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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03 20:33 수정 : 2015.08.03 20:33

한국의 언론을 이야기할 때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국가정보원의 내국인 해킹’ 의혹과 같은 뉴스를 보도할 때,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언론’인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보도에 소극적인 반면, ‘진보언론’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안보보다는 권력 비판이 우선이므로 적극적으로 보도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진보-보수언론’ 프레임에는 주의해야 할 함정이 숨겨져 있다.

‘안보 중시-보수-해킹의혹 묵살’과 ‘권력 비판-진보-해킹의혹 과장’은 피장파장이라는 인식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로 함정이다. 이런 인식의 함정에 빠지면, 독자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의 근거, 곧 자신의 입장이나 지향하는 이념을 넘어 객관적 사실의 보도와 합리적 해석의 원칙을 언론이 지키고 있는가를 판단하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특정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모든 매체의 뉴스를 불신하는 상황에 빠진다.

하지만 앞에서 예로 든 해킹 의혹의 보도를 곱씹어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해킹 의혹에 대한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겨레는 해킹 뉴스를 7월11일부터 연일 1면 머리기사에서부터 3면, 4면, 5면으로 이어지는 대대적인 뉴스로 보도했지만, 조선은 7월11일 사회면 하단에 2단 기사로 짧게 처리한 뒤, 17일에 가서야 1면에 보도했다. 그것도 국정원 쪽의 입장을 전하는 1단 기사였다. 반면 조선은 7월13일 뜬금없이 시의성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말’ 국정원을 비공개 방문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사회적인 논란이 일고, 국정원장이 국회에 출석하는 사태가 일어났어도 해킹 의혹을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고 버틴 조선일보의 태도를 두고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언론’의 입장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일까? 의혹 사건을 묵살하는 태도가 해킹 의혹과 같은 아주 민감한 정치적 사건의 경우에만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은 조선일보도 지난 2008년 7월14일 특집기사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에서 27번째 주요사건으로 보도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분신 사건이 일어났던 1970년 11월14일, 그 사건을 사진 없이 단 두 문장, 사회면 2단 기사로 보도한 신문이다. 이 기사는 사진까지 달린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 내외의 일상적인 동정기사에 눌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정상적인 뉴스가치 판단의 결과라면 편집자의 양식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진보-보수언론’ 프레임은 특히 ‘진보’로 분류된 언론에는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보수-우파-수구 꼴통’과 ‘진보-좌파-친북’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이다. ‘수구 꼴통’이라는 꼬리표는 듣기에 기분은 나쁘지만, “그래, 나 수구 꼴통이다”라고 외쳐도 공안적인 불이익은 없다. 하지만 ‘친북’이라는 꼬리표는 다르다. 만일 누군가가 “그래, 나 친북이야”라고 공언한다면, 우선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할지 모른다. 그래서 ‘진보’는 자신이 친북이 아님을 끊임없이 외치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려면, 우선 ‘진보-보수언론’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사실보도와 합리적 해석이라는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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