격받고 있고, ‘반전주의자’들을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며, 그들이 조국을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말하면 충분하다.” 히틀러 다음 가는 나치의 권력자로 전쟁 당시 공군사령관이었던 헤르만 괴링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한 이 말에서 단어 몇 개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전쟁’을 ‘국정교과서’로, ‘반전주의자’를 ‘국정화 반대자’로, ‘애국심 부족’을 ‘좌파’로 바꾸기만 하면, 바로 박근혜 정부와 여당 쪽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부추기는 바탕생각이 될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 의원들의 막말이 그들의 이런 속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김무성 대표의 “국사학자 90%가 좌파”라는 폭언, 적화통일에 대비한 사전교육 운운한 이정현 의원의 중상모략, ‘북한 지령문’을 거론한 원유철 원내대표에다 서청원 최고위원이 “북한과 국내 추종세력의 연계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점입가경이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붉은색 페인트칠은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싸움방식이다. 문제는 이와 같이 사실(팩트)의 뒷받침이 없는 중상모략들이 바로 반박되거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고, 하나의 ‘주장’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은 물론 언론에게 물어야 한다.

신문들은 정부·여당 쪽의 주장과 함께, 야당 쪽의 반박을 실어 형식적인 균형을 맞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여-야 주장이 피장파장, 또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된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노리는 바다. 아무리 열심히 붉은 덧칠을 해도 요즘은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그들이 진짜 노리는 것은 현행 검정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고, 이를 바로 잡으려면 국정화 밖에는 길이 없다는 주장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고, 사람들의 생각에 스며들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붉은 덧칠은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공포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그들의 주장대로 과연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인가 하는 것이고, 이것은 여-야의 주장이 아니라, 교과서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으로 쉽게 가려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를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은 여-야 주장의 비교에 치중함으로써 정부의 의도에 놀아나고 있다.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먼이 제시한 미디어의 프로파간다 모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나는 현행 국사 교과서 8종과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만들었지만 학교로부터는 외면당한 교학사 교과서를 조목조목 대비한 한겨레의 분석 보도를 보면서,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만일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신문들이 한겨레 분석과는 다른 분석표를 보도한다면, 내 생각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들은 현행 교과서를 분석하면 되는 쉬운 길을 버려두고, 빙빙 돌아가고 있다. 현행 교과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신문이 스스로 분석하여 보도하면 그만이다. 독자들이 각 신문들의 분석보도를 비교해서 국정화와 함께, 어느 신문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하라.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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