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08 20:45
수정 : 2015.06.08 23:20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폭발적인 확산 뉴스를 접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은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전통 매체들이 왜 메르스 발생 병원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알지 못했거나,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라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서울삼성병원’인 줄 알고 있는 데도, ‘서울의 한 대형병원(D병원)’이라는 식의 보도를 되풀이하는 전통 매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이 삼성병원이 포함된 6개 병원의 실명을 공개한 지난 4일 이후에도 전통매체들의 ‘D병원’ 보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름을 밝힘으로써 병원의 영업에 지장이 오지 않을까를 걱정한 것이라면, 이 병원을 찾게 될 시민의 안전보다 병원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 정도의 분별력 없는 언론인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병원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 우리도 밝히지 않는다? 이 정도로 무기력하고, 순응적인 태도라면 언론인이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일부 언론은 순응을 넘어 적극적으로 빗나간다. 지난 6일과 8일 <조선일보>는 메르스에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적극적인 대응을 나무라는데 집중했다.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관련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이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박 시장은 정보의 공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를 위한 중요한 전기를 만들어 냈다. 그의 대응방식이 적절했느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박 시장 주장의 ‘진실공방’을 펼침으로써 메르스와의 싸움보다는 박 시장과의 싸움에 더 열을 올렸다. 이 신문은 이 싸움에 병상에 누워있는 의사와 야당 출신 도지사들까지 동원했다. 기사는 “중앙 정부와 맞서듯 대립해서는 안 되며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도지사들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끌어내어, 박 시장의 대응이 중앙정부와 ‘대결’하는 것이며, 이에 대해 동료 지사들이 비판한다고 포장했다.
‘진보 언론’을 포함한 전통매체들이 무기력하게 대응하거나, 메르스와의 싸움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적’을 제압하기 위한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인터넷 매체들은 메르스 사태의 ‘진실’을 캐기 위한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문화평론가 김헌식씨의 글도 이들 중 하나다. 지난 3월 박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 뒤에 정부가 조성하고 있는 환상적인 ‘중동 드림’과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초기대응을 연결시킨 글이다. 그는 미국이 메르스 위험국가로 바레인, 이란을 포함한 13개 나라를 지정한 것과 달리 한국은 7개국(이 중에는 최초의 환자가 다녀와 이번에 문제가 된 바레인은 빠져 있음)만 지정한 것을 ‘중동 드림’의 환상이 낳은 실수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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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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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바레인은 위험국가가 아니라며 보건당국이 첫 환자를 하루 반 동안 방치한 것은 사실이다. 나라의 큰 일이 터질 때마다 무기력이 폭로되곤 하는데도 전통매체가 여전히, 특히 50~60대 이상 세대에 대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이들의 인터넷 접속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통매체에 유리한 지형은 과도기적일 뿐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전통매체에 비해 인터넷 매체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거듭 실감케 한 사건이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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