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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06 20:45 수정 : 2015.07.06 20:45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이 한국의 정치에 관해 쓴 책의 제목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 특히 야당의 고민을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이 따로 있을까 싶다. 이 책은 정치·사회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졌고, 저자는 <한겨레>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과 인터뷰를 거듭했다.

수많은 인터뷰 기사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지난 4일치 한겨레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7년을 한국에 머물렀던 당신은 한국 정치가 어떤 근본적 문제를 갖고 있는지 얘기를 하는데, 왜 우린 한국에서 수십년 간 기자생활 하는 사람들 놔두고, 그런 얘기를 당신한테서 들어야 하는 걸까요?” 라는 질문이다. 이와 같은 한겨레의 의문에 덧붙이고 싶은 내 자신의 의문이 있다.

“왜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독립 언론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해 거침없이 들이대는 예리한 비판의 칼날에 비해, 야당을 비판할 때는 형편없이 무딘 잣대를 사용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나는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튜더의 책에서 찾았다. 2012년 대선 당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와 함께 당시 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고위 관계자 두 명을 만났다는 이야기에서다.

“당 관계자들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준비해 간 질문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1980년대 본인들의 활약상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경험이 된 학생운동 이야기로 논의의 초점을 바꾸기로 아예 작정한 듯 했다. 한국의 현재나 미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미국 유력 일간지에 문재인 후보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가 보도될 수 있는 기회를 허공에 날려 버리고 말았다. 요즘 세상에 학생운동이 뉴스거리가 되겠는가?”

그가 당시 민주당사에서 받은 인상은 끊임없이 학생운동 시절과 박정희를 운운하는 사람들로 뭉친 정당은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희망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이 새누리당 쪽보다 더 따뜻하고 일에 임하는 자세도 진지했지만, 너무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박정희 독재 시절 운동권 출신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은 한국의 언론, 특히 진보적인 언론에서는 만나기가 어렵다. 보도되는 것은 ‘친노’, ‘비노’의 진흙탕 싸움인데, ‘친노’, ‘비노’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자라난 증상일 뿐이다.

야당의 뼈대를 이루는 ‘386 세대’를 비판한 튜더의 비판은 진보적인 언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에 대해 ‘목숨 걸고’ 싸웠던 ‘운동권’ 인사들은 지난 87년 정치적 민주화를 쟁취한 뒤 여러 갈래로 새로운 진로를 선택했다. 이들은 정치권이나 언론계로도 진출했다. 다시 말하면 야당 중진들과 중견 기자들은 과거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동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튜더는 한국 기자의 문제를 ‘개인적 커넥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야당 중진들과 진보적 기자들의 관계는 ‘커넥션’으로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이들의 동지적 관계는 특히 초기에는 많은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야당에 대한 언론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 그리고 이를 통한 야당의 재탄생과 정치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의 길을 열기 위해 기자들이 과거의 동지들을 주저 없이 비판해야 할 때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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