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31 20:44
수정 : 2015.08.3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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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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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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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세계적인 지성인 노엄 촘스키 교수와 미디어 학자 에드워드 허먼 교수는 미국과 세계 언론계에 충격을 주는 폭탄선언을 했다. 미국 언론이 시민에게 정치적 판단의 근거가 될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는 민주제도가 아니라 지배세력의 지위를 유지하는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그때까지 권력과 소수 기득권층의 행동을 감시 고발하면서 민중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봉사한다고 자부하던 언론인들은 촘스키와 허만의 언론 ‘선전모델’ 선언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두 석학의 진단이 오진이기를 바랐다.
촘스키·허만의 ‘선전모델’은 두 석학의 공저 <동의(同意)를 제조하는 것>(Manufacturing Consent) 안에서 주장한 이론이다. 여론은 언론보도를 근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선입견이 내재된 보도로 민중의 동의 즉 여론을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당시 주류 언론은 이 책에 별 관심을 안 보였지만 선언의 충격은 컸다. 좌파 진보 쪽에서는 간단한 입법을 통해 신문이 소수 권력층의 선전모델화되는 것을 막는 개혁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러나 개혁은 쉽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디어(신문·방송) 소유주는 부자고 힘있는 사람들이다. 미디어는 광고 수입에 의지하는 기업이다. 광고주 역시 돈 많은 보수주의자들이다. 언론이 뉴스를 얻는 뉴스원은 국방부 관료, 대기업 임원들이다. 모두 힘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토로하고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돈 많고 힘있는 권력층이다. 이념적으로 공산주의는 아주 나쁘고 시장경제는 아주 좋고 선한 것이라고 믿는 권력자들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바로 이렇게 선한 것이며 따라서 자기들은 선하고 우수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언론)가 이런 ‘선’에 봉사해야 하는 것, ‘선전모델’로 이용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이념 이익과 부합하는 생각이다. 그러니 미디어의 선전모델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뉴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언론개혁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뉴미디어는 아직 힘이 약하다. 뉴미디어는 현재 광고수입을 늘리는 데 급급하고 사회문제를 다루는 탐사보도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올드 미디어를 개혁할 의지나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 이것이 촘스키·허먼의 선전모델이 발표된 이후 사반세기 동안 언론개혁 십자군들이 언론의 참모습을 되찾기 위해 벌여온 투쟁의 현주소다.
언론개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선전모델’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 독재정권들이다. 언론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해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지금 공영방송 이사진을 권력의 ‘충신’들로 메우고 있다. 이미 이사진 구성이 끝난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은 박근혜 정권이 선정한 이사들로 충원돼 있다. 3연임된 이사들도 있다. 방송에 대한 전문지식보다 정치적인 성향으로 ‘발탁된’ 인사들이다. 내년 총선과 다음해 대선을 겨냥하고 선정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많다.
이사진 구성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것은 지금 공영방송은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방송과 구별되는, 공익을 우선하는 공영방송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둔 정치방송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는 것이다. 공영방송이라기보다는 국영방송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정권과 직접 관련이 없는 <교육방송>(EBS)마저 뉴라이트 인사들이 장악할 것 같다는 보도가 나온다. 파시스트 정권의 특징 중 하나가 언론통제 언론장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박 정권에 묻고 싶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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